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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채우는 밥 한 그릇, 우리 운동을 비추는 거울 한 조각
[서평]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조의 이야기 <들꽃, 공단에 피다>
등록일 [ 2017년05월30일 15시36분 ]

전화가 왔었다. 처음에는 받지 못했다. 텔레그램 메시지를 남겼다. “오전에 교구 항의방문이 있어서 고것 좀 정리되면 전화 드릴게요.” 1년이 넘은 희망원 문제해결을 위해 조환길 대주교를 찾는 날이었다. 책임자 처벌에 대한 확답이 필요했다. 교구청 본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찾아 무작정 기다릴 심산이었다.


역시 그 날도 대주교를 만날 수는 없었다. 대신 우리는 개처럼 끌려 나와 내팽개쳐졌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가리지 않았다. 사복경찰들과 교구 직원들은 무표정했고 단호했다. 1시간 여 실랑이가 계속 됐다. 휠체어를 타던 한 장애인은 다리가 골절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깨진 안경과 휴대폰 액정 조각들, 아까 먹은 초코파이 비닐과 물통, 부러진 휠체어 발판이나 찢겨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 바닥에 마음대로 나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본관 옆에 위치한 성모당에서 육중한 미사 소리가 울렸다. 저녁미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처음 맞닥뜨리는 묘한 이질감에 어쩔 줄 모른 이들은 짓눌린 울음을 터뜨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붙이며 전화를 다시 걸었다. 서평 부탁이었다. 아사히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단다. 하겠다고 했다. 책까지 보내준단다. 감사하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했다. 왜 한다고 했을까. 할 일도 많은데. 사실 이들과 나는 이렇다 할 관계가 없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생계비로 매월 후원하는 것이 내 왜소한 연대의 전부였다. 기분 탓이었다. 오늘 맛본 형언하기 힘든 이 비릿한 감정을 그들은 막연하게 알아 줄 것만 같았다.

구미공단 최초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든 아사히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 <들꽃, 공단에 피다>(한티재 펴냄).


한동안 적폐니 뭐니 떠들썩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박근혜가 파면되자 희망원이 대구의 가장 큰 적폐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시청 농성장은 외로웠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 부모들, 그리고 저녁이면 찾아오는 희망원 지회 노동자들만이 거의 전부였다. 시청을 들쑤시고, 성당에서 소리를 쳤다. 도로를 막고, 교구를 점거했다. 그래도 좀체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광장을 메웠던 촛불시민들, 몇 백의 노동조합 대오는 함께 있지 않았다. 큰 사안마다 나타나는 ‘정의’운운하는 사제들은 이미 기다리지도 않았다. 이곳저곳 단체에서 후원금 봉투가 날아들 때면, 한편 감사하면서도 우리만 내몰렸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벌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안도감이 들었지만, 운동의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 오수일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유령’같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촛불의 빛이 아니라 나머지 어둠에 속했다. 몇 달 후인 4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장애인차별철폐투쟁 전국집회 행진에서 그가 결국 광화문 광고탑 위에 올라가 고공단식 농성을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들꽃’은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지켜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구미공단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었다. 딱 한 달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가 날아들었다. 170명이 어제까지 다니던 일터와 아주 간편하게 작별되었다. 문자 몇 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비정규직이고 싶어서 비정규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딜 가도 비정규직이고, 어딜 가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 이젠 갈 곳도 사실 없다” 최진석 조합원의 말이다. 거리로 나왔다. 버티는 것이 투쟁이 되었다.


진실한 투쟁은 사안, 부문, 영역과 같은 것들을 아주 작은 문제로 만들고, 깨끗한 거울 같은 것을 제공한다. ‘운동한다’, ‘노조한다’라는 명분을 만들어 위시하고 활용하기에 바쁜 모리배들과는 달리, 노동조합 2년의 역사가 자신들이 싸워온 시간과 동일한 이 정직한 동지들의 투쟁이 꼭 그렇다. ‘들꽃’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장애인운동가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인생을 살려고 내가 태어났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또 다시 나를 자책한다. 내가 못나서 이런 데서 일하는 거겠지, 하고 말이다.(남기웅)”, “처음 본 그들은 약간 무서웠고 투박해 보였으며, 슬퍼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모습은 즐거워 보였고 인간미가 있으며 알지 못할 오묘한 분위기가 있었다.(김정태)”, “처음에는 살짝 겁이 났다. 노동조합 하면 잘린다고도 하고, 탄압이 엄청 많이 들어 올 거라는 소문도 많이 돌았다(장명주)”, “(농성장)철거를 할 때 남유진 구미시장이 찾아온 것이 보였다. 철거 잘 하고 있는지 둘러보고 가는 것 같았다. 우리도 구미시민인데, 시장이 어떻게 저러나 싶었다. 섭섭하고 야속했다.(김성한)”, “짓고 생활할 때는 그저 공간이었지만, 그 허름한 농성장이 우리 투쟁의 꿈이고 희망이었음이 새삼 느껴졌다.(이민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의 이야기, 내가 들었던 동지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은 그들의 ‘이유’를 담았다. 조합을 결성한 이유, 가입한 이유, 그리고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않고 남아서 버티는 이유 말이다. 짧은 한 달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만으로 공장에서 어깨를 펴고, 눈칫밥을 먹지 않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는 아사히 조합원들. 하지만 ‘투쟁’이라는 낯선 그것이 마치 해고 통보 문자처럼 급작스럽게 일상으로 들어오고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들꽃’에는 그런 이들의 두려움, 무서움, 실패와 좌절감, 무기력함 같은 것들이 버무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약함을 숨기기보다 털어놓는 쪽을 택한 듯했다.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그 약함이 그토록 헌신적이고 놀라운 연대 실천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깨달았다.


한편, 그들의 ‘이유’는 이 땅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경북’, ‘구미’, ‘노동조합’, ‘비정규직’, 그 어느 하나 녹록치 않은 조건에서 차헌호 지회장은 이야기 한다.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 노동조합을 운영한다고 해서 민주노조가 아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정신과 실천이 민주노조다.”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야학, 자립생활센터, 여러 단체들의 동지들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기도 하다. 그의 말은 바꾸어 말하면 ‘장애인들이 스스로 단체/센터를 만들고, 스스로 단체/센터를 운영한다고 해서 장애인운동이 아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정신과 실천이 장애인운동이다.’정도 될까. 뼈가 있다.


‘들꽃’은 아사히 조합원들이 개떡 같은 세상에 펴낸 농성장이다. 몇 명이 찾아오든지 간에 다 먹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지어올린 밥 한 솥이다. 떠들썩했던 촛불과 휘황찬란한 문재인 정부에도 여전히 배가 고픈 이들은 어서 와서 한 술 뜨시라. 그들이 지난한 시간을 들여 깎고 닦아 낸 거울에 우리 운동의 얼굴도 살피고, 외로움과 허기도 잠시나마 달래보자.


※<들꽃, 공단에 피다> 단체구입 문의
담당자: 남기웅 010-6259-8410 / 김정태 010-5874-8564
후원계좌 국민은행909202-00-000499(안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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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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