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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주름살 비틀어 짜낸, 줬다 뺏는 ‘기초연금 20만 원’
국가는 왜 가장 가난한 노인의 수급비를 가로채는가
등록일 [ 2016년11월03일 20시33분 ]

동자동을 걷는 김호태 씨의 뒷모습


삶은 가난에 통제됐다. 늙음은 그 삶을 더욱 무기력하게 눌렀다. 납작해진 삶은 달리 갈 곳이 없다. 지금 이곳 외에는.
 

이세원 씨(78세)는 작년 겨울, 공원에서 운동하다가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병원에선 수술하라고 했지만, 수술비가 없어 하지 못했다. 그 뒤로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됐다. 그럼에도 야학에 나가는 걸 그만둘 순 없었다. 그는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이 운영하는 홈리스야학 학생이다. 야학에 다닌 지는 8년가량 됐다. 수업은 월, 화 이틀뿐이지만 그는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에 야학에 나간다. 수업은 오후 4시에 시작해 5시에 끝나나, 그는 사과 두 조각을 아침으로 먹고 낮 12시에 집을 나서 저녁 8시까지 야학에 머문다.
 

사고 후에도 이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걷는 게 힘들어지면서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게 됐다. ‘차비’가 들기 시작했다. 그의 집은 서울 강서구 공항동, 야학은 용산구에 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과거엔 걸어 다녔는데 이젠 버스(1300원)를 타게 됐다. 지하철 타고 남영역에 내리면 야학까진 택시(기본요금 3000원)를 탄다. 야학은 버스가 닿지 않는 주택 골목을 굽이쳐 들어간 안쪽에 있다. 이 역시 과거엔 걸어 다녔던 거리다. 총 하루 왕복교통비만 8600원.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올해 수급비 생계급여는 47만 1201원이니 한 달 수급비의 1/3을 교통비에 사용한다. 
 

그는 영등포에서 노숙하던 중 홈리스행동을 만나게 됐다. 단체 도움으로 야학에서 생활하다가 고시원을 거쳐 지금의 임대주택에 살게 됐다. 임대주택 보증금 150만 원은 밥도 안 먹고 1년 넘게 모은 수급비로 겨우 마련했다. 그에게 야학은 구원과도 같았다. 자신을 도와준 만큼 그도 야학을 돕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여기 와서 꼭 지내보자” 그 마음으로 매일 이곳에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달리 갈 곳이 없기도 하다. 동네 노인정은 절대 가고 싶지가 않다. “나도 늙었지만 늙은 사람들 잔소리가,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지.” 한 번 간 뒤로 다신 가지 않는다.
 

야학에 오면 그는 컴퓨터 카드게임을 한다. 카드를 맞췄을 때 카드 여러 장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쾌감, 마침내 한판을 ‘클리어’했을 때 소리 없이 터지는 폭죽. 카드게임은 현실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성취감과 쾌감, 재미를 안겨줬다. 한판, 두 판, 연이어 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간다.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야학에도 하나, 둘 사람이 들어찬다. 조용했던 주변은 사람들 이야기 소리, TV 소리로 채워진다.

이세원 씨가 홈리스야학에서 컴퓨터로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교통비와 월세 4만 8000원을 내고 남은 돈은 “신중하게” 밥값으로 쓴다. 야학 수업이 있으면 야학에서 저녁을 먹고, 그렇지 않은 날엔 단골 식당에서 먹는다. 야학은 천 원, 식당은 한 끼 6000원이다. 수업 없는 날에도 야학에서 저녁 먹는다고 누가 눈치 주는 것도 아니건만, 그는 수업 없는데도 야학에서 밥 먹는 건 “창피하다”고 손사래 친다. 그렇게 아침에 먹는 사과 두 개와 저녁 한 끼가 그의 끼니 전부다.
 

