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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이고, 여성의 결정권은 ‘사익’인가?
‘성과 재생산포럼’ 주최로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 포럼 열려
여성의 신체 통제하는 낙태죄… 폐지 주장하며 29일 ‘검은 시위’ 나서
등록일 [ 2016년10월26일 19시02분 ]

“나의 자궁은 나의 것”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의 구호다.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행하는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할 수 있다는 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은 유례없는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낙태 문제에 있어 ‘여성단체’들이 목소리를 낸 적은 있지만, 개별의 ‘여성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사례는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여성들은 낙태 경험을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앞서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사익’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헌재는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며,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제외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등이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은 정말 충돌하는가? ‘그렇다’고 암묵적으로 동의되어 왔던 기존 프레임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여성들은 금기시됐던 낙태 경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낙태를 둘러싼 견고한 틀이 최근 ‘검은 시위’를 기점으로 미세하게 비틀리고 있다. 이제 여기에 대해 여성들이 판을 뒤집고자 한다. 25일, 창비 서교빌딩에서 ‘성과 재생산포럼’ 주최로 열린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 포럼은 낙태를 둘러싼 기존 논의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자리였다.

25일, 창비 서교빌딩에서 ‘성과 재생산포럼’ 주최로 열린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 포럼
 

낙태를 둘러싼 다중 메시지 : 하면 안 된다 vs 낙태로 해결해야 한다


이유림 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원은 “‘낙태를 하면 안 된다’와 ‘낙태를 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이중의 시선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미혼 여성의 낙태는 지탄받지만, 자녀 터울 조정을 위한 기혼 여성의 낙태는 용납되며, 모자보건법이 명시하듯 장애여성의 낙태는 사회적으로 권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사회적 맥락은 고려되지 않았다. 낙태한 여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즉각 ‘제 몸 간수 하지 않은 여성’을 떠올린다.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이를 노골적으로 명문화한 법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료진을 처벌하는 반면 남성(배우자)에 대한 직접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모자보건법은 남성(배우자)에게 오히려 낙태에 대한 동의권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낙태하고자 하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없다고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일 남성 파트너를 찾아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구걸하거나 다른 남성에게 그 역할의 대행을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성인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 권한이 일차적으로는 배우자에게, 부차적으로는 아버지(다른 남성)에게 주어지는 가부장제가 작동한다. 이로 인해 “여성을 통제하고자 하는 남성은 함께 낙태를 결정하고도 여성을 낙태죄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 고발하는 기막힌 일들이 일어난다”고 최 변호사는 말했다.
 

이러한 범죄화는 여성의 입을 틀어막는다. 최 변호사는 “형사처벌의 두려움은 여성들이 낙태 경험을 주변에 공유할 수 없도록 하여 여성들을 고립시키고 죄의식을 강화시킨다”면서 “여성이 낙태 경험을 보고할 수 없으므로 낙태 실태조차 파악할 수 없다”고 전했다.
 

헌재가 2012년 낙태죄 합헌 판단을 내린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처벌하지 않으면 낙태가 만연하게 될 거라는 거였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처벌한다고 하여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낙태해야만 하는 이들은 결국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 의사들을 고발하던 2010년 이후 기존 30~50만 원이던 수술비는 10배 오르고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가는 일도 발생했다. 높은 비용은 10대 여성과 소득활동이 없는 여성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낮은 비용의, 더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여성들을 몰아가는 거다.
 

최 변호사는 “이는 낙태죄가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겉으로 볼 때 낙태죄로 고발당하는 것은 의사들이지만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이라면서 “임신의 한 주체인 남성은 책임과 위험부담 측면에서 사라지고 없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입법예고에도 나타났다. 복지부가 12개월의 자격정지까지 처할 수 있다며 의료인 규제에 나서자, 의사들은 낙태 시술 전면 중단 방침을 선언했다.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때 피해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여성이다.
 

