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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원 문제를 알린 '양심의 호루라기', 김정미 씨를 만나다
인강원 실태 공익제보로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
“시스템만 제대로 운영돼도 개인이 모든걸 포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
등록일 [ 2016년12월09일 14시09분 ]
지난 12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가 주최한 제7회 의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참여연대 의인상을 수상한 사람은 총 다섯 명. 그리고 그 안에, 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의 보조금 횡령과 장애인 폭행 등을 세상 밖에 알린 김정미 씨가 있었다.

참여연대는 "사회복지시설의 특성상 내부자의 제보 없이는 내부의 비리나 인권침해 실상이 외부에 알려지기 어려우며, 혹 알려졌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장애 등으로 문제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정미 씨의 제보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불법적인 운영 실태를 바로 잡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는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인권침해를 막는 데 기여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짧은 선정 이유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거대 권력에 맞서야 하는 부담과 어려움들, 시설 내 거주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 등 김정미 씨가 느꼈을 법한 복잡한 감정들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어떤 경로를 걸어왔고, 또 그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정미 씨를 직접 만나 '의인상 수상' 너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지난 2일 열린 '2016 공익제보자의 밤, 의인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인강원 제보자 김정미 씨.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 참여연대 의인상을 받으셨다. 축하드린다.

정말 부끄럽다. 인강원 내부에 있었던 분들과 무엇보다 거주인분들이 더 큰 용기를 내주셨고 난 그냥 그걸 외부에 알리는 일만 했을 뿐인데. 난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인데 거창하게 '의인상'같은 걸 받게 되어 너무 부끄러웠다.
 
- 그래도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중심에 서는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인강원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이를 외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내가 처음에 인강원에 들어갔던 게 2002년이었다. 처음 5년 동안에는 회계일을 했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자립프로그램팀에 들어가게 됐다. 회계일을 할 때는 잘 몰랐는데, 거주인들과 직접 만나며 일을 시작하다 보니까 그분들의 특징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교육이 조금만 더 지원되면 충분히 자립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설 측에 프로그램을 요청하면 다 거부되었다. 밖에 나가면 나쁜 물 들어 온다는 둥 이상한 이유였다.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못 한다'고 단정 짓고, 아이 취급하고. 그러다 보니 거주인분들 점점 잔존능력도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 그러면 그때 바로 신고를 했던 것인가

아니다. 나중에 필요할 것 같은 자료를 다 모았다가 그 다음에 제보했다. 사실 이전에도 인강원이 몇 차례 신고당했었다. 그런데 내부에서 아무 도움을 못 받으니까 그냥 조사가 흐지부지되고 말더라. 증거 없이 조사하면 직원들끼리 말 맞춰서 모면하고, 증거가 있어도 근본적인 변화가 안 생기니까 확실한 증거를 다 갖추고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이전에도 신고가 계속되었던 건가.

예를 들어, 윗사람들한테 매달 현금으로 전달되는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허위로 직원 명단을 만들어서 인건비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명단에는 4~50명가량 직원이 있었는데 실제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인건비 허위로 받아 횡령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규정대로라면 방 하나에 거주인은 4~5명, 생활재활교사는 두 명 있어야 하는데 인강원에는 한 방에 거주인만 10명, 교사는 1명이었다. 더구나 생활재활교사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형태가 되다 보니, 옆 방 교사가 쉬는 날이면 다른 방 교사가 그 방까지 돌아봐야 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서 사고가 자주 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면 인강원 안에는 거주인 자립생활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나.

나중에 생기긴 했다. 나를 비롯해 자립팀 담당자들이 하도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데 실컷 우리가 프로그램에 적합한 사람 명단을 올리면, 위에서 다시 엉뚱한 사람들 명단이 정해져 내려왔다. 하루 이틀 프로그램으로는 자립훈련이 어려운, 그러니까 인지능력이 낮은 사람들만 골라서 내려왔다. 인강원 자립프로그램은 하루 나갔다 오는 건데, 그러면 같은 시간이라도 인지능력 더 높은 분들이 나가서 하고 오면 금방 자립 할 텐데. 그리고 자립훈련 프로그램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같이 생뚱맞은 것만 했다. 물론, 심리적으로야 도움이 되겠지만 이렇게 프로그램 진행하면 자립을 어떻게 하나 답답했다.
 
