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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생명의 자격’? 누가 판단하는가
[성과 재생산포럼 ⑥] 신자유주의적 '건강 시장'과 등급화되는 생명의 자격
등록일 [ 2016년12월21일 11시13분 ]
[편집자 주] 2015년에는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는 ‘성과 재생산 포럼’(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및 연구자 등으로 구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장애와 젠더’의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성과 재생산 정치에 개입하고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장애와 젠더의 관점은 성과 재생산권리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와 인구, 인권, 생명 문제에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번 연재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난 연재 보기>
① 재생산을 둘러싼 국가와 여성의 역동 : 시기별 변화의 양상과 시사점
② ‘저출산 담론’에 숨어있는 생명정치를 넘어서기 위하여
③ 소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말하기

④ '보조생식기술시대'의 낙태논쟁
⑤ 생명윤리의 심판자로 선 '국가'와 재생산권리의 왜곡
 



최근의 ‘낙태죄’ 논쟁으로 재차 환기 된 것은, 과거 ‘인구 과잉’이 문제라고 여길 때는 무조건 낳지 말라고 하다가 반대로 ‘저출산’이 문제가 되자 여성을 애 낳는 출산 기계쯤으로 취급하며, 한국사회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도구화 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속에서 심각한 사회구조적 젠더 불평등,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 등 근본적 대책에 손 놓고 있으면서, 출산율 제고를 위한 방침으로 임신중지를 행하는 여성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겠다고 정부가 나서면서 여성들을 일제히 분노하게 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성, 위기감, 불평등 등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미래의 태어날 생명의 양적 증가에만 정치경제적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이 정부에게 과연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진정성부터 의심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모든 (태어나지도 않은)생명이 존엄하다는 수사 이면에 실제 (현재 살아있는)생명에 심각한 위계와 불평등이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인식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기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특정한 생명의 존재 자격을 판단하고 박탈해 내기도 하는 위치에 있어왔다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더욱 철저히 탐구되어야만 할 일일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 ‘우생 정책’에서부터 신자유주의 투기적 ‘건강 시장’까지

우리나라 형법이 여성의 임신중지를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가운데, 몇몇 사유에 한해 예외적 허용 조항을 두고 있는데, 모자보건법 상 우생학적 임신중절 허용 조항이 바로 그러한 예외에 해당한다. 국가가 ‘장애나 질환’을 가질 것이라 예상되거나 진단을 받은 생명의 경우에 한해 선별적으로 생명의 박탈을 허가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 근대세계와 함께 시작된 정치적 판단이다.


본래 영국에서 탄생한 우생학이 학문으로 발달하고 관련 제도가 마련된 것은 19세기 서구 근대적 국가 통치 체계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 체제에서 ‘생명’이란, 국가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과 동의어고, 그래서 국가로부터 보호되거나 개량,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제도는 그와 같이 살아있는 노동력 제공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가가 생명을 보호한다는 발생에 근거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호의 대상인 노동력은 ‘정상적 인구’ 즉 비장애, 이성애, 백인, 남성으로만 상정된다. 여성은 노동자 남성과 혼인을 통한 가족단위로 묶여, 무급으로 가정에서 재생산 노동을 수행함으로써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국가 복지 시스템의 기본 모델이다. 동시에 경제적 생산 체제로 편입될 수 있는 ‘건강한’, ‘정상적’ 인구와 그렇지 않은 인구를 분리해 내, 전자는 육성하고 후자는 도태시키는데 논리적 기반을 제공해준 ‘우생학’은 서구 근대 자유주의 복지국가 형성에 매우 중요한 과학적 토대였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선진국에서 20세기 내내 인구통치의 일환으로 우생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비백인’, ‘장애인’, ‘빈민’ 등 자본주의에 기능적이지 않거나 유전적으로 도태된 사람이라고 간주된 이들에게 불임이나 단종시술을 시행하고, 반면에 소위 ‘정상적인’(이성애자, 혼인한, 건강한, 중산층, 백인) 인구의 출산은 장려해 내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근대 자유주의 복지국가에서 사회의 노동력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으로서 ‘생명’이 그 의미를 지녔다면, 신자유주의가 그것을 새롭게 변화시키거나 재구성해 낸 것은 무엇인가? 최근 많이 지적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는 복지나 공공영역을 축소 및 자본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이에 따라 기존 복지국가에서 보호하고자 한 생명 그 자체 역시도 그 의미가 자본화되는 추세다. 국가 보호와 안전망 없는 세계에서 개인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불안감에, 보다 더 ‘건강한’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그리고 본래 우생학에 기원을 두고 있는 유전학과 보다 최근의 줄기세포과학 등 생명기술과학은 그러한 불안감을 반영한 투기적 시장을 발판으로 전세계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이 속에서 ‘건강함’이나 ‘장애’는 단지 아프거나 질병, 손상의 유무 등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몸은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조작, 변형할 선택의 자유를 가진 소비자들의 소비 실천의 장이 되고 있다. 그와 같은 실천들에서 질병의 ‘치료’와 미적이고 기능적인 ‘향상’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다.
 
