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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애정체성’만으로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동료상담에서 나의 경험은 온전히 말해질 수 있는가
등록일 [ 2017년06월08일 10시55분 ]

나에게 동료란?


나는 얼마 전에 동료상담 교육에 다녀왔다. 10년 전에 동료상담 교육을 수료하고 오랜만에 받은 교육이었다. 10년 전에 동료상담을 받았을 때도 들었던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료상담은 장애를 가진 이들끼리 상담을 하고 상담을 통해 감정해방을 느낀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특정 정체성에 의해 동료가 된다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고, 장애만 갖고 있다고 해서 다 동료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동료상담에서도 동료란 무엇이고 누가 나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동료라는 말을 들으면 오래 전 일이 떠올리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가족과 함께 살았던 시절에 처음으로 가출이란 걸 해봤다. 그 당시에 나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부족한 가족과 자주 부딪힘이 있었다. 그리고 집안 큰 행사 때마다 매번 나를 배제하고 가족 안에 없는 존재로 여겼었다. 10년 전, 그 해도 언니 결혼식을 앞두고 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들끼리 상의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결혼식에 안 가고 누가 나와 함께 집안에 남을 것인지 선발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소리를 듣고 혼자 장애가 있는 몸을 탓하며 가족들의 결정을 따르고 우울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장애인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고, 장애여성단체에 활동을 시작한 시기라서 나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활동가에게 털어놨다. 그 동료활동가는 나의 얘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해 주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깊게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반란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그 동료는 나의 의사에 반하는 가족들의 태도와 결정에 화를 표현해야 한다고 했고 더 이상 참고 지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언니 결혼식을 앞두고 나는 동료활동가와 가출을 했다.


처음으로 가족에게 향한 나의 분노가 제대로 표출 되는 것만 같았다. 비록 2박3일이란 짧은 기간의 가출이었지만, 그 가출이 내게 큰 영향력을 주었다. 만약 그 때 그 동료활동가가 “상희야 그래도 가족이잖아. 네가 가족의 입장에서 이해해야지. 축복받는 결혼식 날에 가족들이 네 걱정을 해야 되겠니?” 이 말을 했다면 나는 여전히 장애를 탓하며 집구석에 처박혀서 슬픔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그런 장애 차별적인 분위기를 감히 깨뜨릴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그 동료활동가가 지금껏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내 입장에 서서 함께 저항하고 동참 해 주었던 경험은 어떠한 위로의 말보다 어떠한 손길보다 더 강렬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했던 그 동료활동가는 장애인도 아니었고 오래된 친구도 아니었다. 그 동료활동가는 비장애여성이었고, 친분 관계를 오랫동안 맺어 온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증장애여성인 나의 문제를 기존 사회 통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함께 공감하고 나의 존재 자체를 존중해 주는 행동을 실천해 준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좀 더 삶에 대한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힘은 불가능해 보였던 독립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동료의 모습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 가지 정체성으로 동료가 될 수가 있을까?


그러나 이번 동료상담에선 나는 힘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동료상담 중에 어느 장애남성 참여자의 성차별적인 언어가 있었고, 그 말에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하지만 동료상담은 상대의 말에 어떤 조언도 부정적인 말도 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안에서 나는 감정해방보다 불편한 마음을 느껴야 했다.


나는 이들을 동료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적어도 동료라면 서로 지향하는 부분이 만나야 하며 내가 가진 정체성 일부분이 차별의 언어로 발화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애는 배려받을 수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존중 받지 못한다면 과연 그 동료상담에서 나의 경험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성차별에 대한 교육의 부재로 인해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질 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성차별 관련된 교육이 무수히 마련되어도(교육이 아니더라도 관심 있다면 얼마든지 통로는 열려 있다.) 참여율이 저조한 것을 보면 성차별 교육의 부재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동료상담에서 장애차별은 문제지만 성차별은 관대해도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누가 그런 동료상담에서 편하게 자신의 경험을 꺼내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동료상담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으로 동료상담을 폄하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동료란 개념을 좁게 보고 어떠한 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동료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국어사전도 찾아봤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흔히 직장동료라는 단어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직장동료는 정체성이 아니라 외부 조건으로 함께 노동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개인마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크게는 경제적 이유로 다닐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은 외부의 조건이 아닌 어떠한 한 가지의 고유한 특성인 것인데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동료로 부르기엔 어딘가 불편함이 있다.


같은 중증장애를 갖고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환경이 다르고 그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면 서로 동료로서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어렵고 무한 지지도 할 수 없다. 만약 동료상담에서 중증장애를 가진 남성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를 지지할 수 없다. 나 또한 중증장애를 가졌지만, 나는 그의 성매매를 찬성할 수 없다. 성적욕망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강하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이것 또한 동료가 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비장애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이 다르게 소비되는 성차별적인 문화 속에 그의 성적욕망 실현보다 ‘성 도구’로 읽혀지는 여성의 몸과 인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료상담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있기를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차별의 대상이고, 그 차별이 장애를 부정적이고 위축 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장애차별 경험 나누기로 위축된 맘이 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장애차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 등 무수히 많은 차별의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차별을 견뎌냈던 마음이 아직 치유되지 못한 채 상처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고 심리치유 강의도 들으며 몇 권의 책도 뒤적거려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무리 훌륭한 심리 치료사도, 100만부 팔릴 책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가진 차별의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상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인생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상담이란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최근 들어 IL센터에서 동료상담이 점점 더욱 중요해진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다. 상담에 대한 무게를 떠나서 IL센터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실무능력이 중요한 사회복지 기관처럼 되어가는 IL센터에서 장애인들은 점점 밀려 나올 수밖에 없다. 일부 장애인 리더들은 경증의 엘리트 장애인을 고용해서 문서를 빠르고 세련되게 찍어내면 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실무가 어렵거나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이들은 유일한 대안으로서 동료상담가를 권유하고 있다. 그나마 장애를 가진 이들의 경험이 IL센터에서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들의 경험이 유일한 자원으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장애가 곧 능력으로서 한계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미리 정해 놓은 편리한 공식대로 IL센터를 만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정해 놓은 공식대로 IL센터를 운영한다면 그 안에서 튕겨져 나오는 장애인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부딪힘이 필요하고 더 많은 시도가 있어야 한다. 더 많이 부딪히고 깨져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동료상담에서 정말 동료됨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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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횔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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