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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말하기
[성과 재생산 포럼] ③
등록일 [ 2016년10월10일 15시38분 ]
[편집자 주] 2015년에는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는 ‘성과 재생산 포럼’(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및 연구자 등으로 구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장애와 젠더’의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성과 재생산 정치에 개입하고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장애와 젠더의 관점은 성과 재생산권리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와 인구, 인권, 생명 문제에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번 연재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난 연재 보기>
① 재생산을 둘러싼 국가와 여성의 역동 : 시기별 변화의 양상과 시사점
② ‘저출산 담론’에 숨어있는 생명정치를 넘어서기 위하여


성과 재생산을 권리로서 다루고 이와 관련된 차별과 폭력, 인권침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세계적으로 계속 되고 있다. 여성으로 지정된 이들은 자라면서 아이를 갖고, 기르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로 가정, 학교, 국가로부터 훈육된다. 이와 관련된 경험이 개별성과 주체성에 대한 인정 없이 강요될 때, 또한 그러한 규범이 강고할수록 성적 실천 자체가 임신-출산-양육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강제되고 수렴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상 성적 실천의 양상과 의미가 실제로 임신출산에 한정된 적도 없고, 가능한 적도 없다. 단지 그것을 지향하기 위해서 캠페인, 제도화, 처벌 등의 공식적, 비공식적 행위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너무 오래된 역사로만 들리는 이 문제는 당연히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제반 사회적인 상황과 만나고 부딪히고 변형되면서. 한편 변화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행위자로서 과학기술과 의료의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다. 피임약과 콘돔이 상용화되면서 성적 규범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개별성과 주체성을 확보해나가는데 있어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과학기술만큼이나 역동적인 것은 성적 규범이다. 이 규범은 단선적인 발전론적 과정을 통해서 진화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정권과 경제위기가 만날 때 국가 차원에서 가정의 가치가 강조되고, 그에 따라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규범 또한 보수화된다. 이때 실제로 작동하는 다양한 욕구와 경험들과 규범 사이에 괴리가 커지게 되고, 그 괴리의 대가는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는 약자들이 치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시술 병원 고발 운동이 벌어졌을 때 정부는 기조를 바꾸어 낙태 단속을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서 낙태 시술의 비용과 위험도가 증가하였으며 그 대가를 오롯이 여성들이 감당하였다.

장애인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선택과 능력에 선행하는 ‘금지’의 문제

 
그렇다면 소수자의 경험과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을 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가능한가. 우선,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정치,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임신-출산-양육의 문제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것은 생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규범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이나 10대, 트랜스젠더의 경우 생식능력이 부재해서 재생산에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금지’되고 이를 어겼을 시 사회경제적인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험을 통해서 재생산의 문제를 선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금지’의 문제로 사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금지’의 문제를 선택이나 능력의 문제로 오해하게 만들고 왜곡하는 구조가 있다. ‘장애인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모자보건법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부모됨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또한 많은 장애아들이 선택적 낙태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은 국가가 허락한 범주 내에서 가능한, 선택 없는 선택이다. 국가가 보기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낙태는 언제든 형사 처벌 될 수 있다는 엄중한 법적 현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능력을 문제 삼고, 그에 따라 자격이 박탈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10대에게는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규범과 동시에 능력을 유예시키는 권력이 작동한다. 10대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 10대가 하는 성적 행위들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좋은가? 라는 질문과 ‘아니다’라는 답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금지 위에서 정당화의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10대의 성적 행위와 임신-출산-양육의 문제를 예외적인 문제로 만들면 만들수록, 실제로 이를 경험하는 이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선택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관계 금지, 임신 금지, 출산 금지라는 허들을 넘고나면 그 이후부터는 예외적인 생명으로서, 10대의 삶과 역사에서 지워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10대의 성과 재생산권리가 정말 건강과 능력의 문제 때문에 제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성과 재생산의 능력은 비장애인임으로써, 성인이 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량이 능력으로, 능력이 자격으로 전치되는 제도 속에서 소수자들의 역량은 오히려 박탈된다고 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보다 비가시적인 상황에 있다. 법적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 생식능력은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마치 재생산권리에 애초에 해당사항이 없는, 발언의 자격이 없는 존재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재생산권리를 요구할 때 아마도 진정한 트랜스젠더인지 의심하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법적 상황에서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성별을 바꿀 수는 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로, 아버지가 어머니로 바뀌어 인정받을 수 없다. 성별을 정정하기 이전에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는, 실존하는 관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신분제도 자체가 가족관계를 증명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를 불안정하게 할 위험이 있다.
 

