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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후보 수화통역하다 끝나면 실신할 지경...방송사는 왜 개선 노력 없나?
KBS “수화통역 영상 키우는 건 일반 시청자들의 시청권 침해”
수화통역사 "화면 여백 활용해야...농인 정보접근권 보장해야"
등록일 [ 2017년04월27일 20시47분 ]

대선 TV 토론회가 끝날 때마다 후보자별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한다. 토론회에서 한 말 한마디는 뉴스가 되고, 논란이 된다. 토론회가 있는 날이면 후보자들은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토론회 준비에 몰두한다. 말 한마디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농인에겐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화면 하단의 작은 동그라미, 수화통역 창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주관 대선 후보자 토론회. 오른쪽 하단에 수화통역사 화면이 있다.  

현재는 수화통역사 1명이 대선 후보자 5명의 말을 두 시간 동안 통역하고 있다. 토론회 특성상, A 후보가 말하는 도중 B 후보가 치고 들어올 수도 있고,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두 사람의 말이 대화하듯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명이 통역하다 보니 이를 분명히 분리하기 힘들다. 결국 이를 보는 농인 입장에선 ‘이게 누구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수화통역사도 힘들다. 보통은 통역사 1명이 20~30분 통역한 뒤 교대한다.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라면 2~3명의 수화통역사가 투입되는 게 일반적이다.
 

- 대선 후보 5명 통역… 수화통역하는 사람도 힘들어요
 

조성현 수화통역사는 지난 19일, 23일, 24일 세 차례 진행된 대선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수화통역을 맡았다. 그는 2시간의 수화통역 뒤 “실신 직전까지 갔다”고 토로했다. 1992년부터 방송 통역을 한 조 통역사는 이 바닥에선 이른바 ‘베테랑’이다. 
 

통역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두 시간 동안 긴장한 채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수화하느라 온 신체를 움직여야 해서 체력적인 부담도 크다. 수화는 단지 손동작뿐만 아니라 표정, 어깨, 양팔까지 다 포함해야 하나의 언어가 된다. 통역 내내 양팔을 들고 있으니 목, 어깨, 손목은 늘 아프다. 평소엔 팔에 붕대를 감고 다닌다. 대선 토론회 다음날엔 매번 침을 맞으러 다녔다.
 

수화할 땐, ‘구화’하는 농인(입 모양을 읽는 농인)을 위해 후보자의 말도 입 모양으로 따라 해야 한다. 건조한 실내 스튜디오에서 두 시간 내내 입을 벙긋거리니 입안은 금세 마른다. 생방송 중 마른기침이라도 터질까 싶어 도중에 빠르게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전부다.
 

“토론자들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전 2시간 내내 엉덩이 한 번 들지 못하고 앉은 채 떠들어야 하니 토론회 끝나면 팬티까지 다 젖는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수화통역을 해도 수화화면이 너무 작아 정작 농인은 수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 빗대 한 농인은 “수화통역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라볼 정도”라고 말한다. 농인은 수화통역화면을 통해서만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작은 화면 탓에 눈의 피로도가 너무 높아 대부분 보다가 포기한다.
 

“소리 들을 수 있는 청인은 밥 먹으면서도, 청소하면서도 토론회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농인은 수화 방송에서 눈 떼는 순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조 통역사는 수화 영상 크기가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농인의 채널 선택권 보장도 필요하다. 수화엔 문장식 대응수화와 과거 농사회에서부터 농인들이 써온 전통 농수화가 있다. 문장식 대응 수화를 쓰는 농인이 농수화를 보면 이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통역사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채널마다 다른 수화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농인들은 요구해왔다. 현재는 토론회 주관 방송사에서 세운 수화통역 영상이 모든 방송사에 일관되게 송출되고 있다.
 

사실 수화통역 문제는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문제다. 조 통역사 역시 “수도 없이 이야기했는데 바뀌질 않는다”며 갑갑해 했다.
 

“수화통역이 방송사 의지보다는 방송통신위원회 혹은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최소한으로만 지원되는 거예요. 방송사에서도 가능한 안 하고 싶어 해요. 과거 대선 땐, 후보자가 연설 방송하러 오면 방송사가 후보자에게 물었어요. ‘법에 따르면 의무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니 당신이 빼고 싶으면 빼도 된다.’ 저를 불러놓고 후보자한테 그렇게 물어요. 방송사랑 싸웠어요. 나를 왜 불렀냐, 후보가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넣는 거냐. 방송사는 ‘법이 그렇다는 것을 공지만 할 뿐’이라고만 말해요. 후보자는 늘 ‘다른 당에선 했어요?’라고 묻고요. 방송사나 후보자나, 울며 겨자 먹기 식이죠.” 
 

