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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연애에 대한 짧은 생각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 2
등록일 [ 2017년07월06일 12시11분 ]

거절은 거절일 뿐


얼마 전, SNS에 공유된 기사를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기사는 스터디 모임에 나갔던 비장애여성이 모임에 같이 참여한 장애남성의 구애를 받으면서 겪게 된 불편함에 대한 글이었다. 글의 내용에 따르면 같은 모임 안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장애남성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고백을 해왔단다. 고백을 받은 여성은 연애감정이 생기지 않아 여러 번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애는 멈추지 않았고 여성의 집까지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긴 비장애여성 하고만 연애를 해왔으며 장애를 가진 여성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생각이 없다고 말을 했단다. 여성은 수차례 구애를 거절했었고, 모임 안에서 이 사실을 두고 동정론 형성이 되면서 여성은 편견이 가득한 사람으로 찍혔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최근 SNS 상에서 화제가 된 글 '장애인의 고백 거절하면 나쁜건가요?'


나는 이 기사를 ‘장애’를 빼고 읽어봤다. 옛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남성들이 여성에게 구애를 펼칠 때 쓰이는 말이다. 여성의 거절은 무시해도 될 만한, 속마음을 감춘 내숭의 과정이라고 멋대로 착각을 하는 듯하다. 또한 상대가 여러 차례 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성들은 여성의 거절 표현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자신감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감히 나를 거절해?’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인가?


기억에 각인된 전화 스토킹


나는 이 기사를 읽고 한 가지 경험담이 생각났다. 20대 초반까지 나는 집에서 1~2번꼴로 외출을 했었다. 이 나라에서 중증장애인이라면 한번쯤 재가 장애인 시절을 통과한 장애인이 많을 것인데,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물리적인 어려움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파른 언덕과 계단만 있는 3층 집에 갇혀 10대를 보내고 20대를 맞이했었다. 그 무렵에 한 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 모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친목모임으로서 외출이 어려운 장애인 회원을 비장애인 회원이 직접 집까지 찾아와서 도움을 주며 함께 어울리고 때론 여행도 가는 모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지원을 요청했고, 차를 가진 한 비장애남성 회원이 자원을 하여 차량 지원을 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었고, 달콤한 말로 조금씩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사실 나는 그 사람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연애감정이 생길 정도로 매력적인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은 나의 지긋지긋한 삶을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음 열고자 노력을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모임 채팅방에서 여성 회원들끼리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비장애남성은 장애여성 회원들한테 ‘좋은 오빠’인 척 하며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을 해왔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 자원이 없는 중증장애를 가진 내게 건장한 비장애남성이, 것도 직장이 있고 차가 있는 사람이 대시를 해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연락을 계속 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전화 문자로 ‘더 이상 연락을 안 해 줬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렇게 보내면 연락을 안 할 줄 알았다. 나의 예상과 달리 그 비장애남성은 집요함을 보이며 전화 스토킹을 해왔다. 처음 겪는 일이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휴대전화를 꺼놓거나 받지 않는 것으로 대응을 했다. 그러나 장기화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웠고 공포스러웠다. 더구나 그는 우리 집까지 알고 있어서 더 무서웠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괴롭힘은 지속되어왔고, 결국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했다. 다행히 그것으로 일은 마무리 되었다. 아마도 그 비장애남성은 ‘너같은 중증장애인이 감히 나를 거절해?’ 이런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장애여성은 작업(?)하기 쉬운 상대이었고, 자신의 호의에 거부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나의 거절이 용납하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끈질기게 전화를 해대며 오기를 부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그 때 조금 더 강력하게 대응을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엄마의 결혼 볶음


우리 엄마는 인생의 완성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시다. 언니들이 결혼을 하기 전, 엄마는 김치를 볶듯 언니들을 매일 볶아대셨다. ‘결혼을 빨리 해야 한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자식 낳고 사는 게 여자의 최고 행복이다, 번듯한 직장 다니는 사람을 만나라, 전라도 남자는 안 된다’ 등 하루에도 수십번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물론 이 결혼 볶음에서 나는 제외되었다. 엄마가 내게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장/애/극/복) 사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옆에서 봤을 때, 남편과 자식들이 있지만 엄마의 삶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니들은 반항끼 많은 나와는 달라서 엄마의 뜻대로 모두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고 있다.


