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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던 박현과 나누고 싶은 소설, ‘우상의 눈물’
[마이너의 서재] 전상국의 단편소설 ‘우상의 눈물’
등록일 [ 2016년12월27일 17시38분 ]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지켜졌을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얼마 전 한 장애인이 독감과 그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많은 이들이 이 문장을 떠올렸다. 지난해 열린 제1회 탈시설권리선언대회에서 제정된 ‘탈시설 선언문’의 제15조. 그가 직접 제안해 선언문에 담기게 된 문장이다. 16년간 장애인거주시설 꽃동네에서 살다가 나와 6년간의 불꽃같은 탈시설-자립의 삶을 살았던 만 33세 박현이 전하는 메시지,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관련기사: 꽃 같았던 탈시설-자립의 삶, 서른 세 해 박현 고이 잠들다)


이 문장을 며칠간 곱씹게 된다. 그에게 ‘약자가 없다’는 말은 무엇을 뜻했을까. 박현은 2009년 12월 꽃동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지자체(충북 음성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사문화된 조항이었던 사회복지사업법 상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을 근거로, 음성군청이 그에게 탈시설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설’은 이 사회가 그와 같은 중증장애인에게 부여한 지정 장소였다. 즉,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실현할 수 없는 ‘약자에게 합당한 장소’이자, ‘약자에게 합당한 태도’를 요구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끝내 그는 이 장소를 거부했다. 소송에 패했음에도 몇 년 뒤 기어코 지역사회로 나와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가졌고, 장애인권 활동가로 살아갔다. 그가 스스로 ‘약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순간, 누구도 그 앞에서 강자로 군림하며 억압할 수 없었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이 짧은 한 문장은 그래서 그가 자신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박현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소설 <우상의 눈물>(전상국 저, 1980년) 속 주인공 ‘기표’는 사실 박현과는 많이 다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 속 기표가 끝내 마주해야 했던 좌절을 곱씹으며 박현의 삶을 반추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전상국, <우상의 눈물>, 민음사

소설 속 풍경은 한 고등학교 교실이다. 그리고 기표는 아주 전형적인 ‘문제 학생’이다. 반 편성이 되고 첫 시간부터 ‘메시껍게 깝쳤다’는 이유로 급우의 허벅지에 담뱃불을 지져버리는 ‘이유없는 잔인함’과 채플 시간에 홀로 교실에 남아 친구들의 도시락을 헤치워버리는 ‘뻔뻔함’, 선생님들 눈을 피하지도 않고 버젓이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대담함’이 그를 특징짓는 표정들이다.


소설은 기표가 왜 이런 문제 학생이 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는 그의 불우한 집안 환경뿐이다. 아버지는 풍 맞은 폐인이고, 여동생은 버스 안내양을 하다 그마저도 계속 하지 못하고 술집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기표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의 폭력성은 불편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불편함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일까. 다소 비약을 무릅 쓰고 그의 폭력성을 독해해 본다.


나의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려 생각해보면, 학교라는 공간에도 분명 ‘밝음’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이 존재했다. 학교 폭력은 사실 이 두 영역 모두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밝음’의 영역의 가해자들은 가정형편이 비교적 괜찮고, 아이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 덕분에 선생님과도 친한 경우가 많다. 그 반대편엔 ‘어둠’의 영역의 폭력이 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저 방과 후에야 비로소 활동을 전개하는 아이들. 그들의 존재는 전자의 경우와는 다르게 학교의 질서와 조화되지 못한다. 마치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에서, 일진이지만 학급 반장이기도 한 강민의 폭력은 학교 내에서 허용되지만, 전형적인 낙오자이면서 폭력적이기까지 한 김철의 폭력은 퇴학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기표가 문제가 된 이유는 그의 ‘악마적 행동’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서 있는 ‘악마적 위치’때문이었을 것이다. 악마적 행동은 가난한 자든 부자이든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난한 자의 악마적 행동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그들의 가난 자체도 불편할진데, 예의도 없고 사고만 치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기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아이들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학교생활의 방향은 대충 두 가지 뿐이다. 소심쟁이로 주눅 들어 살아가거나, 어둠의 영역에 있을 지언정 당당하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개기거나.


기표는 소심쟁이로 주눅 들어 지내길 바라는 학교의 요구와는 정 반대로 살았다. 그런데 그런 기표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두 사람이 있다. 담임선생과 반장 ‘형우’다. 합심한 두 사람은 돈이 없어 체육복을 마련하지 못한 기표에게 무상으로 체육복을 쥐어주고, 낙제 위기에 처한 그를 위해 반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모아 대놓고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담임과 형우의 구원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구원의 손길 앞에서 기표는 오히려 자신의 악마성을 또렷이 드러내 보이며, 체육복을 칼로 북북 찢어버렸으며 급우들이 알려준 시험 답안도 거부했다. 오히려 컨닝 페이퍼 제공을 주도한 형우를 폭행해 ‘아작’을 내버렸다.


하지만 형우는 이 가혹한 폭력 앞에서도 담담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때린 자가 누군지를 발설치 않음으로써 다시금 급우들의 신망을 얻었다. 형우가 이런 태도를 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나, 순수한 의미에서 기표를 구원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담임과 형우의 행동 목표는 악마에게서 당당함을 빼앗는 것이었다. 즉 기표를 당당하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아이에서 주눅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한 양이 되기. 양은 당당해서는 안 된다. 기표 스스로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고 학교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세련된 방식으로 차근히 요구해 들어간 것이다.


기표의 폭행 이후에도 형우의 ‘구원’은 계속된다. 기표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급우들의 모금을 주도하고, 나아가 신문기자인 학부형을 동원해 전국적인 모금까지 끌어온다. 이 ‘선의’로 가득찬 행동들은 그러나, 기표를 ‘통제불능의 악마’에서 주위의 동정이나 받는 ‘가련한 아이’로 전락시켰다. 그 덕분에 기표는 ‘어둠’의 영역에서 나와 ‘밝음’의 영역으로 걸어 나왔지만, 햇볕 아래에 선 기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표는 이렇게 울부짖는 것이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장애인권 활동가 박현 씨가 지난 22일 독감과 그로 인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현 활동가가 지난 2014년 9월 광화문역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모습.
 

다시 박현의 삶으로 되돌아와 본다. 그는 분명 악마적 성격의 기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추도식에 모인 동료들은 그를 상대방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항상 밝게 웃어주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분명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강요하는 ‘밝음’의 자리를 뛰쳐나온 것이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며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과 순종의 삶을 살 것을 강요한 ‘꽃동네’를 벗어나 지역사회로 나갔다. 그에게 항상 ‘약자’이기만을 요구하는 ‘꽃동네’의 은총 안에서는 그의 삶이 결코 꽃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4시간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었던 그는 시설의 담장을 넘어선 순간,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그만의 색깔로 채워나갔다. 파랗게 노랗게 빨갛게 머리를 물들였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며 리프트를 점거했다. 꽃동네 속 천사이기를 포기하고 도심의 행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자유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약자이기를 거부하고 불꽃처럼 살았던 박현의 6년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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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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