이게 다 시설 지원금 때문이다. 인지가 좋은 분들이 자립해서 나가버리면, 그만큼 지원금이 줄어드니까. 중증 장애인은 힘드니까 안 받고, 경증 발달장애인만 데리고 있고 싶은데 요즘 그런 분들은 시설에 잘 안 오지 않나. 그러니까 최대한 자기들이 데리고 있는 인원을 유지하고 싶었던 거다. 웃긴 게, 나를 포함해 몇몇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자립프로그램 담당자인데도 정작 프로그램 진행할 때는 뺐다. 자립프로그램을 잘 모르는 선생님 데려다가 프로그램 진행해놓고 또 서류 작성은 우리한테 시키고 그랬다. 우리가 하면 '제대로' 할까 봐 그랬는지(웃음).
 
그런 문제가 조사 과정에서 안 드러났나

드러나도 그냥 넘어갔다. 공무원들과 법인 사람들 간의 커넥션이 어마어마했다. 전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장이었던 박필숙 원장도 인강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인강재단과 관련이 있던 사람이었다. 인강재단에서 송전원을 2006년에 개소하려고 할 때, 감사 때문에 계속 미뤄졌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개소 허가가 났는데, 그때 서울시 복지과장이 박필숙 씨였다. 이후 박필숙 씨가 인강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인강재단은 학교, 주간 보호센터, 보호 작업장, 생활시설까지 갖춘 어마어마하게 큰 재단이다. 전액 서울시 지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지원금은 위에서 말했던 인건비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빼돌려졌다. 재단은 그렇게 몸집을 키워가고, 커넥션도 견고해졌다. 쉽게 변화되지 않았다.
 
그렇게 거대한 재단에 맞서 싸우는 것은 심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처음에 '문제를 밖에 알릴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렸다. 하지만 그땐 '하고야 만다'하는 오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료를 다 모아 두었기 때문에 내심 자신이 있었다(웃음).
 
당시에 5년 동안 자립생활 프로그램 담당을 해왔는데, 자꾸 내가 문제 제기를 많이 하니까 눈엣가시였는지 갑자기 '생활재활' 담당을 하라는 거다. 그러면 방을 담당하게 되고, 하루건너 이틀씩 밤 근무도 해야 한다. 통보하고 3일 후부터 바로 근무를 시작해야 한댔는데, 나와는 아무 이야기도 없었던데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보직으로는 못 가겠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시설 측은 "위에서 하라는 대로 안 한다"라면서 '명령 불복종'으로 해고를 했다. 너무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부당해고 소송을 하면서 문제를 다 알렸다. 서울시, 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거의 15개 기관에 인강원 문제를 알렸다.
 
사실, 인강원을 송두리째 흔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거기서 하는 일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냥, 거주인들이 좀 더 나은 지원을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자체적으로는 생겨나지 않으니 바깥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달라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크게 진행되는 바람에 여러모로 마음이 힘들긴 하다.
 
공익제보한 걸 후회했나.

지금은 많이 담담해졌지만, 복직 후에는 솔직히 많이 후회했다. 부당해고 인정을 받아서 인강원에 다시 돌아갔는데, 복직 바로 다음 날 인권위 조사 결과 발표가 난 거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나와 말 한마디를 안 했다. 간혹 친한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면 내가 먼저 '나한테 말 걸면 너도 찍히니까 말 걸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시설에서 거주인들에게도 단속을 시켰던 거였다. 거주인들한테 직원들이 "저 선생님(김정미 씨) 나가면 너 보호해 줄 사람은 나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거나 "내가 감옥 가면 너도 가야 한다. 그러니 아무 말(증언)도 하지 마라"고 협박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 나를 피하고, 처음에 검찰이나 인권위에 했던 증언을 번복하고 그랬다.
 
