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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고 축축한 삶의 중심에서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장애인문화예술판과 창작음악그룹 the튠이 만났다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연습 현장
등록일 [ 2016년09월13일 20시42분 ]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 유쾌한 氏의 운수 좋은 날’ 연습 현장
“공간들 안 볼 거야, 진짜?”

연출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어디서 뭉쳐 있는지, 빈공간이 있는지 봐달라고, 제발! 이제부터 공간 못 보면 안 돼. 다 만들어놓고 공간 못 써서 허투루 만들 거야? 여기도 큐 맞춰요? 1번 서고, 2번 서고. 공간 보는 노력을 할 때 연극이 살아있다고.” 
 

여섯 명의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앞으로 거칠게 개 짖는 소리를 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움직임이 왼쪽으로 치우치면서 무대 오른쪽 공간이 비었다. 연출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8일, 서울 성북구 종암로25길 29 성북마을사회적경제센터 내 있는 장애인문화예술판(아래 문예판) 연습실. 21일 성북마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 유쾌한 氏의 운수 좋은 날’ 연습이 한창이다.
 

“다시 갈게요.”

연출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배우들은 다시 원위치. 반복, 또 반복. 공연을 2주 앞둔 연습실의 공기는 팽팽하다. 배우들의 시선, 호흡, 발성, 감정의 흐름,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조율되고 있었다.
 

“여기서 빗소리 잦아들기 시작할게요.”

무대 왼편, 건반을 비롯해 해금, 장구, 징, 북, 퍼커션 등을 연주하는 네 명의 연주자가 있다. 공연 음악은 라이브로 연주된다. 원시성을 자극하는 전통 타악의 연주 위에 그보다 더 원시적인 목소리가 뒤섞인다. 소리는 공간을 조형한다. 창작음악그룹 the튠(아래 the튠)이다. the튠은 4인 뮤지션 그룹으로 국악에 뿌리를 두되 그에 갇히지 않고 여러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는 창작음악집단이다.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 유쾌한 氏의 운수 좋은 날’ 연습 현장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 유쾌한 氏의 운수 좋은 날’ 연습 현장
 

문예판과 the튠의 만남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작업 외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고민하던 중 문예판은 the튠의 ‘조율’을 만나게 됐다. 조율의 지도로 재활용품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다가 본격적으로 풍물에 쓰는 징, 꽹과리, 장구, 북을 마련하면서 자진모리, 휘모리, 굿거리 등 장단을 익히게 됐다. 그러다 연극과 음악을 접목한 공연에 욕심이 생겼다. 전체 그림을 다듬어 줄 사람을 찾다가 조율의 소개로 리지(이지현 씨)를 만나게 됐다. the튠의 대표 레퍼토리 ‘길가락 유랑’ 속 이야기를 토대로 문예판의 색깔을 입힌 공연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해 초연을 한 뒤, 올해 시기성을 더해 극을 다듬어 재공연을 올린다. 공연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습하고 축축한, 어두운 단면을 몸짓과 소리, 음악으로 보여준다. 문예판의 작업이 이제껏 장애로 인해 겪어야 했던 삶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공연은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삶의 보편성으로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번 연출을 맡은 리지 씨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 자체로 봐야 한다고, 그래서 인간으로서 이 세상과 부딪히는 걸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배우들이 보편적 소재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그런 작업을 해보지 않았다며 뜻깊었다고 이야기해줘서 힘이 됐다”고 말했다. 리지 씨는 20여 년 동안 연극을 베이스로 프랑스, 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예술가들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공동 작업을 하고, 국내에선 극단 노뜰 부예술감독과 후용공연예술센터 대표를 역임하며 2014년엔 리지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현재는 배우이자 연출가로, 문화예술 교육 활동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연습 현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번 공연 연출을 맡은 리지 씨.(초록색 옷)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그에게도 장애인들과의 작업은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연출 제안을 받고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연출 대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이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에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가 배우들에게 강조하는 것 또한 예술가로서의 자세다. 그는 “배우들이 예술가적 마인드와 예술가적 몸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해 초연을 올리고 올해 재공연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보다 올해는 공연 연습 시간이 조금 더 주어져서, 작년엔 채 다듬지 못했던 디테일한 작업에 시간을 더 쓰고 있다.
 

장애인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힘든 점은 없을까. 그에게 물었다. “속도가 더딘 것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들이 장애를 가져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작업한 스타일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점까지 가지 않은 점도 있는 거죠. 전 그걸 가만두지 않아요. 공연 올리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해야 해요. 그래서 정말 반복연습을 많이 해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깐 훈련을 계속해야 해요. 이건 장애를 가져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런 경험이 적었던 거죠.”
 

반면, 그는 장애가 있기에 더 극적인 순간이 자연스레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바로 ‘엄마 씬’이다. 그가 가장 정성 들인 장면이기도 하다. 목발 없이(이 역을 맡은 배우는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이다) 무대 위를 구르는 남자, 장애로 인해 자연스레 ‘느리게’ 걸어 나올 수밖에 없는 엄마. 둘의 만남의 순간, 연기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의 느림과 몸의 긴장이 공기를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보조기기에 맡겼던 몸이 보조기기에서 벗어날 때 드러나는 아슬함의 경계는 ‘몸의 진실’과 만난다. 그것이 마음을 건드린다. “만약 비장애인이 했다면 이 정도로 진할 순 없을 거예요.” 
 

실험 창작음악극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 유쾌한 氏의 운수 좋은 날’ 연습 현장
이번 공연에서 엄마 역과 오아시스 역을 맡은 양수경 씨는 작년엔 사이버대학에 다니느라 올해에야 합류할 수 있었다. “작년 공연을 보고 반해버려서, 이번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학교까지 휴학했어요.” 이번 연극은 그에게도 도전이다. 극에서 오아시스는 희망을 상징하는 상징적 존재다. 2013년 문예판의 연극 ‘엄마라는 이름으로’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장애인들이 쉽게 해볼 수 없는 역’이라는 생각에 이번 공연에 선뜻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출이 한계를 미리 결정짓지 않고 밀어붙이는 경험은 배우들에게도 ‘건강한 긴장’을 불어넣는다. “한편으로는 너무 잘 아니깐 저 사람은 여기까지다, 라고 한계 짓는 게 있었죠. 너무 많이 봐준다고 해야 하나. (웃음) 그런데 외부 연출 오면 긴장도 되고 내용도 기존의 것을 벗어나 색다른 걸 접할 수 있으니, 자유롭고 좋은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서 코러스 역을 맡은 문예판의 주은아 씨의 설명이다. 주 씨는 내부에서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생겨버린 ‘상대방에 대한 한계짓기’가 외부와의 만남을 촉발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몇해 전부터 문예판은 적극적인 외부와의 만남을 통해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주 씨는 “지금 판에겐 그런 게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예판과 the튠의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는 오는 21일부터 25일까지 성북마을극장에서 막을 올리며 일반은 2만 원, 장애인 및 동반할인·학생 할인 등을 하면 1만 원에 관람할 수 있다.
 

- 문의 : 문예판 02-745-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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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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