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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일하고도 용돈 벌이, 나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자립은 꿈도 못 꾸는 최저임금 이하의 삶, “당신들이 10만 원 받고 살아보라”
등록일 [ 2016년12월30일 14시34분 ]

올해 7월 충북 청주에서 일명 ‘만득이 사건’, ‘축사 노예 사건’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지적장애인이 19년간 2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축사를 관리하고도 단 한 푼의 돈을 받지 못했고, 농장주는 지적장애인에게 밥을 주지 않거나 숙소에 감금하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정부와 지자체는 제2의 만득이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노예 노동’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이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일상적인 일이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의 저임금 노동을 공인하기도 한다. 일하는 장애인 중 37.6%는 100만 원 미만을 받으며(보건복지부, 2014년 기준), 장애인의 안정적 일자리와 직업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직업재활시설의 평균 임금은 49만 4069원(한국장애인개발원, 2015년 8월 기준)에 불과하다. 최저임금법 7조에 따르면 ‘정신 장애, 신체 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장애인은 최저임금에서도 제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그래서 수많은 장애인이 평생 하는 일은 그저 용돈 벌이에 그치곤 한다. 정신·뇌병변 중복장애 1급, 등록하진 않았지만 뇌전증(간질)장애가 있는 51세 중년 여성 조미진 씨(가명)가 해온 30여 년간의 노동도 여기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들. 기사 사례와 무관. ⓒ한국장애인개발원

봉투 수백 장 만들고 10만 원, 교통비 제외하면 남는 것 없었다
 

미진 씨는 현재 서울의 한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오전 9시부터 매일 4시간씩 주5일, 쇼핑 봉투를 만든다. 그녀가 매일 기록한 업무 일지를 보면 지난 21일 그녀는 300개의 봉투에 밑창 종이를 넣었고, 274개 봉투 입구에 구멍을 뚫었으며, 봉투 2600장을 세서 종이상자에 포장했다. 하루에 적게는 몇백 장, 많게는 천 장 이상 봉투가 그녀의 손을 거친다.
 

그렇게 일하고 미진 씨가 받는 돈은 일당 5000원, 올해 최저시급 603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다. 미진 씨가 11월에 받았다는 명세서에는 한 달간 일하고 받은 돈 10만 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일터는 명목상 ‘장애인의 직업 훈련’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녀가 받는 돈도 엄밀히 말하면 월급이 아닌 ‘훈련비’다. 정식적인 노동 계약도, 4대 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 기대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 돈으로 한 달을 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일단 집과 일터를 오가는 교통비로 월 5만 원이 기본으로 빠져나간다. 만약 일터에서 점심을 먹으면 하면 월급에서 6만 원이 식대로 빠져나간다. 사실상 일하고도 돈을 더 쓰는 셈이다. 시설 측은 올해 말 매출이 올랐다며 12월 월급에 1만 원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 “커피 두 잔 마시면 사라질 돈 주면서 생색내고 있다”며 그녀가 코웃음을 친다. 그녀는 식대라도 아껴보고자 매일 점심 때 먹을 도시락 가방을 챙긴다.
 

미진 씨가 손톱만큼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더 나은 직업을 소개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참아온 것이 벌써 1년가량이 됐다. 하지만 최근 회사 관리자로부터 다른 직장에 그녀를 소개할 뜻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하는 일도 취업에 그다지 도움 되는 기술이 아닌데, 그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서 일해왔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미진 씨에게 발급된 11월 훈련비 명세서 띠지.

30년 일해서 용돈 벌이만 했다
 

미진 씨의 용돈 벌이 역사는 1985년, 그녀가 막 20세가 되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아버지 회사의 경리직으로 취직해 6만 원, 지금으로 치면 60만 원가량 되는 월급을 받았다. 받는 돈은 통상적인 경리 임금 월 12만 원보다 절반이나 적었지만, 이마저도 미진 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취직한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그러던 그녀는 뇌전증이 심해져 1994년 뇌수술을 받았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수술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생겨 몇 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약 2년간은 정신보건센터에 다녔다. 일은커녕 밖에 나가는 것, 아니 사는 것이 싫었던 시기였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스트레스성 발작도 시한폭탄처럼 그녀의 삶을 짓눌렀다.
 