더 건강해야 더 아름답다고 선전하는 <차움병원> 홈페이지 화면. 최근 연일 화제가 된 차움병원의 몇 억원을 호가하는 줄기세포 및 건강치료 프로그램은 투기적 건강 산업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도 파트너가 없는 싱글이거나 동성커플일 경우 ‘장애’ 범주로 분류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현재는 이성애커플이 의학적 ‘난임/불임(infertility)’으로 판명될 경우 ‘장애’ 범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에 전세계 많은 국가들에서 이들에게 체외수정을 비롯한 재생산의료기술 시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이마저도 ‘법적혼인’ 상태인 부부에만 지원 자격을 한정하고 있다). WHO는 “싱글남녀와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개인에게 가족을 가질 권리가 있”고, 그들도 가족을 만들기 위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한다고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나 싱글남녀가 이성애커플과 동일하게 생물학적이고 제도적인 출산조건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장애’ 범주의 정당화 사유가 된다는 발상은, 유동하는 사회 상황 속에 어떤 인간 조건이 새롭게 ‘문제’로 드러나는지, 또 어떤 범주의 사람들의 재생산은 여전히 억압받고 있으면서도 왜 어떤 이들에게는 의료적 혜택을 적극 제공해가면서까지 출산을 장려하려하는지 등 수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분명한 것은, 현재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비혼모,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소수자가 심각한 불평등과 건강권침해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며, 그럼에도 출산만을 위한 의료접근성을 강조하는 것은 출산율 제고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결국 이 문제는 세계적 저출산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출산율 제고에 대한 국가들의 관심이 증대된 상황, 그리고 배아 등 생체조직기술의 글로벌한 자본화 및 상업화라는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유전자의 조합으로 결정되는 생명의 자격
 

신자유주의와 함께 심화되는 건강 지상주의 그리고 투기적 생명기술공학 산업의 역동 속에서, 개인(여성)의 재생산은 미래의 생명이 얼마나 더 ‘건강’하고 ‘정상적’일 수 있는지에 따라 국가의 개입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장이 되고 있다. 그런데 ‘건강함’이나 ‘장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모든 인간은 주어진 사회환경과 개인의 인식 범위에 따라 모두 다르게 ‘장애’를 경험한다.


예를 들어, 농인은 자신들의 신체적 특성과 조건에 맞는 수어를 사용해 소통하고 세상을 인식하지만, 음성언어 중심 사회는 수어 사용 농인을 장애인으로 만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 세계 농인들은 청력 손상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만의 문화 즉 ‘농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에서 유전학계는 ‘청력 손상’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들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는 배아줄기세포를 응용한 ‘농 치료’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연구를 진행중이다. 이들은 줄기세포 치료 방법을 통해 곧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정상적’ 청력을 달성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까지 선전했고, 여기에 농인들은 농문화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농인을 의료적인 시각에서 치료돼야 할 결함으로만 소환하는 과학계의 시각에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장애를 이와 같이 손상이나 치료의 대상으로만 이해하는 의료적 시각에 저항하며, 모든 장애가 사회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 모두와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이미 오랜 시간 지적해 왔다.
 

