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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원에서 우리 맘대로가 어디가 있나, 즈그가 하라면 했쟤
희망원 사태의 중심에 있지만 시설 담장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거주인의 목소리
“십 년 동안 모은 돈 수술비, 간병비로 다 썼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나갈끼다”
등록일 [ 2017년05월08일 15시25분 ]
대구시립희망원 사태를 둘러싼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이야기의 주체는 희망원 직원, 천주교, 대구시, 국회의원, 대책위원회 등이었다. 정작 희망원에서 살아오며 각종 인권침해와 억압을 직접 겪어온 거주인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못했다.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가 외부에 닿지 못한 것은, '보호'라는 명목 하에 시설의 벽에 둘러싸여 있는 거주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비마이너는 현재 희망원에서 지내고 있는 거주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지난달 26일 만난 희망원 거주인 A 씨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희망원에 처음 입소한 게, 10년 전입니다. IMF로 한 번 무너지고 나니까 맨손으로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더라고. 노숙 전전하다가 지붕 있고 밥이라도 제때 먹겠다 싶어서 희망원에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계속 살려니까 억수로 답답한 거라. 그래 나가야겠다고 두 번을 나갔지요. 근데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내가 몸이 안 좋으니 바깥생활이 쉽나. 몸이 아프긴 한데 영 어정쩡하게 아프니 수급비가 나오는 거도 아니고. 결국 내 발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희망원에.
 
나가는 데 실패하고 보니까 돈을 모아야겠는 겁니다. 희망원에서 돈 벌려면 봉투 접거나, 비닐하우스 파이프 고정하는 부품 만드는 거. 그러면 한 달에 2, 3만 원에서 많게는 15만 원까지 벌지요. 제일 많이 버는 거는 공장 나가는 거. 그때 희망원에 공장이 있었어요. 부호 실업이라고, 대구에서 얼마 전에 수출 1위 하고 그랬는데 거기 의자 부품 만드는 거랑 화랑 고무 공장 나가서 일하고, 그러면 한 달에 5, 60만 원은 벌었지요.
 
희망원 안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거나, 5~6명 뽑아서 바깥에 공장으로 출퇴근시키기도 했습니다.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다섯시 반까지 일했지요. 나도 나가서 일한 적 있었는데, 온갖 추잡한 일은 우리(희망원 거주인)한테 다 시키고, 즈그들은 토요일날 노는데 우리는 나가갖고 세 시까지 일하고. 그래놓고 돈은 일반 사람들 반만큼, 60만 원. 아, 62만 원 받았다. 차 타고 다닌다고 차비로 2만 원 더 줍디다. 우리는 왜 이래 쪼끔 줍니까? 하고 희망원 선생들한테 따지면, 여기(희망원)서 밥도 먹여주고 집도 제공해주고 하니까 그만치 받으면 됐다 아입니까 이카고.
 
그래도 그나마 여기 살면서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게 여기니까 참고 일했는데 그마저도 사건 터지고 나니까 싹 다 끊겨버리네? 즈그가 돈 제대로 주고 일 시켰으면 일이 시끄러웠겠습니까. 켕기니까 싹 다 끊어버리고. 지금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 돈이 씨가 마르니까 담배도 못 먹고 커피도 못 먹고. 돈 쫌 있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좀 잘 보여서 얻어먹어 볼까 이카고 있다니까요, 참 나.

대구시립희망원 내에 있었던 '자활자립장'에서 거주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희망원 제보자 제공.
 
아, 돈 버는 게 그거 또 있었지, 간병도우미. 나가면 하루에 5천 원, 7천 원 받고. 짧게는 하루 가고 길면 20일, 한 달도 갔습니다. 자발적으로 가는 사람도 있기야 있었지. 근데 뭐 그거는 열에 한 둘이고, 보통은 그냥 의무실에서 불러서 "좀 가보이소" 하면 끝이지예 뭐, 가야지 별 수 있나.
 
근데 남 병간호가 어디 쉽습니까. 솔직히 내가 볼 적에는 환자가 환자 돌보는 거예요. 나도 몇 번 끌려갔는데, 내가 정신과 약을 먹거든요? 근데 거기 나가 있으면 선생들이 약 먹어라 먹어라 이래 귀찮게 하길 하나. 그런 사람 없으니까 귀찮고 피곤하고 하니까 약 잘 안 먹게 되지. 정신과 약이 하루 이틀 안 먹으면 대번에 표난다 아닙니까. 괜히 간호사 의사들한테 맨날 단디 못한다고 잔소리나 듣고. 나는 내대로 최선을 다 하는 건데, 약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환자 무슨 일 생길까 봐 신경은 곤두서지, 그러면 있잖아요, 사람이 멍합니다. 결국 병 심해져 가 나 입원했다 아닙니까. 나 같은 이가 또 있어요, 희망원에, 많아요.
 
