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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장애인의 ‘일상 속 재난, 재난의 일상’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을 보면서
등록일 [ 2016년10월25일 12시42분 ]

To. 어디에선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사토 마사아키 씨에게


어쩌면 영영 닿지 못할 수도 있는 편지를 당신에게 띄워요. 지금 당신이 계시는 곳은 어떤 곳인지, 혹 불편한 점은 없는지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묻지는 않겠어요. 다만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에서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 당신이 남겨 놓고 간 여백을 차분히 채워가는 일이 제가, 그리고 당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겠죠. 이 편지는 그 여백을 채우는 첫 번째 편린(片鱗)으로 받아주셨으면 해요.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성훈이라고 해요.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생면부지의 한국인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한번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저는 1년 전 초여름 무렵 한국에서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서울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이라는 영화를 통해 사토 마사이키, 당신을 알게 된 것이죠. 그 때 저는 혜화역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야외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당신의 사진을 보고 멈춰 섰어요. 당신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차지했죠. 이와키 자립생활센터 이사장 하세가와 히데오 씨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시간도 멈춘 듯 했어요. 실제로 그 영화에서 당신의 이야기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지만 제 기억 속에 오래 남겨졌어요. 결국 저는 멈춘 그 자리에서 끝까지 영화를 보았어요. 히데오 씨는 당신의 집터가 남아있었던 곳에서 2011년 3월 11일, 그 날의 일을 전해주었어요.


“쓰나미 경보가 나니까 형수님이 돌아와서 그와 할머님을 구하려고 했는데, 휠체어에 태우는 순간 뒤돌아보니, 저쪽 지붕보다 높은 파도가 오는 게 보였대요. 사토 씨는 “포기합시다”라고 했대요. 그 직후 쓰나미가 휩쓸어갔다고 해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의 한 장면. ⓒ서울인권영화제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쩌면 나도 당신과 같이 지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만에 하나 살아남더라도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폐허에서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이 번갈아가면서 들더군요. 감정의 교차는 진자운동처럼 이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삶에 ‘만약’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보았어요.


만약 사고 당시에 당신 곁에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면……
만약 일본 자위대가 당신의 집으로 먼저 달려갔었더라면……
지금쯤 당신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물론 그 꼬리표는 이미 흘러버린 시간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저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지만, 제 머릿속에는 ‘꼬리표 잇기’가 계속 이어졌어요. 그러다 지금의 제 삶과 한국의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까지 생각이 미쳤죠. 말하자면 당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듭이 된 셈이에요. 당신은 가고 없지만 아직 당신의 자리에 남아 있는 온기를 보듬고 간직하는 일, 그리고 그 온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야말로 나약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와 원전사고라는 인재(人災)는 후쿠시마와 주변의 피해지역 사람들뿐 아니라 전(全)일본인들의 일상을 뒤엎는 사건이었어요. 피해복구 과정에서 일본정부가 보인 안일한 태도와 피해 양상에 대한 조직적 은폐는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끔찍했고요. 참혹함 그 자체 속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여기서는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던 외국인 등을 포함해서)은 무너진 일상을 스스로 일으켜야 했죠. 하지만 장애인들은 사정이 달랐어요.


사토 마사아키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특히 참사를 겪은 장애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란 더욱 힘든 일이잖아요. 아니, 어쩌면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일궈낸 일상은 한 번 무너지면 복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일상생활의 패턴을 다시 짜야할 테니까요. 그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상당한 용기와 주변의 도움이 필수적인 일이에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은 당신뿐 아니라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후쿠시마 현, 그리고 주변 지역의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어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말하고 카메라는 묵묵히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어요.


재해에서 살아남은 장애인들은 피난의 기로에서부터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혹시나 자신이, 또는 자신의 장애인 자녀가 대피소 내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피난을 포기하는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도 있었고요. 피난을 포기한 장애인들의 상당수는 대부분 자폐성 장애인들이 많았다고 해요.


