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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숨기기 힘드셨죠? 이제 아프지 마세요.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HIV 감염 사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 2017년01월26일 16시51분 ]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감염인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2016년 마지막 날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그를 간병하고 있던 부모님과 그의 파트너는 흐릿해진 눈망울을 보면서도 곧 깨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른 몸, 검게 그을린 것 같은 모습, 그가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병명도 어려운 질환. 뇌에 문제가 생겨 스스로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와상 상태였다. 이야기 나누는 도중에도 하품을 하고, 기침도 하고, 낯선 사람이 올 때 혈압이 갑작스럽게 올라가는 변화도 없어서 간병기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부모님과 파트너의 건강도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돌아왔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서 그의 파트너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진이었다. 함께 찍었던 사진. 커피숍에 앉아 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 다시 이렇게 웃는 날이 오겠죠?” 라는 메시지를 함께 남겼다. 마치 아픈 모습만 본 나에게 누워 있는 모습이 원래 모습이 아니라 다시 건강해지면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일상적인 일이 어려울 만큼 마음이 쓰라렸다. 그와 긴 시간 동거하며 가족처럼 지낸 파트너의 마음과 같을까. 병명도 쉽게 말하지 못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그 옆에 앉아 아픈 모습을 쳐다보고 있어야만 하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을 수가 있을까. 그는 서울이 아니라 먼 곳으로 내려갔다. 마지막 길을 함께 동행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그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낸 파트너에게 위로문자 하나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에이즈 치료제가 해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데 그는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그렇게 황망하게 떠났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의 치료방치, 인권침해 속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에이즈환자 故 김무명(가명) 씨 1주기 추모제 모습.


해외에 있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평소 친하게 지낸 게이 커플이 있는데, 한 명이 HIV 확진 판정이 나면서 나머지 한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통화 한번 해주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전화번호를 건네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HIV가 둘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평소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통화 시작부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민석(가명)의 목소리는 외로웠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는 그 말의 무게를 알기에, 휴대전화 건너편 민석의 목소리가 차분해질 수 있기를 기다렸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 감지되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말도 어눌해지고, 눈도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을 감지한 민석은 파트너를 설득해 응급실에 갔지만, 좀처럼 자신의 상황을 민석과 가족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심지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절대 알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이 못 마땅해 했지만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담당의도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고만 해 처음엔 왜 아픈지 잘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비밀을 숨길 수 없는 일. 그는 점점 더 아파져갔고 결국 말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 사이 민석은 진료기록부를 넌지시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질병명을 확인했다. 민석의 파트너는 자신의 상태를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곧 자책으로 돌아왔다. 3년 넘게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파트너의 아픔을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모든 것이 자기 탓이었다. 또 원망도 있었다. 아프면 이야기를 해야지 왜 하지 않았을까.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는 왜 포기한 것일까 하는 그 말들. 복잡했지만 이미 감염인 지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당신 탓이 아니다. 어쩌면 함께 살았기 때문에 빨리 아픔을 알아챌 수 있었던 거다.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민석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버림받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는 공허한 말들이 민석에게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파트너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사이 민석은 매일같이 그의 상태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느 날은 차 안에서 울고 전화를 하고, 또 어느 날은 좀 나아진 것 같다고 카톡 이모티콘으로 웃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꼭 잡은 두 손을 사진으로 남겨서 보여주기도 하고,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말에 함께 지냈던 방에 혼자 들어가는 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곧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 해외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던 약속을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 나는 매일같이 희망을 꿈꾸며 병원을 찾는 그가 지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길 바랐다.


시간이 참 야속하다. 민석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병문안 갔을 때 자기의 파트너가 늘 한 곳만 응시하니까 그 자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가져다 놓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그의 몸을 쓰다듬고, 안마를 해주고, 말을 걸어주던 그는 아마 지금쯤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 민석은 정말 자기 아들과도 같다고. 누가 저렇게 간병을 하냐고, 가족도 그렇게는 못한다고. 매일같이 병원에 와서 부모님까지 챙겨야 했던 모습에 ‘동성커플’이라는 단어는 꿈도 꾸지 못하셨을 거다. 무언들 어떠리.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침에 민석에게 전화가 왔다. 한참을 울었다. 파트너가 보고 싶다고 했다. 차라리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안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어떻게 지우냐고 울었다. 장례식장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내줬다. “사랑하는 우리 형”이라는 말과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는 어제 그에게 안부문자를 보냈다. 혹시 답답하게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고, 가능하면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그의 답변이 왔다. “밖에 나왔어요. 형의 추억 돌고 있어요.”


에이즈 인권운동을 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에이즈 인권운동의 시작점에 있는 윤가브리엘이 그랬고, 요양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에이즈 환자들이 그랬다. 아프고 힘들 때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잘 숨기고 건강하게 살아갈 때는 도움이 별로 필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 ‘추모하는 일’은 에이즈 인권운동의 중요한 활동이기도 하다. 희망을 꿈꾸며 ‘인권’을 만났지만, 절망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인권’은 가끔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문제해결도 해주지 못하고, 옆에 말 들어주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나 같아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좋은 치료제 나오고 있고, ‘에이즈 완치’라는 희망의 언어를 언론보도를 통해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다. 민석의 파트너는 왜 자신의 HIV감염 사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고, 왜 자신의 몸을 학대했을까. 문제는 버림받을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다. 문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별과 편견 때문이다. 문제는 무관심 때문이다. 문제는 내 문제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석씨.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문제를 직면했고 회피하지 않았어요.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싸움. 그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몫을 남았어요.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와 늘 함께 있는 것처럼.
 

정욜의 헬로! 레드리본

10년 넘게 HIV/AIDS감염인과 함께 인권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지금은 감염인 인권운동의 자력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에이즈 인권운동을 하며 '더러운 좌파'라는 낙인도 찍혔지만 감염인들은 내 삶에 든든한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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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_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간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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