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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송국현 3주기, ‘잘 복수하는 것’이 애도다
지역사회에서의 6개월의 삶, 기억 나눠
송국현 죽인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 폐지 위한 추모‘결의’대회 열려
등록일 [ 2017년04월17일 20시04분 ]

장애등급제 희생자 고(故) 송국현 3주기 추모결의대회가 17일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열렸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고 송국현 씨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인 17일 새벽 6시 40분, 위태롭던 숨이 끊겼다. 나흘 전인 2014년 4월 13일, 집에 홀로 있던 사이 불이 났다.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불을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그 불을 받아야 했다.
 

고(故) 송국현. 그때 그의 나이 52세.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7년을 살던 그는 2013년 10월, 시설에서 나왔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었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당시 활동보조인은 장애 2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의 신청도 하고 장애심사센터도 찾아갔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장애 3급이어서,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6개월 만에 끝났다.
 

그로부터 세 번째 봄이다. 그와 함께 2014년의 봄을 보냈던 사람들은 송국현을 떠올린다. 육지로 올라오는 세월호를 보며, 송국현을 기억한다.

장애등급제 희생자 고(故) 송국현 3주기 추모결의대회가 17일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열렸다. 그의 이름 앞엔 그를 죽음으로 떠밀었던 ‘장애등급제 희생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 송국현을 기억하는 사람들
 

꽃동네에서 나온 송 씨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자립생활을 준비했다. 덕분에 성동센터 사람들은 ‘송국현의 6개월’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됐다. 이날 ‘송국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의 생기로웠던 6개월의 삶의 기억을 나눴다. 

(왼쪽에서부터) 김희정 성동센터 활동가, 꽃동네 탈시설 장애인 모임 ‘플라워’에서 송국현 씨와 함께 활동했던 윤국진 씨.

“‘플라워’(탈시설 당사자 모임) 간다고 하면 옷도 더 신경 써서 입고 나가고. 우리(성동센터)보단 역시 시설에서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 편한가보다, 생각했지요. 형이 술 마시면 안 되는데 거기 가면 술도 몰래 조금씩 먹는 일탈 행위도 하고(웃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굉장히 또렷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어요. 지역사회에 살고 싶다, 꽃놀이 가고 싶다… 얼마 전 대구시립희망원 투쟁 때문에 여의도 갔는데 벚꽃이 예쁘더라구요. 그때 생각나서 마음이 많이 아팠네요.” (김희정 성동센터 활동가)
 

송 씨보다 꽃동네에서 먼저 탈시설한 윤국진 씨는 ‘탈시설 선배’이자, 그의 벗이었다.
 

“형이 혼자 자면 잘 못 자는데 우리 집에 오면 잠을 푹 잘 잤어요. 밥도 많이 먹었어요. 더 좋은 세상 볼 수 있었는데 일찍 가서 안타까워요. 우리가 좋은 세상 만들 테니 지켜봐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장애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송 씨는 혼자 있는 밤이면 불안해하며 잠을 설쳤다. 그가 유일하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때는 곁에 누군가 있을 때였다. 
 

‘하늘나라에 있는 송국현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진행자의 말에 다시 마이크를 손에 쥔 김희정 활동가는 목이 멨다.
 

“3년이 지났는데도,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기엔 여전히 힘들어요. (울먹)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국현동지에게 더는 미안하지 않게, 더 열심히 싸우겠다는 말밖에 못 하겠어요.”

그를 떠올리며 잠시 웃음 터뜨렸지만 이내 곧 다시 울음이다. 6개월은 너무 짧았다. 그 6개월을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은 ‘그가 죽은 뒤에야’ 그와 더 가까워졌다.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단 대표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시설에 살던 송국현은 내가 몰랐던 사람입니다. 죽고 나서야 더 가까워졌다는 게 너무 아픕니다.” 

결의하는 사람들.
- ‘장애등급제 폐지’가 진실규명이고, 애도고, 복수다
 

송 씨가 사망했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형표였다. 그는 현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상태다. 당시 문 전 장관은 송 씨의 죽음에 “유감”이라고만 답했다. 문 전 장관이 구속되어야 할 이유가 장애인들에겐 일찍이 있었다.
 

“문형표는 국민연금엔 수조 원의 손해를 입혀가면서 재벌들의 이익을 지켰습니다. 재벌들의 재산 상속에 앞장섰던 그가, 장애등급심사로 우리 삶을 재단했습니다. 그래서 송국현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진실을 우린 아직 밝히지 못했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문 전 장관은 구속기소 됐지만 송 씨를 불태웠던 장애등급제는 ‘장애등급제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외피만 갈아입은 채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인의 실제 삶이 아닌 등급만을 기준으로 복지를 나눠주는 장애등급제가 있는 한, ‘송국현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을 죄인처럼 수용하는 장애인수용시설은 복지시설이 아닙니다. 그게 선택적 대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입을 막을 수 있도록, 투쟁합시다. 그냥 투쟁하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송국현 죽음에 대해 복수합시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것, 꽃동네와 같은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지하는 것이 이들에겐 ‘진실 규명’이고, 애도고, 복수다. 이날 고 송국현 3주기가 추모제가 아닌 추모‘결의’대회인 이유다.

고 송국현 씨 영정에 분향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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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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