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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복지플랜 ‘국가비전 2050’, 공수표가 되지 않으려면?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나온 ‘비전 2030’ 계승하겠다는 새 정부
‘복지 시장화’, ‘증세 없는 복지’ 뛰어넘을 새로운 구상 제시해야
등록일 [ 2017년05월24일 13시30분 ]

문재인 정부의 초반 개혁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 국정교과서 폐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중단,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검찰 돈 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 지시 등 정부가 내놓는 발표마다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해결이 요원할 것만 같았던 일들이었건만 지난 2주간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위 개혁조치들이 신선해 보이는 것은 지난 정부의 몰상식에 대한 비교우위 때문일 것이다. 위 사안 중 많은 경우가 큰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난 정부는 그 ‘의지’가 없었고, 현 정부는 그것을 확실히 갖췄다. 달리 말하자면, 위 사안을 가지고 현 정부의 실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자들 앞에서 직접 내각, 청와대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화면 갈무리)


현 정부의 실력은 본격적으로 ‘돈 들어가는’ 일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 노후소득보장 강화, 생애맞춤형 소득지원제도, 어린이 입원 진료비 국가책임제 등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공약했던 내용 중에서도 상당 규모의 재정이 소요되는 굵직한 사업들이 많다. 대부분 민생·복지 관련 사안들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 점은 문재인 정부가 향후 중장기 복지정책 전망을 담은 <국가비전 2050>(가칭)을 수립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비전 2050>을 통해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 8월에 나온 <비전 2030>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 2030>은 사회정책 차원에서 ‘최초의 국가 장기종합전략’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여론과의 소통 과정 없이 전문가 중심으로 만들어진 탓에 사실상 사장되고 만 ‘비운의 보고서’로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전 2030>에 담긴 정책 구상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를 인사를 통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2006년 당시 기획예산처 고위 공무원으로 <비전 2030> 입안을 주도했다. 소위 ‘변양균 라인’으로 언급되고 있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비전 2030> 입안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력한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용익 전 의원도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으로서 <비전 2030>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비전 2030>의 구상이 부활한다면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민생·복지 정책에 희망을 걸어 봐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또한 따져봐야 할 지점들이 적지 않다. 2006년 당시 이 보고서는 한겨레가 사설(“당리당략 뛰어넘는 논의 필요한 '비전 2030'”, 2006.08.30)을 통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좌우파 모두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현 정부가 복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제대로 받아 안길 원한다면, 그 비판의 맥락들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 변화 반영했던 <비전 2030>
‘증세 없는 복지’의 출발점이었다


<비전 2030>은 ‘동반성장 패러다임’을 주요 기치로 내걸고 △성장과 복지의 조화 △혁신주도형·균형 성장 △인적·사회적 자본 중점 투자를 추구했다. 기존의 복지가 가족과 공동체에 의존하는 ‘구호적 복지’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패러다임 하의 복지는 정부의 역할 강화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전 2030>의 기본 문제의식은 ‘저출산·고령화’라는 변화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해 국가 정책의 패러다임을 개선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기존 산업국가들의 복지체제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위험구조를 갖고 있는, 특수한 인구분포에 조응하여 구축된 것이었다. 즉, 남편들이 안정적으로 가족임금을 벌어들인다는 전제하에, 그 전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해 온 농촌 및 노동계급 여성들로 하여금 가정에 머물도록 하여 가족 스스로 사회서비스의 욕구를 ‘자급자족’ 하도록 한 체제였다. 이 때 국가의 역할은 소득보장만 충실해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정상가족’ 형태가 붕괴되자 사회서비스의 자급자족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이제 국가 복지정책의 방점은 소득보장에서 서비스보장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물론 한국의 경우 소득보장도 부실한 상황이지만, 급격한 가족형태 변화와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 인프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140여 페이지 분량 <비전 2030> 원문에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142회나 등장한다. 이에 해당하는 제도혁신 과제로 제시된 것들을 보면,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보육서비스 ․ 방과후 활동 확대 △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 △주민생활지원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등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나온 국가전략 보고서 <비전 2030>