법에 강제 조항은 없고 방송사는 의지가 없다. 수화통역에 대한 매뉴얼이 없으니 농인 시청자를 고려한 더 나은 시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트럼프와 힐러리 대선 토론회 당시 미국 농인 단체 D-PAN이 제작한 대선 수화 영상

최근 SNS에선 지난해 트럼프와 힐러리 대선 토론회 당시 미국의 농인 단체인 D-PAN이 제작한 대선 수화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여기선 사회자, 트럼프, 힐러리에게 수화통역사를 각각 따로 배치했다. 1인 1통역사를 배치 후 3명의 수화통역사 화면을 동시에 띄우니, 서로 목소리가 겹치더라도 농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영상을 최대한 오른쪽에 배치하고, 통역 영상은 왼쪽에 세로로 배치해 바깥 여백이 최대한 남지 않게 화면을 나눴다. 트럼프엔 남자 수화통역사를, 힐러리엔 여자 수화통역사를 배치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현재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D-PAN 영상을 사례로 들며, 1인 1통역사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혹은 최소한 동시에 2명의 수화통역사를 배치해 농인이 발언자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 KBS “수화통역 영상 키우는 건 일반 시청자들의 시청권 침해” 
 

그러나 이를 시행하는 방송사 측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KBS 선거방송기획단 제작담당자는 2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수화통역 화면이 최대”라고 말했다.
 

현재 수화통역 크기는 화면 6분할 시, 후보자 얼굴 사이즈와 동일하다. 그런데 이 크기를 넘게 되면 시청자 입장에선 후보자인지, 수화통역사인지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담당자는 “장애인 시청자도 중요하나 일반 시청자의 편의와 시청권도 있다”면서 “이는 ‘화면 분할 시 수화창이 후보자 창을 가리면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에 근거해 잡은 최대한의 사이즈”라고 설명했다.
 

수화통역사를 동시에 2인 이상 배치하는 것 또한 “화면을 너무 많이 할애하기에 어렵다”고 답했다. 이 담당자는 “토론회엔 기본적으로 후보자 얼굴과 발언이 자막으로 나와야 하고 그래픽이 한 화면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 수화통역사를 2인 이상 배치하면 화면 절반을 차지하게 되니 토론 방송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된다.”면서 “특정 단체나 특정 장애인의 요구만 100% 반영할 순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자막 또는 수화로 할 수 있다’지 ‘하여야 한다’가 아니다. KBS는 공영방송이니 자막과 수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방송사마다 수화통역사를 달리 배치하는 것 또한 ‘주관방송사가 내보내는 화면과 자막, 수화를 동일하게 받아서 중개해야 한다’는 방송 3사의 공동중개 원칙에 근거해 어렵다고 밝혔다.
 

- 참정권과 시청권이 같을 순 없다
 

그러나 방송사의 생각이 수화통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과 어느 정도 온도를 같이 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6일 포털사이트에 뜬 대선 후보 토론회 수화통역 관련 기사에서 사람들은 “올바른 참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며 이를 참정권의 문제로 바라봤다.
 

네티즌들은 댓글에서 “5명까진 아니라도 2~3명의 수화통역사가 있으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했으며, “방송 보며 저 많은 후보를 통역사 혼자 감당하려면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는 의견도 많은 공감을 받았다.
 

현재 농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이자 수화통역사인 박미애 씨는 “시스템상으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하기엔 복잡하다는 것 아닌가”라며 이를 방송사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통역사는 “현재 화면 여백이 많은데 그 여백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라면서 “이는 참정권의 문제다. 시청권과 참정권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으며 볼 권리 때문에 정보 자체를 차단해서도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방송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화통역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농인들의 참정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이들은 △토론자 2인당 수화통역사 1인 배치 혹은 다중 출연인 경우 수화통역사 2인 이상을 한 화면에 배치할 것 △방송사별로 다른 수화통역사를 배치해 농인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할 것 △전체화면의 1/6 수준으로 수화통역 창 확대 △방송사 폐쇄자막 크기 조정을 시청자가 할 수 있게 할 것 △수화통역 배치 방식, 인원, 전송 방식 등 관련 지침 제정 △공직선거법상의 수화통역 제공을 임의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개정할 것 등을 방송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28일, 5월 2일 두 차례의 대선 후보 토론회가 남았다. 남은 기간,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바뀌지 않는다면, 농인은 어떠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의 참정권을 행사해야 할까. 이것은 권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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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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