엄마는 언니들이 전부 결혼한 후에 혼자 사는 나를 더욱더 안타깝게 여기셨다. 그러던 중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중증장애여성이 비장애남성 만나서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되셨다. 그 프로그램을 보시고 엄마는 내게 희망 찬 목소리로 전화를 하셔서 “상희야 너를 업고 다닐 수 있는 남자를 찾아봐라”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다.


그날 이후로 툭 하면 이 말씀을 하셨다. 언니들한테는 여러 가지 조건의 남편감을 말씀하시더니 내게는 나를 업고 다닐 남자면 된다고 하시니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는 장애를 가진 내가 혼자 사는 게 뭔가 부족하고 결핍된 상태로 생각하시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사회생활을 잘하고 인간관계를 잘 맺고 있어도 불안하신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가사노동과 양육에 시달리는 언니들이 더 불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지속적으로 결혼 볶음을 해 오는 엄마한테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엄만 내가 비장애남자 아무나 만나서 매일 얻어맞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 뒤로 엄마의 결혼 타령은 끝났다.

본문 내용과 무관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장애와 매력, 장애와 젠더, 장애와 사랑, 장애와 연애, 장애와 결혼...


나는 이 글을 쓸 준비를 하면서 며칠 동안 고민을 했었다. 장애와 매력, 장애와 젠더, 장애와 사랑, 장애와 연애, 장애와 결혼.... 이 조합을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연애를 감성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사회 문화적이 편견과 차별이 뒤엉켜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 관점에서 혹은 젠더적인 관점에서 연애와 결혼을 바라본다면 사회 모순적인 문제들이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주변에 많은 장애인들이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결혼은 아니더라도 연애는 하고 싶었다. 실제로 연애를 잠시 경험해 본 적도 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장애와 성차별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수많은 편견을 감수해야 했다. 흔히 여성은 남성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남성의 시각에서 외모를 가꿔야 연애 상대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나는 고정된 여성의 성역할을 수행할 수도 없고, 뇌병변 장애로 인해 얼굴 근육과 팔, 다리 근육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장애를 가져서 미의 기준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편견의 말들로 채워져서 나는 자존감을 잃곤 했다.


연애상대가 비장애인이라면 사람들은 상대 남성을 하나님 보듯 우러러 보며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대했던 것이다. 내가 매력적이라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남성이 희생정신이 강하고 훌륭한 인격을 지녀서 나를 만나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장애여성인 내가 어떠한 생각과 매력을 지녔는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장애남성이 연애를 할 경우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시선의 초점이 연애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남성에게 있다. 그 장애남성이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있는지 혹은 연애 주체자로서 충분한 매력이 지녔는지 살펴본다. 이는 사회적으로 자원의 중심이 남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연애 안에서도 장애남성은 주체로 환원되는 것 같다. 또한 장애남성과 연애를 하는 여성은 당연히 장애남성과 연애를 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돌봄과 희생이 가능한 위치에 있어서 그런 것인가?


장애를 가진 이들 중에 연애와 결혼을 해야 비로소 완전한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 비장애인 삶처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장애는 결핍된 상태로서 결핍된 내 몸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평생 장애 때문에 겪어온 수모를 보상받으며 조금 더 나은 장애인으로 비춰지길 원하는 욕구도 있는 것 같다. 상대가 비장애인이라면 ‘봐라 나는 장애가 있어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 라며 자부심을 보이는 장애인도 봤었다. 동일한 인간은 없는데 왜 삶의 기준을 남의 삶에게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여전히 사회는 장애차별적이고 젠더 불평등적인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본인이 가진 장애가 멋져 보이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연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연애를 잘 못 하는 내게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눈만 낮추면 충분히 연애가 가능하다고 말이다. 사람들 생각에는 내게 어울릴 법한 상대가 있는 모양이다. 과연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과 사귈 법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한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비폭력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실제로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어서 여성들에게 많은 환심을 샀고, 그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알고 난 뒤 크게 실망을 했었다. 그런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어쩔 수 없는 감정의 문제로 자기 합리화를 했었고, 마치 멜로 영화 주인공처럼 사는 게 그의 삶에 목표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여성들의 환심을 사서 오락처럼 즐기는 것이 과연 그가 말하는 감정의 문제인지 생각은 좀 해 봐야겠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환상이 환멸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며 나는 참 눈이 낮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지금은 연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연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로맨틱한 장면들이 나날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장애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장애여성인 내가 상대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협상이 가능한 소통구조를 가져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마도 이 자신 없음은 사회가 변하지 않은 한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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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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