거주인분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때 처음으로 후회했다. "거주인들은 그냥 큰 불만 없이 잘살고 있었는데 괜히 내가 이 사람들의 인생을 뒤흔든 거 아닌가? 받지 않았어도 됐을 상처를 주는 거 아닌가?"하면서.
 
결국, 복직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복직할 때 결국 생활재활교사 일을 하게 됐는데, 하루걸러 시설에서 자다 보니 내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거주인이 "선생님 우리 옆에 그냥 있어 주면 안 되냐"고 하는 거다. 그때 정말 너무너무 후회했다. 사실 아이들은 핑계고 나도 일을 저질러놓고 힘드니까 털어놓고 도망가는 거였으니까.

의인상 시상식에서 인강원 거주인들과 김정미 씨, 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그래도 공익제보 덕분에 인강원 거주인 중 자립생활 훈련을 시작한 분들이 계시다. 변화의 물꼬를 트신 건데, 거주인분들은 사건 이후에 만나 보셨나.

저번 인강원 송전원 자립생활 파티할 때 가서 만났다. 깜짝 놀랐다. 다들 너무 예뻐진 거다. 이전에는 머리도 자기 마음대로 못 기르고, 염색은 물론 파마도 못 했는데, 얼마 전에 뵀더니 다들 자기 하고 싶은 머리 모양 하고, 옷도 자기 스타일에 맞게 입고 있었다. 이제 다들 핸드폰도 있고, 어떤 분은 아주 여러 색으로 머리 염색을 했더라(웃음). 밤에 잠을 잘 안 자거나 밥을 잘 안 먹거나 흡연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서 속이 상하긴 한다.
 
그중 한 친구에게, "그때 말하지 못하고 선생님 혼자 일을 진행한 거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사실 너희가 힘든 것만큼 나도 사람이라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도 알아요"라고 하는 거다. 그 말이 좀 위안이 됐다. 지금은 당시 여기저기 증언하러 다니고, 시설 눈치 보느라 고생했던 거주인들 대부분이 나와서 자립생활훈련 하고 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잘하고 지내는 거 보니까 좋았다. 위안이 된다.
 
현재 많은 시설에 인강원 거주인분들처럼, 자립생활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도 발목 잡혀있는 분들, 착취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다. 시설 문제를 어떻게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공익제보에만 기대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이 지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짐이다. 여러 명이 단체로 움직인다면 모를까.
 
그리고 애초에, 주기적으로 하는 감사만 제대로 이뤄져도 얼마든지 문제 파악할 수 있다. 나도 시설에 십 년 넘게 있으면서 감사하는 거 많이 봤는데, 정말 겉핥기식이다. 감사한다고 공무원 한두 명 와서 아침나절에 서류 붙잡고 있다가 점심 지나서 조금 있다 간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 보고 끝. 거주인들 사는 곳은 둘러보지도 않는다. 감사 날짜 통보 다 하고 나오면, 꼬투리 잡힐만한 서류 가짜로 다 만들지 왜 못 만들겠나. 그리고 서류는 또 얼마나 많은데, 그걸 반나절씩 이틀 후루룩 보고 이상한 점을 잡아내는 게 더 신기하겠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 대충 굴리고 직원들이, 정말 모든 걸 포기할 각오를 하고 폭로하면 그때야 감사니 조사니…. 거주인들의 앞날은 생각도 없고 대충 '폐쇄'하고 끝이고. 이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거주인에 대한 후속 조치 마련 없이 그냥 폐쇄해버리고 말면, 거주인들은 어떻게 하나?
 
일 터지고 나서 부랴부랴 수습하지 말고, 시설 감독 책임 있는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좀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정말 참여재판 하는 것처럼, 이해 관계없는 시민들로 꾸려진 조사단이 조사하든지. 사회복지 공부하는 학생들, 아직 어디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이 하면 오히려 더 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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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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