시간이 지나고 증세가 잦아들자 미진 씨는 1996년부터 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복지관 측은 간혹 미진 씨에게 주유소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시급은 복지관 절반, 주유소가 절반씩 주는 최저시급을 받았다. '일머리'가 있는 편이었던 그녀는 주유소 사장에게도 일 잘한다고 인정받았지만, 그다지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미경 씨는 때때로 스스로 일자리를 찾기도 했다. 2008년에는 편의점에서 오후 11시부터 오전 9시까지 일했다. 당시 최저임금은 3770원, 야간 수당까지 합치면 5655원이었지만, 실제 받는 시급은 3500원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주간 아르바이트 직원보다 자신이 더 적은 돈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 꼬투리를 잡는 점장 때문에 3개월만에 일을 그만뒀다.
 

2013년부터 지금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는 복지관 내에 있는 보호작업장에서 일했다. 파일에 쫄대를 끼우거나, 종이에 금박과 상장 글씨를 붙이거나, 클리어 파일에 비닐을 끼워 넣는 일 따위를 했다. 작업장에서는 만든 개수만큼 직원들에게 돈을 줬는데, 그녀는 평균적으로 매달 10만 원가량을 받았다. 그녀와 달리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다른 동료들은 한 달에 1만 원만 받아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작업과 이용인 프로그램을 동시에 하는 곳이라 회비로 도로 월 4만 5000원을 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그 돈 받고 작업장에서 일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계속 그곳을 다녔다. 중년 여성이자 장애인인 그녀가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진 씨가 12월 21일부터 26일까지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한 업무일지.

30여 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자립은 이룰 수 없는 꿈
 

미진 씨는 여건만 되면 집에서 나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것, 그리고 그 돈으로 카페를 차리는 것이 그녀가 계획해온 자립생활의 꿈이다.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만 전문적으로 판다. 직원은 계산을 잘하는 비장애인과 더불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정신장애인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녀가 품은 자립의 꿈은 계속 미뤄졌다. 그녀에게는 지금껏 틈틈이 모아 온 돈 1500만 원이 있긴 하지만, 서울에서 방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은 돈이다. 웬만한 월세도 그녀가 받는 10만 원을 훨씬 초과한다. 지난 30여 년간 열심히 일해왔지만, 번 돈으로 집에서 나와 살았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 결과가 이런 모습이라는 것에 그녀는 답답해했다.
 

미진 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정신장애인을 사람이나 죽이고 집에 불이나 지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나와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보면 노닥거릴 생각도 안 하고 일만 하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일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막상 일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당신들은 10만 원 받고 살 수 있느냐”는 한 장애인의 물음, 국가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미진 씨는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들이라면 한 달에 10만 원 받고 살 수 있느냐. 한 달만 이 돈 받고, 나처럼 작업하면서 살아보라고 해보고 싶다. 아마 며칠 안 가서 나가떨어질 거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착실하게 사는지 알게 될 거다.”
 

물론 정부는 장애인의 저임금 노동을 해결한다며 2015년 1월 ‘최저임금 감액제도’를 꺼내 들었다. 장애인의 노동 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에서 일정 비율을 깎아서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이 제도가 시행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지난 2016년 8월 국회에 정부가 장애인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한 최저임금법,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안이 발의되긴 했으나, 이 법안들은 아직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장애인들은 삶이 보장되는 임금을 요구하는데, 정부가 노동 능력을 기본적인 생활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바른 답이라고 할 수 없다. 능력과 관계없이 기본 생활을 위한 최저임금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최저임금법의 원칙은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미진 씨를 비롯해 일해도 삶을 꾸릴 권리는 허용되지 않았던 장애인이 들어야 할 최소한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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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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