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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시설 내에서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복지부 인권 가이드라인, 성에 대한 통제의 시선 드러나
시설에선 여전히 ‘남녀칠세부동석’…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는 ‘탈시설’로만 가능
등록일 [ 2016년11월23일 18시07분 ]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낯선 주제다. 게다가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여성의 성은 여전히 고민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는 장애, 여성, 성, 시설이라는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켜켜이 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과재생산포럼은 22일 장애여성공감 교육장에서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과 성과 재생산문제를 탈시설 관점에서 바라보는 포럼을 열었다. 이를 통해 시설 내 장애인의 성과 재생산 문제는 어떻게 다뤄지는지, 나아가 국가는 시설 안의 성과 재생산을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관해 물었다.

성과재생산포럼은 22일 장애여성공감 교육장에서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과 성과 재생산문제를 탈시설 관점에서 바라보는 포럼을 열었다.
 

- 복지부 인권 가이드라인, ‘정상가족·이성애 중심’ 통제의 시선 드러나

2013년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장애인시설 사업안내엔 ‘거주시설 인권보장 가이드’가 있다. 여기엔 인권보장과 관련한 28개의 세부내용이 있는데 ‘성과 재생산’ 관련해선 18번의 성생활보장권, 19번 가족생활보장권이 눈여겨볼 만하다.
 

복지부는 성생활보장권에 대해 “장애인 스스로가 비장애인과 같이 동등한 성적 권리를 가지며, 스스로 성을 표현하고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이자 “이용자가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성에 대한 지식 및 정보를 교육받을 권리”라고 규정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기관이 직원과 이용자를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은지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활동가는 여기서 말하는 ‘건전한 성생활’이란 대체 무엇이며, 건전함은 ‘누가’ 규정한 것인지를 되물었다. 또한, 횟수만을 제시했을 뿐, 교육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해선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가이드라인 안에 종교의 자유는 명시되어 있으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면서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시설 내에 성소수자가 있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가족생활보장권도 “이성간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한 형태로 협소하게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활동가는 개별 시설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나아가 성을 정상가족·이성애 중심으로 바라보는 국가 관점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활동가는 “국가가 생각하는 성, 가족에 대한 개념, 어떤 성을 바람직하다고 보는지에 대한 문제도 같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면서 “이로 인해 거주인이 배제되고 인권침해 받는 부분이 있다. 국가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시설 안 규정과 분위기 변화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성인이지만 시설 안에선 여전히 ‘남녀칠세부동석’

실제 시설 내 분위기는 어떨까. 이를 위해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은 시설에서 살다가 나온 30~40대 장애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이들 시설 거주 기간은 15~27년이며, 탈시설한 기간은 3~7년가량 되었다.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공통적인 진술 중 하나가 ‘식사나 프로그램 진행 외에 남녀가 절대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사춘기 때, 어떤 남자를 보고 마음이 두근거려 설레서 잠 못 잔적이 있어요. 그걸 원장이 알아서 저랑 그 남자를 불러 혼냈어요. 남자한텐 잠을 못 자게 했다고. 아니, 걔가 뭘 했다고. (어이없어하며 웃음)”

“거실 TV 한 대 밖에 없으니까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남녀 간 대화를 못 하게 해요. 똑같은 사람인데 왜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 조 소장은 “거주인들을 성적인 주체로 보지 않고, 이를 발현할만한 문화나 조건을 전혀 갖추지 않으면서도 같이 있기만 해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전제는 모순적인 태도”라면서 “이성애중심적 시설 분위기는 거주인들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뿐 아니라, 시설 내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함으로써 거주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든다”고 밝혔다.
 

시설 내 성교육도 해마다 거의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며, 이조차 형식적이고 생물학적인 지식 전달에 그쳤다. 통제와 금기 위주로 진행될 뿐, 실제적인 정보와 교육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장애인이 성에 대해 궁금하거나 고민되는 점이 있어도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성적 즐거움을 느끼는 데엔 파트너와의 성관계뿐 아니라 자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통제된 시설 분위기에서 여성의 자위는 상상치 못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시설 내 종사자들이 남성의 자위는 자연스럽게 인식하여 실제 남성거주인에겐 자위를 성욕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교육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젠더에 따른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조 소장은 “여성의 자위를 낯설어하는 한국 성문화에서 장애여성의 경우 자위가 무엇인지 자세히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동보조를 받아야 하는 장애여성의 경우, 자위하기 위해 종사자에게 화장실로 이동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시설 환경으로 인한 성적 욕구 실현의 어려움을 넘어 젠더에 따른 차이가 있음을 알고 그에 따른 접근과 실현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 통제당한 장애여성은 시설에서 나온 이후에도 자신을 성적인 주체로 상상하지 못하기도 했다.
 

“저는 성 욕구가 생기지 않아요. 아마 평생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기 때부터 27년 동안 제재당하고 통제받는 모습만 봐왔어요. 성적인 부분에선 유치원 수준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7, 8살만 돼도 성에 대해 아는데 저는 잘 몰라요.”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1항)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며 “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이고, 임부의 선택권은 사익”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공익인가, 사익인가?” 국가는 태아의 생명권이 윤리로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모자보건법에선 우생학적·유전학적 사유가 있을 땐 낙태를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조 소장은 애초에 낙태 문제에 있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장애, 질병, 연령, 혼인 여부 등 조건에 따라 달리 주어지기 때문이다.
 

조 소장은 “장애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보다 낳을 권리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장애여성이 재생산을 선택할 때, 자신의 장애로 인해 발생할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데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면서 장애아 출산에 대한 두려움, 출산 후 장애정도가 심해지는 문제, 양육 문제 등을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지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반대로 장애여성의 임신중지가 모두 ‘장애’로부터 기인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삶엔 다양한 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여성의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권 논의는 공론화된 적이 없다.
 

-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 시설에 머무르는 한 실현될 수 없어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복지부 가이드라인은 그야말로 껍데기이다. 시설 밖 시선에서 보면 인권이란 이름을 붙이기 민망하고, 시설 내 현실을 보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시설에 거주하는 한 이러한 성적 권리는 이뤄질 수 없다며 탈시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시설에 살지 않는 사람의 수준으로 보면 이걸 인권으로 제시한단 말인가 싶다. 하지만 시설 안에선 그조차도 이행되기 어렵다”면서 “집단화·획일화된 시설은 구조적으로 자기결정권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90%가 정신적 장애인이라면서 “성에 대한 논의는 기존 뇌병변장애에서 정신적장애인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훈 수유너머N 연구원은 이러한 낯섦을 깨기 위해 섹슈얼러티 경험에 대한 많은 말들이 공론의 장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장애인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비장애인 입장에선 그들의 욕망이 내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라면서 “장애인들이 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이동권, 교육권 등의 투쟁을 해왔는데 장애인의 성적주체성은 이것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장애여성이 성적 욕망의 주체임을 이야기함으로써 ‘착한 장애인’이라는 장애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교란시키고 장애인에 대한 통념을 깨뜨릴 수 있다”면서 “전략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진영처럼 성적 경험에 대한 당사자들의 말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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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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