법 밖의 존재 생산과 성의 범죄화
 

임신과 출산, 양육을 둘러싼 상황으로 인해서 불안정한 시민적 지위가 만들어지고 확증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인 남성과의 성과 재생산의 차원에서 관계를 맺고 난 이후에 비로소 한국사회에서 존재의 의미가 밝혀진다. 국가차원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시행된 다문화정책이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이주행위, 그리고 그 행위자들의 성과 재생산의 경험은 이들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미등록 이주민이나 난민이 낳은 자녀 또한 출생등록을 할 수 없어서 법 밖의 존재가 된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하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본국으로 돌려보내진다. 또한 이주여성이 지역 안에서 산업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대규모로 이주여성에 대한 불임시술이 이루어졌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생식능력을 되돌리는 시술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보건소 등 국가 기관이 개입하였다는 점도 보고되었다. 이렇든 이주여성의 삶을 통해서 재생산과 시민권 지위, 인권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생명 자체가 국민국가 경계에 따라 위계가 매겨질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동성간 커플과 자녀와의 관계도 부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 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서로간의 생명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양육행위는 공식적으로 해석될 수 없어서 취약할 수밖에 없고, 실질적으로는 전혀 참여하거나 기여하지 않았지만 법적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가하는 어떤 친족의 폭력을 막을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동성간 성행위를 범죄로 만들어왔던 역사와 떨어질 수 없다.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했던 서구의 많은 나라와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는 나라가 현존하고 있는 상황이며, 한국사회에서는 군대 내 동성간 성행위를 군형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당사자 간에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하다고 낙인찍고 처벌하는 것은 동성간 성관계를 맺거나 파트너쉽을 유지하는 이들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동성간의 성관계뿐만 아니라 특정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간의 성관계도 처벌받을 수 있다. 성병이라고 부르는 질병만 30여 가지가 되고 HIV와 같이 바이러스 성 성병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지만 특별히 HIV와 관련해서만 전파매개행위가 되는 성관계 등을 처벌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초기에 HIV 바이러스로 전파되어 에이즈가 발병했을 때는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제때 적절히 치료받으면 평생 동안 전파의 위험이 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에이즈 발견 초기에 공포와 패닉에 빠져 제정한 법률과 사회적 인식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공중보건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한 근거없이 성적 권리를 명백히 박탈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권리로
 

성과 재생산 권리는 생명의 보호와 신분의 안정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성과 재생산의 문제가 어떠한 생명이 모체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그 출생의 순간에만 생명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언제나 함께 하는 문제라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또한 사회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정당화되는 특정한 사람, 행위, 관계들을 불법화하는 문제도 성과 재생산 권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권력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저출산을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가임기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강요/권하는 국가의 권력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이러한 과정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인구, 건강한 생식능력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개념이 사회와 국가의 건강의 차원으로 논의될 때 정상성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된다. 이에 따라 강제력과 힘을` 가진 국가는 어떠한 존재나 행위를 비정상적이고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한다면서 불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건전한 성적 행위’와 ‘좋지 않은’, ‘능력이 부족한’ 재생산 행위를 처벌하고 제한하는 권력에 맞서는 작업이 ‘성과 재생산 권리와 건강’을 확보하고 증진하는데 핵심적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 소수자들이 왜 성과 재생산 권리가 생명의 문제이자 인권의 핵심적인 문제인지 설명하는 이유이다.

*본 글은 지난 8월 25일에 ‘소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말하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성과 재생산포럼]×[IL과 젠더포럼]의 논의와 이에 대한 소감에 기반하여 작성하였다.

[성과재생산포럼] x [IL과젠더포럼] 웹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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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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