그에게 삶은 “참는” 것이다. “택시비, 버스비가 보통이 아니”지만 참고 살아야 하고, “외로움이 제일 많지”만 별수 없으며, “집에 있어야만 하는 주말이 되면 죽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그 또한 버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후암동 쪽방에 사는 김호태 씨(72세) 또한 마찬가지다. 워낙 없이 살아온 이력이 일흔의 노인을 버티게 했다. 김 씨가 하루를 보내는 곳은 쪽방으로부터 걸어서 5분 남짓 떨어진 동자동. 그곳엔 시민단체 활동가와 쪽방 주민들이 만든 공제협동조합 동자동 사랑방이 있고, 부엌 없는 쪽방 주민들을 위해 운영되는 동자동 식도락이 있다.
 

지난 10월 25일 낮 12시 40분, 김 씨가 점심을 먹기 위해 동자동 식도락을 찾았다. 밥이 있느냐 물으니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국은?” “국도 다 떨어졌어요.” “육수는?” “육수도 없지.” “햇반이라도 하나 있어?” “없다니깐, 드시려면 12시 20분까지는 와야 해.” 결국 밥을 먹지 못한 채 나왔다. 식도락에선 천 원만 내면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끼니때마다 사람이 붐빈다. 그는 동자동 조합원이 하는 식당이 있다며 10분을 걸어 후암시장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대부분 메뉴는 4000원 선. “밥은 늘 먹으니께 칼국수 한 그릇 줘.” 국수는 10분 만에 비워졌다.
 

김 씨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다. 쪽방 월세는 19만 5000원. 부모님 돌아가시고 서울 올라와 혼자 산 지 30년 됐다. 과거에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용직을 하다가 나이 들면서 더는 일하기 힘들어 수급 신청을 했다. 한 달 수급비 47만 1201원, 방값 내고 쌀과 반찬 사고 나면 금세 사라진다.
 

“수급비는 됐고 연금이나 줬으면 좋겠어.”

동자동 사랑방 조합원이 하는 후암동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는 김호태 씨.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준다는 기초연금 20만 원.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내걸었다. 하지만 당선 후, ‘모든’ 노인은 ‘소득 하위 70%’로 바뀌었다. 게다가 여기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노인은 제외됐다. 아니, 정확히는 줬다 뺏는다. 매월 25일 기초연금 20만 원을 주고선 다음 달 수급비에서 그만큼 차감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에서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연금, 아동양육비 등 다른 급여는 소득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위배된다.

또한, 제도 취지에도 어긋난다. 기초생활수급비는 가난하기에 주는 것이고, 기초연금은 노인이기에 지급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노동 능력이 부족하고 병원비 등 기본 생활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 차원에서 기초연금이 도입됐는데,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인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은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노인의 주름살마저 비틀어 짜고 있었다.
 

홈리스야학에서 만난 이세원 씨는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지지자였다고 밝혔다. “한 번 되게 만들자!”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도 많이 했단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준다’는 기초연금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말을 믿었다. 그에겐 절실했다. 그런데 당선 후 말이 바뀌었다. “보통 실망한 게 아니”라고 그는 털어놨다.
 

이 씨는 “희망 같은 건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보다는 괜찮게 살고 싶었다. 기초연금으로 삶이 조금 괜찮아진다면 팔순 다다른 나이에도 장사를 하든, 과거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미련으로 자격증 공부를 하든, 없는 사람들 위해 노력하든 뭐라도 하고 싶었다.
 

동자동에서 만난 김호태 씨 또한 마찬가지다. “워낙 쪼들리게 살아” 그에 맞춰진 삶이 익숙하지만 친구와의 소주 한 잔이나 문화생활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의 손에 기초연금 20만 원만 쥐어진다면 말이다. “사람 사는 거처럼 살 수 있는데….”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구는 세월을 몰랐다.
 

지난 7월, 양승조 의원은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산정하는 현행 기초법에 대한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수급자 노인에게서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기초연금으로 수급비 삭감되는 노인이 3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비용추계를 보면, 2017년엔 8893억 원, 2021년엔 1조 396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며, 2017년에서 2021년까지 5년간 총 5조 1883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계됐다.
 

절반에 달하는 한국 노인 빈곤율, 증가하는 노인 인구. 노년의 삶은 빈곤에 규격화됐고 그에 갇힌 삶은 지금 달리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주름진 그림자들이 자꾸 뒷골목에 고인다. 한 칸 방에 갇힌다. 분명한 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과 그 책임이 국가의 몫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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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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