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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씨의 두 번째 외출, ‘나는 두렵다’
자유로운 삶 원해 탈시설 희망하지만 내∙외부적 어려움 직면
그들의 불안함을 방조하지 않기 위해 사회의 준비가 필요하다
등록일 [ 2016년10월24일 15시51분 ]
J 씨를 기억하시는지. 가평 꽃동네에 거주하고 있으며,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외출을 허락해줄 수 없다’는 시설 측 주장에 맞서 기어이 외출을 하고야 말았던 사람(▶관련기사 : 꽃동네 거주인 J 씨의 '외출 프로젝트'). 몇 시간에 불과했던 외출이 성사되고 4개월이 흐른 지난 10월 13일, J 씨는 1박 2일 동안 더 긴 외출을 했다. 그리고 이번 외출은 탈시설을 준비하는 여정의 첫 발자국이었다.

J 씨와 친구들이 대학로를 걷고 있는 모습.
 
J 씨가 시설 바깥으로 나온 것은, 지난번 짧은 외출을 제외하면 8년 만이다. 그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 다녔던 노들장애인야학에 다시 다니며 한글 공부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J 씨는 머리가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핸드폰도 목에 걸고 있었다. 야학 수업을 듣기 전, J 씨는 쇼핑을 했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기 위한 이어폰과 자신의 소지품을 넣기 위한 작은 가방. 선호가 뚜렷한 J 씨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을 때까지 대학로를 누볐다.

J 씨의 갑작스런 변심
 
사건(?)은 그날 밤에 터졌다. 그가 하루 머물기로 한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평원재’로 8년 만에 나온 J 씨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족발을 시켜 둘러앉은 조촐한 파티 자리에서 J씨가 돌연 ‘그냥 꽃동네에서 계속 살겠다’고 한 것이다. 그의 탈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야학 교사들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함께 준비해왔던 일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폭탄선언이었다. 외출도, 탈시설 계획도 모두 시설에서 나오고 싶다고 J 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시작됐던 일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탈시설 철회 선언을 해버렸으니, 사람들은 헛웃음만 웃었다. 이유를 물으니 ‘꽃동네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야학으로 차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거주시설의 빠듯한 인력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완강했다.
 
다음날 다시 꽃동네로 돌아가 확인해보니, 역시나 J 씨의 주장은 오해였다. 원장 수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는 그럴 여건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J 씨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번졌다. J 씨는 ‘꽃동네에서 통학을 할 수 없다면 탈시설을 하겠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그의 이런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며, 모두가 설명해도 듣지를 않았을까. 가평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J 씨의 오랜 지인이자 야학 교사인 H 씨는 “J 형이 워낙 고집이 세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약한 소리를 안 하려고 하는 분이라서 그래요. 아마 ‘시설에서 나오기 겁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나름 핑곗거리를 댄다고 한 말일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내게 있어 ‘탈시설’의 이미지는 늘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들의 결단’같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되는 숭고한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탈시설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면 늘 투쟁의 역사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탈시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잘 해보지 못했다. 그들의 두려움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J 씨는 원래 자기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설에서 그는 8년 내내 침대에 누워 지냈다. 시설에 들어가기 직전, 건강이 악화되어 잘 걷지 못해 침대에 누워 지내기 시작했고, 침대에 누워있는 삶에 익숙해진 그의 걷는 근육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가 잃은 근육은 또 있다. 누워 지내야 했던 J 씨는 소변줄을 끼고 살았다. 소변을 참을 필요가 없어진 J 씨는 배변조절에 필요한 근육이 쇠퇴되었고, 결국 이번 외출때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해야 했다.

야학에서 나오는 급식과 야식으로 주문한 족발을 맛깔나게 먹던 J 씨는, 시설에서 유동식(음식을 모두 갈아 넣은 것)을 먹었단다. 이 역시 시설에서는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는 식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는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시설의 ‘관리 편의’에 길들어 가면서 하나씩 소거되어갔다.

J 씨가 노들야학에서 급식을 받은 모습. J 씨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는 야학에 급식이 없었는데 생겨서 너무 좋다. 맛있다"라며 한 접시를 다 비웠다. 그는 시설에서는 유동식만 먹었다고 했다.
 
J 씨는 불안했던 것이 아닐까. 시설에 적응되어버린 신체는 지속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는데,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은 그에게 생소한 개념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을 받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도 하다. 8년 시설생활 이후 이뤄진 1박 2일 ‘시설 밖 체험’이 그의 무력감을 극대화하지 않았을까. 나는 혼자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아니, 그럴 수 없는 몸이다, 라는 무력감.

준비되지 않은 쪽은 누구인가
 
그러나 과연 ‘준비된 것 없는’ 쪽이 J 씨일까. 시설에서는 ‘별로 손이 안 가는’ 축에 속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걸을 수도 있고, 오른쪽 손은 마비가 있었지만, 왼쪽 손은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했기에 혼자서 천천히 옷을 입거나 양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도, 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모두 ‘준비된’ 그의 성공적 자립을 기대했다. 그는 2013년, 시설에서 나왔다.
 
하지만 시설과 지역사회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설 안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널 일도, 밥을 할 일도, 물건을 살 일도 없었다. 그의 걸음은 시설 안에서 이동하기엔 충분했지만, 횡단보도를 제시간 안에 채 건널 수 없는 속도였다. 짜장면이 500원이던 시절 시설에 들어갔던 그는 5000원으로 껑충 뛴 짜장면 값에 기겁을 했다. 양치나 세수는 왼손으로 가능했지만, 그 밖의 거의 모든 것은 불가능했다. 느리고 아픈 걸음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타야 했다. 다행히 누군가 기증한 전동휠체어를 갖게 되었지만, 오른쪽에 달린 조정기를 왼쪽에 달았음에도, 그의 왼손은 스틱 조작도 버거웠다.
 