대피소로 피난을 간 장애인들도 곤경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된 대피소에서는 장애인들이 편히 안정을 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가령 바닥에서 잠을 잘 수 없는 장애인 분이 대피소에 침대를 설치해줄 것을 요청해도 16일이나 지나서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겨우 대피소에서 나와 가설주택에 입주해도 경사로가 없어 보조인이 없으면 외출하지 못하는 등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했어요.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3.11 참사가 나자 행정적 지원 대상을 ‘장애인 수첩을 가진 사람들’로 한정했는데 이 범주만으로는 정신장애인, 난치병 환자, 발달장애인, 고차뇌기능 장애인 등 일본의 행정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 장애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했어요. 다르게 말하자면, 이 범주에 속하지 못한 장애인들은 일본 정부가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국민’의 경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죠. “피넛”과 같은 민간단체가 자체적으로 지원 대상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하려 했지만 오히려 일본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근거로 재제를 가한 적도 있다고 해요.


저는 그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었어요. 저는 피해자들이 지원받아야 할 물품과 행정적 서비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재난은 ‘평등하게’ 사람들의 일상을 덮치지만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있어 장애인들은 불평등을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 차이를 간과하고 장애인 당사자의 인내와 희생만을 감당하도록 요구한다면 그 국가의 ‘보편적 인권’ 수준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느 한 개인(장애인 당사자)이 자신으로 인해 발생할 타인(비장애인)의 고통과 피해를 감각하는 행위는 인간의 고귀한 행위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편견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학습되어 자신의 고통까지 숨겨야 하는 가림막이 된다면, 또는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 본연의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이 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의 한 장면. ⓒ서울인권영화제


하지만 ‘피난을 포기한 장애인’들은 절망에만 빠지지 않았어요. 그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위 사람들과 연대하며 삶을 지속해나갔죠. 대표적으로 미나미소마 시에 위치한 “피넛”이라는 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피넛”은 지적 장애인들의 생활간호 및 생활훈련 작업소인데 대지진 이후 미나미소나미 시에서 피난 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피넛”이 폐쇄될 예정이었다고 해요. 더군다나 그쯤 미나미소마 시는 원전 사고로 실내대피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피난을 포기한 장애인들과 가족이 “피넛”을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을 해왔고 일본 정부는 고심 끝에 허가를 내렸어요. “피넛”이 다시 문을 연 직후에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쏟아졌어요. 그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피난을 포기한 사람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그러나 지원인력의 부족으로 전면적인 지원은 어려웠고 지원 대상에 대한 수요조사 자체에도 한계가 따랐어요. 하지만 민간단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시민단체와 연대하며 ‘함께 하는 삶의 방식’을 모색했어요.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 또한 곤경에 처해 있는 후쿠시마 현의 장애인들에게 스스럼없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곧바로 보내주거나 직접 자원봉사자가 되어 후쿠시마 현에 있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도와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연대를 시도했어요. 저는 한편으론 그것이 부럽기도 했어요. 한국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끈끈한 연대를 자랑하는 장애인운동단체가 있지만 장애인에게 사고나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국 정부의 행정 시스템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현재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해오고 있듯이 모든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일본의 사례처럼 장애인들끼리, 더 나아가서 시민들끼리 연대하며 자생할 수 있는 자체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일본 정부 또한 재난 피해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게을리 해선 안 되겠지요.


두서없이 편지를 적다보니 글이 조금 길어졌네요. 저는 사토 마사아키 당신의 삶을 생각하다 지난 2014년에 돌아가신 故 송국현 씨가 떠올랐어요. 그 분도 활동보조인이 부재한 사이 자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으셨죠. 물론 당신과 송국현 씨의 죽음을 동일시할 순 없지만 두 분은 국가의 책임에 대한 물음을 남기고 떠나셨다고 생각해요.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역시 저희의 과제겠죠.


아참, 그리고 오는 10월 27일 저녁 7시에 한국의 노들 장애인야학이라는 곳에서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 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이 다시 한 번 상영하게 되었어요. 영화 상영 후에는 노들장애인야학, 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와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고 하네요. 저는 사토 마사아키 씨를 알게 되는 한국인이 늘어나 기쁘게 생각해요. 그날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랄게요.


하아. 편지를 쓰는 내내 이것만은 묻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떠오르네요.


지금 당신이 계시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 2016. 10. 23. 3·11 이후의 당신의 삶이 무척 궁금한 홍성훈 드림 -
 

 

홍성훈의 난장판

뇌병변 1급 장애인.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열등감이었다'. 일반 초중고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했고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한다.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인정투쟁이 아닌 또 다른 논리로 소수자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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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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