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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것은 다큐멘터리다.
[영화리뷰] 영국 근로연계복지의 민낯을 드러낸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등록일 [ 2016년12월19일 14시13분 ]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하면서 국내 개봉 전부터 높은 기대를 받았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가 12월 8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영화는 거장 영화감독이 은퇴 선언까지 번복하며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던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앞서 몇 차례 영국의 '근로연계복지‘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관련기사: ‘공짜 점심은 없다’? 영국 복지 개혁으로 죽음에 내몰리는 장애인). 영국은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토니블레어 노동당 총리 집권 시기부터 복지급여 제공의 조건으로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근로연계복지(Workfare, 근로(Work)와 복지(Welfare)의 합성어)' 정책을 강화했다. 이어 2010년 이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복지 지급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등 더 심각한 복지 삭감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정부는 '비대해진 복지를 바로 잡는다'는 기치 아래 일 할 능력이 있는 사람(fit-for-work)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 복지 대상자들을 일터로 내몰았다. 문제는 일 할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지극히 신체 기능 중심적이었다는 것과, 판정 주체가 이익을 남겨야 하는 민간 자본에 위탁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수급 탈락자들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근로연계복지를 꼼꼼히 살펴 들어간다. 그러나 영화는 제도의 실상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의 덫에 걸려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한 장면.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당분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질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으니, '고용·지원수당(ESA, 영화에서는 '질병 수당'이라는 표현으로 나온다)'을 신청한다. 그러나 신청 자격을 판단하기 위해 '의료 전문가'와 진행한 5분이 채 안 되는 인터뷰는, "양 팔을 올려 혼자 모자를 쓸 수 있는지", "50m 이상 혼자 걸을 수 있는지"처럼 다니엘의 심장 질환과 관계없는 이야기로만 흘러간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제도와 인간의 괴리'는 영화 내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보조금 신청을 위한 '잡 플러스 센터(Job Plus Center)'와의 면담 약속에 몇 분 늦은 케이티는 '제재 대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짧게는 3주, 길게는 3년까지 보조금이 중단되는 '제재'는 국가 보조금이 마지막 동아줄인 사람들을 통제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를 몰랐고, 버스를 잘못 탔다”는 케이티의 설명은 '원칙' 앞에서 무력하다.


'사지는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적합(fit-for-work)판정을 받은 다니엘은 구직수당이라도 받기 위해 '이력서 작성법 특강'을 들어야만 한다. 듣지 않으면? 제재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력서 작성 특강 강사의 얼굴 뒤로, 'No a life story(인생 이야기 금지)'라는 판서가 대문자로 쓰여져 있다. 이 국가에서 살아남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하지 말고, 철저히 원칙을 따를 것, 남들을 밟고 그 위에 설 것. 오직 그것만이 당신을 구원해 줄 테니까.


제도 앞에서 끊임없이 '나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서류로 증빙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제도 안에서 서서히 마모되어가는 그들의 존엄이 괴로울 만큼 냉정하게 화면을 채운다. 이러한 비교는 이제 갓 '복지 제도'에 발을 들인 다니엘과 이미 2년이 넘게 복지제도에 기대어 살아온 케이티의 집의 대비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기자기한 가구와 장식품이 들어선, 해가 잘 드는 다니엘의 집과 달리, 케이티의 집은 텅 비었고, 황량하며 춥다. '사람 사는 집답게 꾸며보는 게 소원'이라는 케이티의 집을, 다니엘의 집도 서서히 닮아가기 시작한다. 국가에 의해 강요된 가난은 처음에는 개인의 마음을, 그리고 서서히 그의 주변을 황폐화시킨다.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는 '개'가 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여정을 따라가던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욱 극적으로 그려진다. 혹자는 "켄 로치가 현실의 비극성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극적인 장치를 도입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담담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장치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영국의 현실이다.


영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근로연계복지'의 틈바구니에 끼어 죽어갔다. 2년이 조금 넘는 사이에 알려진 사망자만 60명이 넘는다(http://calumslist.org). 이 영화는 신체적 기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도저히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던, 그래서 결국 보조금이 삭감되었던 마크 우드의 이야기이고, 잡 센터와의 면담에 한 번 참석하지 않아 보조금을 받지 못해 전기가 끊긴 차가운 방에서 죽어야 했던 데이비드 클랩슨의 이야기이며, '근로 가능' 판정에 항소했으나 결정이 번복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재클린 해리스의 이야기다. 원칙 앞에 무력한 그들의 '인간적인' 사정은 그들이 죽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차라리 다큐멘터리이다.


켄 로치가 그리는 영국의 현재는 한국의 현재이기도 하다. 국가가 지원하는 생활필수품 목록에는 없는 생리대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여성,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보조금 신청 단계부터 고생하는 노인, 고된 노동을 하고서도 저임금을 받고 있는 청년, 왼쪽 손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 3급을 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몸을 덮쳐오는 불길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어 목숨을 잃었던 장애인. 국가와 자본의 '목 조르기'가 세계적 현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서도 유난히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제도의 비인간화를 펼쳐보이면서도 우리의 희망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케이티는 다니엘이 "우리(케이티와 두 아이)에게 돈보다 더 큰 것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다니엘이 케이티와 아이들에게 준 것은 '경청하는 귀'였다. 다니엘의 경청은 때로는 어두운 집을 밝힐 수 있는 전깃세로, 때로는 직접 깎아 만든 나무 모빌로 모습을 달리했지만, 본질은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세상이 주목하지 않았던 꿈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원칙'과 '법'이라는 그럴싸한 외피 아래 인간의 존엄을 짓누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먼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그것이 결국은 이 견고한 비인간의 시대를 전복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사회 문제를 탐구해온 80세의 감독이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수신했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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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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