전깃불을 끄고, 세탁기를 돌리는 생활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들도 ‘자립생활 기술 훈련’을 받아야 했던 그는 활동보조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이 그에게 내린 등급은 3급. 당시 3급은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아마 ‘그’가 누구인지 눈치챈 사람도 있으리라. ‘그’는 홀로 집에 있다 집 안에 번진 불을 피하지 못해 화상을 입고 5일 만에 사망한 故 송국현 씨다.
 
국현 씨의 탈시설을 지원했던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성동센터)는 자부담으로 활동보조를 지원했다. 정동은 성동센터 국장은 “홀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분이니 활동보조를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2-3달 정도만 지원하면 될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3급을 받고, 이의신청을 하면서 자부담으로 지원해야 하는 기간은 점점 늘어났고, 결국 성동센터 예산이 모두 소진되었다. 성동센터는 활동보조의 빈자리가 커지지 않을 수 있도록 꼼꼼한 지원계획을 수립했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에는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지원을 했고, 때론 지인의 집에 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인의 집에 가 있기로 했던 날, 그는 전화를 받지 않은 채 집에 홀로 남았다. 그리고 그날, 그의 집에 불이 났던 것이다. 싱크대를 녹이고, 에어컨을 녹인 불길이 시설과 지역사회 사이에 끼어있던 그를 덮쳤다.
 
정 국장은 국현 씨가 탈시설 이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시설에서 나오면 뭔가를 바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뭐 하나 되는 게 없고, 활동보조도 받지 못하고.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구나? 꿈은 핑크빛인데 (뜻대로) 안 돼서 힘들구나? 라고 물었더니 국현 씨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껑충 뛴 물가와, 언제까지 활동보조 없는 삶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돈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국현 씨는 통장에 집착하며 도둑이 들어 가져가지 못하도록, 통장 안에 칼을 넣어두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급기야는 환청을 듣고 자해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J 씨와 국현 씨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나. 그것은 그들을 받아들일 아무 준비도 해놓지 않은 채 ‘적응하지 못하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설 밖의 세상이었다.

불에 탄 송국현 씨의 집. 장애 3급 판정을 받아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 그는 무척 불안해했다.
 
한꽃님(가명) 씨 역시 탈시설 한 후 거의 한 달간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는 활동보조나 자립생활주택 제도 자체가 없었던 2006년 8월에 시설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갈 곳이 없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실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야학에서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던 체험홈으로 겨우 거처를 옮겼지만, 그마저도 방은 한 칸이었고 이미 쓰는 사람이 있었다. 부엌에 침대를 두고 지내던 꽃님 씨는 활동지원을 해줄 사람이 없는 주말이면 천막농성장에 가서 종일 있기도 했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활동보조 가지고 장난 좀 안 쳤으면 좋겠다고, 장애인들 생명이 달린 절박한 문제라고 했다. 그의 말 사이 사이에 사무친 절박함의 기억이 묻어난다.
 
시설에서 체화된 무기력과, 준비 없는 사회 사이에서 많은 장애인이 두려움과 불안감의 늪에 빠져있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언제고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실제로 이런 이유로 사망한 사람이 많다), 체험홈에서 2년 살다가 끝내 살 집을 못 구하면 다시 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먹고 살아남기에도 빠듯한 수급비로 평생 살아야 하나. 정 국장은 “국현이 형 장례식 때, 시설 관계자들이 와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들쑤셔서 데려 나와 결국 죽게 만드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탈시설을 지원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J 씨와 국현 씨, 그리고 꽃님 씨에 이르기까지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고, 바다에 갈지 꽃을 보러 갈지, 아니면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는 게 굳은살’ 같았어도 나온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꽃님 씨는 시설에서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나오라며 ‘차비’ 2천만 원을 탈시설 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노들야학’에 전달했다. 기초생활 수급비를 받아 살면서도 한 달에 20만 원을 차곡차곡 모아 만든 2천만 원을 탈시설을 위해 내놓은 그의 행동은, 그에게 탈시설이 얼마나 ‘아름다운 역전’이었는지를, 그리고 이 행복을 아직 못 누리는 이들을 향한 꽃님 씨의 안타까움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시설에서 지역사회를 잇는 다리는 너무도 허술하다. 장애인에겐 숨과도 같은 활동보조서비스는 정부가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이라며 지자체의 추가 지원을 깎아내려 하고 있고, 신청 자격을 3급으로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3급 장애인의 신규 유입은 미미하다. 자립생활주택의 경우, 가장 제도가 탄탄한 서울시에서도 입주 대상자로 선정되어도 10명 중 3명은 입주까지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탈시설 직후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자립생활정착지원금’도 장애인시설이 아닌 노숙인 시설이나 노인 시설에 있다가 나온 장애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권리이다. 탈시설 당사자들이 시설과 사회의 간극을 힘겹게 메워가는 과정을 보며, ‘그냥 편하게 시설에서 살지 뭣 하러 고생스럽게 나와서...’라는 생각을 했다면, 당신은 그들을 향한 폭력에 이미 동참한 사람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차라리 평화로운 시설에서의 정주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이 너무 더뎌지지 않도록, 그들이 시설 밖에서 느끼는 감정이 낯섦에 적응해가는 불안함 이상으로 커져가지 않도록, 제도의 온전한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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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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