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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코레 아노', 배제와 격리 없는 사회 향한 로버트 마틴의 여정
뉴질랜드 피플퍼스트의 견인차이자 첫 발달장애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 로버트 마틴
발달장애인에 대한 물리적, 사회적 격리 모두 없는 사회를 향한 꿋꿋한 여정
등록일 [ 2017년05월18일 15시46분 ]
1957년, '거대한 물'이라는 뜻을 가진 뉴질랜드의 항구도시 왕거누이(Whanganui)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난산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뇌를 다쳤다.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었던 아이는 18개월이 되었을 때 집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대형 시설에 입소되었다.
 
아이는 이후에도 시설을 전전했다. 다섯 살 때 집으로 잠깐 돌아가긴 했지만, 그에게 집은 욕설과 매질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10년을 더, 그는 시설에서 살았다. 애정이 어린 눈빛, 따뜻한 포옹 같은 것을 그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경험한 신체접촉은 직원들이 자신의 옷을 갈아입히거나 목욕을 시킬 때 뿐이었다.
 
아이는 자기 옷이나 신발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신던 신발, 입던 옷을 직원이 입혀주는 대로 입어야 했다. 누군가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는지 질문했을 때, 그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가 자란 곳은 그런 곳이었다. 기호를 가질 수 없는 곳, 개성이 지워진 채 '저능아'라는 정체성만 주어진 곳. 그러나 아이는 '저능아'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길 바랐다. 로버트 마틴, 아닐 때도 있지만 대체로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
 
로버트 마틴
 
마틴은 지난 수십 년 간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달장애인 당사자 권리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만들어질 당시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내용을 넣었고, 2016년에는 발달장애인 최초로 유엔장애인권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7년 5월, 그가 한국에 왔다. 힘찬 걸음을 이제 갓 떼기 시작한 한국피플퍼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는 거대시설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그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저는 좀 반항적인 사람이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지냈던 시설에서, 저와 친구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8시부터 농장에서 일해야 했죠. 어느 날 저는 불만이 생겼어요. 왜 우리만 이렇게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 하나. 결국 저는 동료들과 '파업'을 했죠. 시설 직원은 저희에게 '나가서 길거리에서 살든지, 아니면 잠자코 일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고, 저는 '둘 다 안 한다'고 했어요. 오히려 그 직원에게, '내가 여기서 산 지 10년이다. 이제는 변화될 때가 아니냐'고 따졌죠."
 
결국, 그는 1972년, 시설에서 나와 살게 되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시설에서 쫓겨난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누렸고, 시설에 갇혀있느라 교육받지 못했던 과거를 채워나가듯 책을 읽고,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다. 바깥세상에는 그가 몰랐던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딘가에 갇혀서 비틀즈도, 베트남 전쟁도, 케네디 암살 사건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거예요. 저도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야 음악을 접했어요."
 
그는 자신이 왜 갇혀 살면서 세상과 괴리되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보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것들을 다른 발달장애인들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뉴질랜드 피플퍼스트가 태동되었다.

"피플퍼스트는 1984년에 이미 뉴질랜드의 거대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기관인 IHC 산하 기구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독립 단체가 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92~94년 사이였어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모여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독립 단체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상의했어요. 온전히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만으로 꾸려갔어요. 그때까지도 발달장애인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죠. 우리는 '그래 우리 발달장애인이야.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 그러니까 우리도 국가 정책에서 고려되어야 하고, 정책 결정자의 일부가 되어야 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나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그리고 정부에 내기 시작했다. 마틴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발달장애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탈시설' 이었다.
 
2006년, 뉴질랜드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인 '킴벌리 센터'가 폐쇄됐다. 이곳은 마틴이 생후 18개월에 처음으로 들어갔던 시설이자, 뉴질랜드의 마지막 대형 시설이었다. 이로써 뉴질랜드는 대형 시설이 없는 첫 번째 서구 국가가 되었다.
 
"시설 폐쇄를 위한 운동은 이전에도 계속되었어요.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보건부 장관을 지속적으로 만났죠. 2000년에 우리는 당시 보건부 장관에게 '우리가 사람들을 모아서 거대 규모 행진을 할 건데, 만약 탈시설 정책을 도입하면 그걸 축하하는 신나는 행진이 될 거고 아니면 시위가 될 거다'라고 말을 했어요. 결국 '시위행진'이 되긴 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했어요.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시위행진을 했는데 지켜보던 많은 시민이 행진에 동참해줬고 서명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2006년에 뉴질랜드에서 대형 시설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시설을 폐쇄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부터 뉴질랜드에서는 '에 코레 아노:네버 어게인(E Kore Ano: Never Again, '결코 다시는'이라는 뜻의 마오리어와 영어)'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과거 국가가 운영한 시설에서 학대와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시설 내에서 일어났던 인권침해 진상규명을 이끌어내기 위한 운동이다.
 
"우리가 시설에 갇혀야 했던 일의 책임은 정부에도 있어요. 돈만 주고 끝내는 건 안 돼요. 시설이 유지되도록 돈을 대고 장애인들, 특히 발달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방치했던 것이 바로 정부예요. 정부는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어요. 우리도 국민이에요. 그렇다면 국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했어야 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현재 '에 코레 아노:네버 어게인' 페이지에서는 시설에서 인권침해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모으고 있다. 
 
'네버 어게인' 캠페인 홈페이지 화면. http://www.neveragain.co.nz 갈무리.
'네버 어게인' 캠페인 동영상 중. 시설 내 인권침해 피해자가 "(정부의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해, 마틴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사상 최초의 발달장애인 위원이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 뉴질랜드 후보로 제가 선정되었어요. 선거운동도 당연히 했죠. 그리고 거기서 그냥 내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자넷의 조언을 듣고 정말로 그렇게 했어요. 내 삶이 어땠는지, 나는 거기서 뭘 느꼈는지,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어요. 드디어 위원회에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도 포함된 것이죠."
 
"발달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내야 해요. 그것이 가장 중요해요. 협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보고서 검토 과정,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다른 장애인단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느꼈지만, 모두가 자기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해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권리가 증진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이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많은 의사결정 자리에 발달장애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주요 업무인 보고서 검토를 했어요. 제가 중점적으로 본 것은 시설과 임금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더이상 갇혀있지 않도록 이를 정책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최저임금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도 권고를 했죠. 하지만 제가 낸 의견은 어떤 국가도 귀 기울여 듣지 않더군요. 딱 한 군데, 캐나다에서만 답변을 해왔어요. 노력하겠다고."
 
마틴은 앞으로도 꾸준히 발달장애인 위원이 선출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내외적으로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발달장애인이 더 많아져야 해요. 발달장애인의 의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접근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유엔의 공식 회의나 문서에서는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요. 저는 이런 것을 수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조력자의 '번역'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발달장애인 친화적으로 더 변해야 해요."
 
하지만 사회에는 아직도 '발달장애인이 뭘 알아' 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마틴은 발달장애인을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시설도 없어져야 하지만, 사회 안의, 심지어 장애 운동 안에서도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 역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사람이에요. 우리가 누구 위에 서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 밑에 있지도 않아요. '우리 없이 우리 이야기를 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발달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이 구호에서마저 우리를 배제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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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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