그러던 게 이번에 간병도우미도 문제시되어 가지고, 요즘에는 안 내보내는데, 이제는 바깥 병원에 입원한 사람 중에 간병인 안 쓰겠다는 사람들한테도 막 써라 써라 강요를 하는 거라. 혹시라도 즈그 책잡힐까 봐 무서워 그러는지.
 
근데 문제는 이 간병인 돈은 누가 주냐 이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형님이 막 씩씩거리면서 화가 나서 들어오데요? 왜 그런가 봤더니 이 형님이 바깥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간병인을 꼭 쓰라 캤답니다. 돈 없다고, 안 쓴다고 했는데도 의무팀장이 박박 우겼답니다. 자기 감방 보내려고 이카냐면서. 수술비도 형님 돈으로 다 쓴 거라 간병인까지 쓰면, 간병인을 이틀인가 썼는데 그게 하루에 팔만 오천 원이라데. 그게 어마어마한 돈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바깥 사람들한테는 작은 돈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게 여기 살면서 십 년 이십 년 동안 모은 돈입니다. 아까 들었지예, 여기서 최고 많이 버는 사람이 한 달에 육십만 원 벌었다고. 나가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비싼 대학병원 수술비 내지, 간병인도 필요 없다는데 즈그 몸 사리느라고 쓰라고 강요하지. 이 돈을 다 날려버리는 거라.
 
진짜 이게 이해가 안 되는데. 여기 사람들 가둬 놓으려고 만든 건가 싶지요. 바깥에서 몸이랑 마음 다쳐온 사람들 사회복귀 시키겠다고 만들어놓고, 정작 나가서 일하려고 하면 희한하게 막데요. 나가서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사회복귀교육을 6개월을 들어야 해요. 그리고 그거 끝나면 교통카드 한 장 주고 "일자리 한 번 구해 보이소" 이러고 말아요. 신문 광고 한 장 안 갖다 줍니다. 딴 데(노숙인 사회복귀시설) 있다가 온 사람들은 여기는 뭐 이러냐 해요. 선생들이 일자리도 알아봐다 주고 기술 같은 것도 배워야 한다고 설득하고 이런다는데 여기는 전혀 그런 게 없어.
 
또 어떤 이는 바깥에 있는 공장에서 일자리 알아봐서 일을 잠깐 했었는데, 원래는 교육동에서 출퇴근을 했거든? 근데 어느 날 나 있는 일반동에 떡 온 거예요. 알고 보니 그 공장이 사정이 좀 어려워져서 두 달만 쉬십시다 했답니다. 그래서 교육받는 동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일반동으로 옮기라캤답니다, 원에서. 그래 옮기고 며칠 안 있으니까 공장에서 다시 일하자고 연락이 왔네? 아, 그런데 일반동에 있었다고 바깥으로 일을 못 나간다고 그랬답니다. 내가 다 얼마나 분통 터지는지, 즈그가 가라 해놓고 규칙이 그렇다, 규칙이다 그 말만 계속하고. 그이도 건강하거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가 살 사람인데.
 
직원이랑 생활인 관계가 이래요.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선생들 거진 대부분이 2, 30년씩 있던 묵은이들 아닙니까. 뭔가 모르게 규칙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막 못하게 하는데. 그게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합시다 만들었습니까, 선생들이 만들었지. 원생들이 모여서 이렇게 함 합시다, 내일 놀러 갑시다 해서 가는 거 아니고 즈그가 정해서 놀러 나가라 들어와라, 개 끌듯이 끌고 다니고. 말 안 들으면 퇴소하라고 으름장 놓으니 속으로는 분통이 터져도 그냥 따르는 거라.

대구시립희망원 안에 있는 의무동 내부 모습. 거주인 '간병도우미'들은 외부 병원뿐 아니라 의무동에서도 일을 했다.
 
나는 나갈 겁니다. 사람이 여 들어와 있으면 영 비실비실하게 돼. 그냥 여기서 살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이제 또 건축일 알아보고 있어요. 나는 두 번 나갔다가 다 실패하고 들어왔지만 그래도 세 번째 또 나갈 겁니다. 다시 들어와도 또 나갈 거예요. 대구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KTX 타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두 시간밖에 안 걸려요? 와, 세상 좋아졌네. 내도 담에 함 타봐야겠네. 다음엔 서울서 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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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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