현재 청각장애와 관련해 가능한 유전자 검사 기술은, 태아단계의 산전 유전자 검사와 배아단계의 착상전유전자 검사(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이다. PGD는 체외수정을 통해 생성된 배아에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청력 손상 관련 유전자의 유무를 선별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손상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를 가진 배아는 폐기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선택될 수도 있다. 영국은 2008년 ‘인간 수정과 배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는데, 태어날 생명의 특정 형질(눈 색깔, 높은 아이큐 등)을 일부러 선택해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방지하는 것이 법 제정의 의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법이 규율하려는 ‘특정 형질’의 선택에 바로 ‘비정상성abnormality’이 포함된 데서 발생됐다. 법안은 “인간 또는 배아의 유전자, 염색체, 미토콘드리아의 비정상성”이 심각한 장애나 질병을 가지게 하거나 그것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대한 위험을 가진 경우 선택되어서는 안된다(즉, 태어나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전적으로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배아는 어떤 경우에서든 선택임신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해당법안은, 실제로 그와 같은 ‘중대한’ 질환이나 장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판가름하기는 어렵다는 점과 함께 많은 논란을 낳았다. 한 농인커플이 체외수정으로 생성된 배아를 검사해 본 결과, 배아에서 청력손상과 관련된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가정해보자. 그 농인커플은 자신들과 동일한 농인자녀를 낳고 농문화 속에서 양육하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 법에 의거해 그들은 농인자녀를 가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게 된다.
 

이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은 실제 영국의 농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국가가 농인을 ‘비정상’으로 소환해 출생을 강제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우생학을 지지한다고 비판했다. 농인 뿐 아니라 다른 유전적 성질의 장애를 가졌거나 그런 사람을 파트너나 가족구성원으로 둔 사람들, 그리고 실상 모든 사람들이 본 법에 의해 체외수정 시술을 받게 될 경우 배아의 선택에 있어 ‘정상’ 배아 선택을 ‘강제’ 당할 수 있다. 아직 이와 같은 법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전적 장애를 가진 장애여성들이 산전유전자검사는 물론 체외수정과 PGD 등의 시술을 받을 것을 거의 강요받다시피 한다는 보고가 이미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한편에서 생명과학기술은 ‘정상/비정상성’의 가능성과 존재를 끊임없이 선별해내고, 국가와 사회는 미래 인구의 ‘건강함’을 명목으로 개인의 재생산에 더욱 더 깊숙히 개입해 들어가 강제력을 발휘하려 하고 있다. 유전자 단계에서 정상/비정상이 나뉘는 세계 속에 이제 ‘생명’은 유전자의 조합으로 특징 지워지고 생명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 셈이다.
 

마치며
 

근대 국가 우생학 정책부터 최근 펼쳐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건강 이데올로기의 압력 속에서, 특정 인간의 몸은 언제나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소환되어 왔다. 이때 국가의 복지와 생명 보호의 책임은 장애/여성 등을 비롯한 개인들의 문제로 떠넘겨지고, 동시에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생명, 몸들에 직접적으로 권력이 행사된다. 따라서 여성의 몸이 통제와 도구화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성과 재생산의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은, 그리고 장애인이 시설 수용이나 배제, 폭력, 차별 없이 사회에서 존엄하게 살 권리를 찾는 과정은 ‘정상성’을 둘러싸고 생명과 인구에 대해 국가가 갖는 관점, 정책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교조적 생명권 논리가 아니라,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 생명정치의 작동을 더 면밀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이다. 저출산이 위기라고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는 여전히 온갖 ‘정상성’의 기준으로 특정한 인구의 출산만을 장려하고 있는 현실. 가난한, 결혼하지 않은, 성소수자인, 장애인인, 청소년인, 이주민인 인구의 존재조건과 재생산은 사회적으로 무관심이나 재생산 금지의 압력을 계속적으로 가하는 현실. 생명존중을 이유로 낙태죄를 작동시키고 있지만, 국가 권력이 말하는 그 ‘생명’의 존엄함이 어떤 기반 위에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노력 없이 여성들을 처벌하는데에만 작동되는 현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성찰은 결국, 국가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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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연구위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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