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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웅성거리는 자 누구인가
영화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 리뷰
등록일 [ 2017년07월11일 18시10분 ]
지난 6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상영된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이라는 작품은 러시아의 한 장애인 수용시설을 배경으로, 이곳 거주인들이 러시아 시민권을 얻기 위한 힘겨운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리뷰를 홍성훈 님의 칼럼을 통해 전합니다. (편집자 주)


#1.


어느 방 안,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여자는 누군가와 마주보지만 화면은 그의 모습만을 비춘다. 여자의 표정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여자의 신원을 묻는다.


문 : 몇 년 생이신가요?
답 : 1981년생입니다.
문 : 정확한 날짜를 말씀해주시겠어요?
답 : 2월 19일입니다.
문 :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답 : 34살입니다.


질문은 점점 집요해진다.


문 :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 도망친 적이 있나요?
답 : 아니요.
문 : 경찰서 기록은?
답 : 없습니다.
문 : 손목을 그은 적이 있었나요?
답 : 아니요.
문 : 소매 좀 올려주실래요?


여자가 소매를 걷고 칼자국 없는 자신의 손목을 내민다. 율리아가 손목을 보여준 이는 정신과 의사로, 흰 가운을 입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여자의 손목을 양옆으로 뒤집으며 샅샅이 살핀다. 끝내 자살 시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시선을 거두곤 말한다. “됐어요.”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제법 익숙하다. 그 익숙한 플롯을 따라가다보면 여자는 어떤 히스테릭한 증상을 보이고 정신과 의사는 증상의 원인을 유추하기 위해 유년시절과 자살 시도 여부를 묻는다. 정신과 의사는 여자의 말과 행동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정상/비정상 진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질문할 권리는 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여자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이로써 질문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넘어온다. 이제, 그 질문을 돌려줄 차례가 되었다.

영화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 스틸컷.


#2.


“얘들아, 약 먹을 시간이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내부에는 해가 높게 떠 있는 한낮이지만 창문마다 커튼을 친 상태다. 바닥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깔리고 무언가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뚜렷한 형체를 띠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지만 각자의 목소리가 뒤엉켜 하나의 웅성거림이 된다. 그 웅성거림은 바닥에 고인 그림자 웅덩이처럼 목소리 하나하나를 집어삼킨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은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대부분 문 밖 너머를 향하지 않는다. 바깥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앞 사람의 걸음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일 뿐이다. 화면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의 서막은 이렇게 올라간다.


#3.


우리는 다시 여자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여자의 이름은 율리아 다닐루쉬카, 율리아는 러시아 동시베리아에 위치한 틴스코이 장애인 수용시설(이하 틴스코이)에서 11년간 거주했다. 틴스코이에서는 최근 폐쇄되기 전까지 정신장애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2는 틴스코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영화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의 본격적인 서사는 틴스코이에서 율리아의 시민권 회복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틴스코이에 수용된 정신장애인은 대부분(어쩌면 전원일 수도 있다) 러시아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즉 그들은 명백히 살아있음에도 국가행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오로지 틴스코이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틴스코이 측은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한 정신 장애인을 선별하여 시민권 회복을 위한 소송을 진행해 왔는데 마침내 율리아에게 그 기회가 돌아왔다.


틴스코이 측은 율리아의 신원과 행적이 적혀 있는 서류를 검토한 뒤 시민권 회복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한다. 수용시설 측이 법원에 제출할 서류들에는 출생부터 34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율리아의 신원 정보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 서류들은 딱딱한 행정 용어와 의사가 휘갈긴 필체로 쓴 의료 용어가 가득한, 이른바 ‘율리아 다닐루쉬카 보고서’였다. 율리아가 출생당시 어떠한 사고로 인해 장애를 입었고 유년 시절 몇 개의 고아원을 전전했는지, 또 지금 머물고 있는 틴스코이 수용시설에서 어떤 행동패턴을 보이고 인간관계는 어떠한지 따위의 항목들이 적힌 보고서는 율리아의 시민권 회복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터였다. 하지만 거기에 율리아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기란 만무했다.


시설 내에서 율리아가 시민권 회복 소송을 제기한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이들이 술렁거린다. 틴스코이 원장은 율리아를 직접 찾아와 조만간 법원에서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며, 법원에서는 첫 인상이 중요하니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떠들썩했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율리아는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한명씩 돌아가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 그런데 그중에서 침울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4년 뒤 율리아와 함께 시민권 회복 소송을 진행하는 카쨔 카시모바였다. 카쨔는 율리아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이내 눈물을 흘린다. 율리아와는 달리 틴스코이에서 평생 살아가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예감하는 눈물이었다. 율리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위로의 말 몇 마디로 그 깊은 절망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율리아는 말없이 카쨔의 곁을 지켜줄 뿐이었다.