낙태죄로 유지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이 아니라 ‘생명의 선별’


낙태 논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 중 하나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은 “생명권이냐, 결정권이냐는 구도로 갈 때 열띤 논쟁 중 하나가 ‘생명의 권리가 시작되는 시점’에 대한 판단이다. 그러나 이는 임신한 여성과의 관계나 법적 주체로 권리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아닌 의료·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영 센터장은 “배아 이용에 있어 ‘원시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라면서 “수정 후 14일째 나타나는 원시선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음에도 체외에서의 배아 이용에 대한 윤리적 명분 도입을 위해, 배아에 중요한 위치가 부여됐다”고 밝혔다.
 

나영 센터장은 실제 법체계에서도 배아, 태아, 영아, 사람의 보호법익이 모두 다름을 지적하며 국가가 태아 생명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특히 배아보다 태아에 대한 형량이 낮은 건 주의 깊게 볼만하다. 배아의 경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훼손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지만, 태아의 경우엔 형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나영 센터장은 “배아의 경우, 생명의료기술발전으로 보다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태아보다 강한 규제를 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낙태죄를 통해 유지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이 아니라 생명의 선별에 가깝다. 나영 센터장은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요건들을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로 넣음으로써 인구의 수뿐만 아니라 인구의 질까지 관리하고자 했던 국가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면서 “이제 이러한 우생학적 선별 과정이 생식세포와 배아 단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낙태죄에 따라오는 질문을 “왜, 어떤 생명이 무슨 기준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가”로 바꿔야 하며, 이에 개입하는 국가와 의료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아의 생명권 맞은편에 있는 ‘여성의 결정권’ 또한 면밀하게 봐야 한다. 여성의 결정권 역시 장애, 질병, 연령, 교육 수준, 국적, 이주 상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에 따라 동등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주어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프레임은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고, 낙태죄는 이에 대한 처벌을 가능하게 한다.
 

나영 센터장은 “왜 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이고 여성의 결정권은 사익인가?”라고 되물으며 “결국 국가와 사회가 출산을 여전히 남성 가부장의 대를 이을, 새로운 인간 노동력 생산 과정으로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정상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체외수정 시 이뤄지는 선택 유산은 ‘낙태’와 무엇이 다른가?


현대의 보조생식기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생명권 vs 선택권’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이 문제의식을 밀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난임 부부의 출산을 위한 체외수정 중 이뤄지는 선택유산도 이에 해당한다. 미국 매릴랜드대학 여성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김선혜 씨에 따르면, 25~30%에 불과한 체외수정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하는 시술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 경우, 저체중아와 조산 위험이 있는 다태아 임신 문제가 일어난다. ‘자연’ 임신의 경우 다태아 출생률은 2%지만, 체외수정의 경우 다태아 임신은 전 세계에서 30% 정도로 비율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2개 이상의 배아가 착상될 경우, 선택 유산이 이뤄진다.
 

이에 김 씨는 “선택 유산이 다른 인공임신중절과 다른 점은 임신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시행하는 수술이라는 것인데, 이 둘을 어떻게 같게 혹은 다르게 이해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기존 ‘낙태에 대한 규범’이 얼마나 편향적이며 ‘생명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상황적인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임신·출산을 둘러싸고 누구의 권리가 주장되어야 할지는 법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의 문제이며, 윤리의 문제이다”면서 “이것이 낙태죄 폐지라는 동일 목표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재생산을 둘러싼 다양한 권력관계들이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이유이자 새로운 재생산 윤리를 고민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현재 복지부는 의사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입법예고안을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그러나 설령 철회한다고 해도 이는 지금 상태로 다시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낙태죄 폐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날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죄 규정이 사문화되었긴 하나, 존재하는 한 언제나 처벌할 수 있으며 실제 처벌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 말미엔 “나의 자궁은 나의 것”에 포섭되지 않는 다양한 논의들을 담을 수 있는 구호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은 그 구호들과 함께 오는 29일 오후 2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또 한 번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나선다. 드레스코드는 검정이다.

25일, 창비 서교빌딩에서 ‘성과 재생산포럼’ 주최로 열린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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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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