당시 한나라당은 이 구상에 대해 ‘분배만 강조한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했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가사·출산·양육·수발 등의 일을 가족에게 전적으로 떠넘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사회정책의 방향이 ‘탈가족화’를 지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인데, 이 때 중요한 것은 가족을 제외한 복지의 행위자인 국가와 시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그 전까지 공적 서비스 시스템이 부재했던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비전 2030>은 비교적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국가가 하게 될 역할의 실내용이 복지를 국가 책임으로 가져간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족 복지’를 대체할 ‘시장 복지’의 촉진자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통신, 금융, 광고 등 지식기반 서비스 업종은 대형화, 전문화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도 대외 개방 및 경쟁원리 확대 △관광, 문화, 레저산업의 고급화 다양화 △영세 자영업자 중심 유통, 개인서비스 부문은 구조조정 촉진 등의 내용이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다. 즉, 변화된 시대의 증대하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복지 시장화 확대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비전 2030>의 구상인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재정이다. 아무리 복지의 시장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어서는 국가재정이 상당 부분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비전 2030>은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비전2030 추진”하고 “그 이후에는 어느 정도의 복지수준을 얼마만큼의 국민 부담으로 추진할지에 대해 국민적 논의 필요”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비전 2030> 발표 이후 11년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증세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의 결론이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 증세 논의는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면서, 마른 수건 쥐어짜듯 오로지 복지 세출 구조조정 등의 방식만을 고집했다. 이는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기존 복지축소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귀결됐다. 그런데 이 방식은 <비전 2030>에서 제시된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비전 2030>이 사장된 보고서라고는 하지만, 보고서가 제안한 것 중 적지 않은 내용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그래서 <비전 2030>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용익 전 의원은 “박근혜가 얘기한 양극화와 고령화, 구사회 문제와 신사회 문제, 낙후된 복지 수준에 대한 문제 인식, 사회보장과 사회서비스의 조화, 맞춤형 복지, 선제적 투자로서의 복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서의 복지,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등은 모두 '노무현 복지'의 구상과 정확히 같은 것”이라면서, “박근혜 복지의 계보는 결국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노무현의 누이”라고까지 이야기 한 바 있다("박근혜,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노무현의 누이'", 프레시안, 2011.02.15).

<비전 2030>에서 제시하는 국가정책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 35페이지)


문재인표 <국가비전 2050>은 노무현의 한계 넘어 설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런 지적이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복지 실패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노무현 정부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회정책의 장기전략에서조차 심각한 한계가 있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나 문재인 정부가 <비전 2030>을 계승한 <국가비전 2050>을 계획한다고 하니, 더욱 간과해선 안될 중요한 문제가 된다.


<비전 2030>의 구상의 골자는 이른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을 ‘복지의 시장화’로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은 ‘증세 없이 마련’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대대적으로 추진했던(퇴임 후에는 반성적으로 평가했던) 한미FTA 추진,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로의 편입에 강하게 종속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통상전문 변호사인 송기호의 <비전 2030>에 대한 아래와 같은 비판은 전혀 과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비전 2030>은 이미 퇴보한 국가로 하여금 완전히 뒤로 물러나 앉으라고 합니다. IMF사태 후 10년 동안 형성된 국제금융자본의 기득권과 경제구조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국가는 그 구조의 담 너머에서, 인력에 투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탈락한 자와 희생된 자를 위한 구제사업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비전 2030>의 ‘사회투자’이며, ‘선진적 사회복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연히 돈이 듭니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비전 2030>은 2010년까지는 세금 증가 없이 한번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증세를 위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비전 2030>은 패퇴하는 국가의 자화상입니다. 국가는 국민경제를 유지하는 1차 보호선입니다. <비전 2030>은 국가에게 퇴각을 명령합니다. 국가는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탈영합니다. 그리고 시장 주변에서 보초를 서다가, 자신이 버린 1차 보호선이 무너져 생긴 희생자들과 마주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빈곤층의 기나긴 대열에, 국가는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 나의 새로운 비전이오!” “그러니 세금을 좀 더 내주셔야겠습니다.” (송기호, 『한미FTA 핸드북』, 녹색평론사, 2011 (개정 온라인판))


<비전 2030>은 노무현 정부가 이뤄낸 성취와 한계 모두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다. 당시의 시대적 우울을 표현했던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이제 ‘헬조선’이라는 절망적 단어로 진화했다. 그만큼 시장만능주의적 경쟁질서를 통제하고 국가가 복지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당위는 더욱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이 끝내 좌절했던 지점, 복지가 시장주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 지점에서 다시 발돋움을 시도하는 것으로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표 개혁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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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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