그러나 법의 언어는 너무 차가웠다. 매일 수만 페이지의 서류와 보고서 더미에 쌓여 있는 판사는 율리아의 삶을 직접 들여다 볼 틈이 없었다. 때문에 판결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율리아 다닐루쉬카 보고서’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온갖 다양한 언어로 쓰인 그 보고서에서도 언어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율리아가 틴스코이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그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오직 판사의 이목을 끄는 것은 율리아를 몇 분 보았을까 말까 한 의사들의 소견서였다. 그 소견서에는 이런 류의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약간의 지적장애와 약한 이해력, 모자란 지식,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경향, 사회 규범과 결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행동, 결단력의 부족과 순종적 경향……’ 그리고 그 문구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율리아의 시민권 회복 소송을 기각하는 판사의 입에서 되풀이된다.


율리아가 아무리 법원에서 자신이 러시아 시민의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토로해보아도 판사에게는 한낱 웅성거림으로 들릴 뿐이었다. 세계의 구체성을 제거하는 숨 막히는 논리 체계로 이루어진 담론들은 철저히 율리아의 삶을 은폐했다. 율리아는 틴스코이의 그림자에서 겨우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지만 그 다음에는 삶 그 자체를 압살하는, 더 큰 그림자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언어 몇 줄에 희망은 철저히 부서졌고 다시 틴스코이로 돌아가야 했다. 율리아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은 카쨔가 자신의 앞날을 예감하며 흘렸던 눈물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 <문 밖으로 : 자유를 향한 투쟁> 스틸컷.


#4.


우리가 마주하는 건 어떤 달력이다. 그 달력의 날짜들은 모두 지워져 있다. 누군가 볼펜으로 힘주어 그은 듯 달력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 대신 달력은 새로운 정보를 환기시킨다. 볼펜으로 지워진 달력의 숫자들처럼 누군가의 삶도 지워졌다는 사실을 선연히 드러낸다.


#5.


이제 우리는 4년의 시간을 훌쩍 넘게 된다. 문드러진 열두 달의 날짜들이 네 번쯤 반복되었을 무렵 율리아는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동안 틴스코이에서의 생활은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수용자들은 시설 측이 계획한 프로그램에 따라 각자 주어진 노동을 하고 연극 연습을 하는 등 빈틈없는 생활을 한다. 당연히 그 빈틈없는 생활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한데 모여 다니고 웅성거린다. 율리아와 카쨔 또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시민권 회복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온다. 4년 전 율리아 곁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카쨔도 틴스코이 문 밖의 세상,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카쨔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카쨔는 미리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법원에 입고 나갈 옷을 시설 관리자들과 상의해서 고른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카쨔는 창을 든 돈키호테처럼 힘차게 밀고 나간다. 카쨔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진단하는 의사에게 당당하게 질문을 겨눈다. ‘왜 우리의 시민권을 우리가 없을 때 박탈당해야 하는지, 자신은 왜 늘 불공평한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카쨔의 물음은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이었다. 전에는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자신이나 자신을 버린 가족들을 혐오하는 것으로 대신했다면 이제는 시선을 돌려 정신과 의사에게, 더 나아가서는 국가권력에 제기한 것이다. 카쨔의 물음을 받은 정신과 의사는 한결같이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발을 뺐다. 하지만 카쨔는 그들의 물음에 꼬박꼬박 답해야 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답해야 했고, 학대에 못 이겨 틴스코이에 제 발로 들어왔다고, 또 16 빼기 7은 9라는 것을. 그들이 원하는 답을 말해야 했다. 카쨔는 문을 열고 나가면 더욱 강한 자물쇠가 걸려 있는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는 갑갑한 현실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율리아는 그들의 물음에 착실히 대답한다. 율리아 또한 카쨔처럼 묻고 싶은 것들이 숱하겠지만 이미 그들의 답은 정해져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리라. 율리아는 자신이 틴스코이에서 나와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러시아 시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그것은 곧 자신이 국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다시 말해 율리아와 카쨔는 온몸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은 너무도 불리한 ‘증명’이었다. 그들의 말은 이미 국가가 드리워놓은 그림자를 뚫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를 뚫고 온전한 자기 언어를 찾으려면 처절한 투쟁이 수반되어야 했다.


#6.


판결의 시간이 다가오고 마침내 율리아는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한다. 고등법원 판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율리아 다닐루쉬카의 시민권 회복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법정에서 빠져나간다. 반면 카쨔 카시모바의 시민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조차 프린트된 판결문 하나로 대신했다. 사법 권력은 같은 곳에서 생활한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이들의 갈라진 운명은 곧 다른 행보로 나타난다. 법정에서 돌아온 율리아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마침내 틴스코이를 나선다. 모두들 율리아의 이마에 입맞추며 앞으로의 삶을 축복해준다. 율리아는 밤기차에 몸을 싣고 11년간 머물렀던 틴스코이에서 유유히 빠져나간다. 카쨔는 율리아가 없는 틴스코이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율리아가 시민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국가권력은 겨우 율리아를 '위험하지 않은 시민'으로 판별했기에 그녀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문 밖'을 나선 율리아는 ‘러시아 시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러시아 시민 율리아’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하나, 카쨔를 비롯한 틴스코이 수용자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할 수 있을는지. 우리의 문제제기는 이 지점에서 새로이 시작해야하고 끊임없이 되물어야 할 것이다.


거기, 웅성거리는 자 누구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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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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