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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는 불치병이 아닙니다'라는 위로를 가장한 협박
건강보험공단이 조장하는 치명적인 '반장애 이해교육'에 대하여
등록일 [ 2017년06월06일 17시46분 ]

“재미로 던진 돌에 연못 속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속담이다. 개인이 가볍게 던진 말도 이러한데,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이 목적을 가지고 널리 퍼트리는 안내문이 상처를 준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요즘 SNS상에서 영유아검진 안내자료에 실린 자폐성장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나는 카톡방에서 어머니 한분이 공유한 사진을 통해 소식을 처음 접하였다. 그분은 자신의 집으로 발송된 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하며 사진을 공유하였다. 그 자료를 본 자폐 부모와 전문가들의 반응도  모두 그랬다. 혹시 장난으로 만든 자료는 아닐까? 과연 이 자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작하여 전국으로 발송한 자료가 맞는 것일까? 믿고 싶지 않았다. 놀람 다음에 느낀 감정은 짜증과 분노였다.  “완치 가능, 불치병이 아니다”는 문구가 맨 처음 눈에 걸렸지만 사실 문구 하나 하나가 다 눈에 걸릴 정도로 허술하고 오류가 많았다. 국가기관조차 이 정도 수준의 장애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부모로써 몹시 속상했던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영유아 검진 대상자에게 발송한 안내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15년 전 쯤, 아들 승기와 공공장소에 가면 늘 한 두 명의 어른들은 애가 제멋대로인데 그냥 두냐고 못 마땅해 하고 가르치려 하거나 예쁘게 생긴 애가 모자라다며 나를 불쌍해하며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나는 그들의 ‘관심과 친절’이 불편했지만 예쁘게 웃어주고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우리의 사정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고 자폐에 대한 사회 인식 수준이 아직 낮으니 너그럽게 참아내고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면서 그렇게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웃어주기 어려운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자폐에 대해 “이렇게나 자세히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굳이 불쌍한 자폐엄마에게 잘 알려주어야 하겠다는 의무감을 가지는 걸까? 자폐 아이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다던가, 부모가 애착을 잘 주지 않으면 유사자폐가 된다던가, 어떤 치료시술, 대체의학을 쓰면 고쳐진다던가 하는 ‘카더라 조언’을 듣는 일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 대사처럼 “그 입 다물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친절성’이 나를 상처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맷집이 쎄서 잘 견뎌고 버텨왔다. 이제 내 아이는 성인, 여전히 자폐인 장애성인이 되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승기에 대해 나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특수교육학 박사이고 상담자인 내가 “노오~력”해도 안되는 걸 보니 이건 장애가 맞는 모양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지금 청년이 된 승기를 보고 완치가능한 ‘결정적 시기’를 놓쳐 여전히 ‘자폐를 앓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무척 기분이 상하고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의 무식함이 참 답답하고 불쌍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우릿하게 내 상처가 기억나고 새로 아프다. 지금 상황에선 우습게도 그 ‘뭘 모르는 사람’이 바로 국가기관인 셈이 되어버렸고, 무식할 뿐 아니라 매우 영향력이 있는 존재이니 화도 나고 걱정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영유아건강검진은 생후 4개월부터 생후 71개월까지 7차례 이루어진다. 각 가정에 안내문이 나가는 사이 잘못된 정보가 어린 부모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결국 이런 류의 오정보는 매우 치명적인 ‘반 장애이해교육’인 셈이다. 다시 궁금해진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라는 문구, ‘자폐는 불치병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위로일까 협박일까?


도대체 안내문의 글귀들은 어디서 옮겨온 글일까? 글 출처를 확인하려다가 더 속상하고 민망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옮겼으면 그 정도의 정보 수준으로 안내문을 만들어내야 했던 실무자가 혼자 과오를 뒤집어 쓸 것이고, 어떤 집단이나 전문가가 글을 점검한 것이라면 자폐성장애에 대한 이해 수준이 전문가 집단에서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니 말이다. 몇 줄 안 되는 글 사이의 행간에서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 수준, 장애정책 수준을 본다. 부끄럽고 피곤하다.


정확한 지식이 없이 저급한 정보를 분별하지 않고 가져온 것, 그에 대한 전문가 점검절차가 없었던 것이 문제이다. 앞으로 공적인 작업을 할 때는 보다 검증되고 공식화된 자료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문제 발생 이후의 일이다. 항의가 커지자 공단은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사과와 회수 절차를 미루고 있다. 그냥 잠잠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장애부모나 각기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항의에 대해  절차나 내용상 문제가 없다는 말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당신이 상처받느냐”는 식인 것이다. 부모가 가장 상처 입는 지점은, 그래서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대응하게 되는 지점은 나와 내 자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타자들의 민낯을 볼 때이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에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부모들에게 신체발달뿐 아니라 인지, 언어, 사회성, 자조의 영역을, 안전사고나 개인 위생, 영양교육 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발달을 점검하도록 한 것은 참 좋은 시도이다. 장애영역을 미리 알리고 안내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상대를 바라보고 말할 때라야 정성스럽게 말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은 여기에 있다.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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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아 (사)한국장애인부모회 부회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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