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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단종·낙태 국가배상 소송 항소심 재판부의 이상한 남녀평등
여성의 배상액 절반 후려쳐 양성평등?...여성의 재생산권 논의 시작해야
등록일 [ 2016년10월12일 16시29분 ]
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수술 국가 배상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잇따라 원심보다 후퇴한 판결을 내려 한센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해방 후 80년대까지 한센인 산아제한 정책으로 이뤄진 강제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의 피해자 500여명은 2011년부터 6차로 나누어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 확정이 한 번에 안 되어 사안은 같지만 원고가 다른 6건의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4년 광주지법 민사 2부의 판결부터 2015년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의 판결까지 법원은 모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여 정관수술 피해 남성에게 1인당 3000만원, 낙태수술 피해 여성에게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해 왔다. 
 
그런데 2016년 9월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30부(부장판사 강영수)의 항소심 판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긴 하지만 배상액을 감액하여 남녀 균일하게 2000만을 선고한 것이다. 11일 후 10월 4일 서울고법 민사 26부(부장판사 서경환)의 항소심 재판부도 남녀 균일한 2000만원의 배상을 선고했다. 재판부 스스로 “직접 소록도를 방문하고 온 재판부의 판결 등 제반 사정을 감안”했다고 인정하듯 9월 23일 서울고법 민사 30부 판결을 본받은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여러 건의 판결에도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다면, 소록도국립병원에 ‘특별법정’까지 열어 국민적 관심을 끈 서울고등법원 민사 30부의 판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원심보다 국가 책임을 경감시켜 감액된 위자료를 선고한 논리도 문제지만(▷관련기사: 국가가 한센인의 ‘피의 역사’를 지우고 있다) 원심의 남녀 차등 배상액을 문제 삼으며 남녀 균일하게 2000만원 배상을 선고한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 

2016년 6월 20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30부(부장판사 강영수)가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소회의실에 마련한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9월 23일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로 시작하는 헌법 제11조를 판시 근거로 삼았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영역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헌법이 요구하는 평등원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낙태 수술과 정관절제 수술로 인해 “여성과 남성으로서 받았을 정신적 고통은 서로 그 정도를 비교하여 그 경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 그럼에도, 남녀 배상액에 차등을 둔 원심 판결은 “평등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 제 11조까지 끌어들인 이 판결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우선, 원심의 남녀 차등 배상이 평등권을 침해했다면 남자 배상액을 1000만원 증액하여 4000만원으로 평등하게 맞추는 게 합당하다. 그런데도 굳이 여자 배상액을 절반이나 감액한 것은 권리의 평등이 아니라 손실(고통)의 평등이라는 점에서 평등권의 취지에 어긋난다. 
 
재판부는 강제 낙태와 정관수술로 인한 피해가 “서로 그 정도를 비교하여 그 경중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둘 간에 “차이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재판부도 인정하듯이 최소 40년, 최대 70년 전의 낙태, 단종 수술로 인한 피해정도를 개별적 차이까지 감안하여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재판부가 “낙태수술 및 정관절제수술로 입은 정신적 손해에 관한 배상범위는 각 2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결할 때 그런 금액산정의 자료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것은 ‘자료’가 아니라 ‘합리적 직관’에 따른 가치평가이다. 원심의 재판부가 남성에게 3000만원, 여성에게 4000만원으로 배상액에 차등을 둔 것도 강제적인 정관수술의 피해와 낙태수술 피해의 질적, 양적 차이에 대한 합리적 직관이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는 없는 ‘자료’가 아니라 원심의 ‘합리적 직관’을 문제 삼아야 했다. 이전 재판부가 남녀 배상액에 차등을 둔 합리적 직관은 무엇일까? 한센인 측 변호인단의 조영선 변호사는 “주먹으로 맞은 것과 몽둥이로 맞은 것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은 신체에 가해지는 침습과 그로 인한 손상의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여성 피해자들의 증언에 르면, 의사 면허도 없는 이가 마취도 없이 낙태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부작용에 대한 치료도 없었다. 정관절제 수술 피해 남성들의 기억이 “굴욕감과 비참함” 등 막연한 정서적 표현에 그친 반면, 낙태 수술 피해 여성들의 고통과 공포와 후유증은 오롯이 신체에 각인되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또한, 같은 산아제한이라도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은 폭력의 실재성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정관수술로 인해 남성은 ‘생길 수도 있는’ 자식을 잃게 되지만, 낙태수술로 인해 여성은 ‘이미 생긴’ 태내의 생명을 빼앗긴다. 임신 사실이 겉으로 드러난 후 이뤄진 낙태수술은 대부분 임신 3개월 이후에 이뤄졌다. “배에다가, 그러니깐 아이 머리에다가 주사 놨다. 그러면 아이가 죽는다. 이후 약물로 꺼낸다.”는 증언이 많았다. “7,8 개월 된 태아를 개복수술로 꺼내 죽인” 사례도 있다. 정관절제수술로 인해 남성은 “자녀를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강제 낙태수술로 인해 여성은 “태아를 지키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이 평생 마음에 한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이 겪은 끔찍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맞먹는 것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정관수술 피해 남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상실감, 자녀를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당시 느꼈을 치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분노로 고통받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피해 남성들의 증언에 감정 이입하여 판시된 피해사실들 중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지금의 젠더 감각으로는 이해 불가하며, 그 연장선상에 있는 “치욕”이나 “자녀를 가질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역시 여성의 정신적 상처에 비해 감도가 떨어진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제적 정관절제 수술로 인해 남자가 침해받은 권리가 정확히 뭐라고 생각했을까? 최소 40년 전 강제적으로 정관절제 수술을 받은 노년의 남자들 마음 속에 있는 권리, 그들에게 감정 이입된 항소심 재판부의 의지 속에 있는, 그러나 발설할 수 없는 권리는 아마도 ‘대를 이을 권리’가 아닐까? 남자로서 대를 이을 권리, 자식을 낳아 노년에 봉양 받을 권리 말이다. 만약, 이 재판이 40년 전, 아니 30년 전이라도 벌어졌으면 어땠을까? 미래의 자식을 원천 봉쇄당한 남자들의 권리 침해가 훨씬 높이 실감나게 평가되고, 겨우 '남자의 아이를 뱄다가 떼인' 여성의 모성권은 더 낮게 평가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회적 통념도 달라졌다. 남자의 대를 이을 권리, 자식을 가질 권리는 막연하게 ‘행복추구권’, ‘인격권’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결정권은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 속에서 훨씬 분명한 사회적 감각이 되었다. 이전 재판부들이 한결같이 정관절제 피해 남성보다 낙태수술 피해 여성의 배상액을 더 많이 인정한 것도 이런 사회적 감각의 변화 때문이다.
 
서울고법 민사 30부는 바로 그 점이 못마땅했던 게 아닐까? 산아제한으로 침해받은 남자의 가부장 권리보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더 높이 평가한 것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느낀 건가? 그래서 국가폭력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생뚱맞게 양성평등을 외치며 여성의 피해(배상) 액을 후려 쳐 남자와 똑같이 맞춘 건가? 페미니즘으로 인한 남성의 ‘역차별’을 시정하여 ‘양성평등’을 실현하자는 해괴한 평등론이 아니라면 서울고법 민사 30부의 이 눈물겨운 평등 의지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강제적 산아제한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 공히 침해받은 권리로,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재생산권'의 침해 차원에서 여성의 피해와 남성의 피해는 평등하게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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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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