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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감염인들, 자기 자신 부정하는 경향 강해… ‘셋 중 한 명 자살 충동’
한국 최초 ‘HIV낙인지표조사’ 한국 보고서 발간 기념 발표회 열려
감염인들 극심한 빈곤에 자책·죄책감 등 ‘내재적 낙인’ 경험
등록일 [ 2017년07월13일 18시25분 ]

“갑자기 간호사들이 오더니 내 침대를 끌고, 중환자실 안에 보면 창고 같은 게 있어요. 거기에 집어넣는 거예요. 갑자기 의사가 오더니 외국갔다 온 적 있냐고, 아니 없어요. 바로 딱 그러는 거야. 당신 에이즈 걸렸어요. 그때까지 그런 건 진짜 생각도 못 했고 에이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거든요. 완전 충격. 그 의사 나가고 혼자 있는데 계속 죽음, 죽음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 ‘죽겠지’가 아니라 ‘죽어야겠다.’ 그래서 다음날 숟가락 하나 빼돌렸어. 저녁에 숟가락으로 (입안을) 찔렀죠. 그래서 지금 제 목소리가 이래요. 지금도 성대 반이 안 움직여.” (박수인, 가명)

“집에서 세수하면 엄마가 들어가서 세면대를 싹 다 닦아. 그렇게 전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걸 엄마가 알지만, 정말 만에 하나 동생한테 이걸 옮길까 걱정되시나 봐. 내가 샤워하면 화장실 전체를 다 닦아. 너무 더워 미칠 거 같은데 집에서 샤워를 못 하게 해. ‘나가서 하고 오면 안 되니?’라고 하셔. 그럼 갑자기 뭔가 번거로운 게 아니라 내가 확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이한선)


- 한국 최초 ‘HIV낙인지표조사’ 결과 발표, 당사자가 당사자 인터뷰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 이에 대해 최근 의미있는 조사가 발표됐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인권재단사람 후원을 받아 2년간 한국 최초로 ‘HIV낙인지표조사’를 했다. HIV낙인지표조사는 유엔 산하 기관인 유엔에이즈가 전세계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낙인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2006년 관계 기관들과 함께 개발한 연구 도구다. 현재 총 90개국에서 이를 도입하고 있으며, 한국 조사 결과도 지난 6월 22일 유엔에이즈를 통해 발표됐다.
 

KNP+ 주도로 진행된 HIV낙인지표조사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한국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가 자료 수집과 분석에 참석했다. 조사의 특이점은 감염인 당사자만이 현장 조사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조사엔 감염인 당사자 15명이 104명에 대한 면대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이 중 15명에 대해선 추가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KNP+는 12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한국HIV낙인지표조사 한국 보고서 발간 기념 발표회를 열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12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한국HIV낙인지표조사 한국 보고서 발간 기념 발표회를 열었다. 연구 책임자로 참여한 서보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교수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노동 가능한 인구 대다수지만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
 

조사 연구 참여자 104명 중 남성은 102명이며, 여성 1명, 트랜스젠더 1명이 포함됐다. 이 중 90명이 자신을 게이·레즈비언이라고 응답했다.
 

연구 참여자에 남성-동성애자가 편중된 것에 대해 연구 책임자로 참여한 서보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교수는 “이는 ‘HIV/AIDS가 남성 동성애자의 병’이라는 걸 뒷받침하는 결과가 아니라 조사 특성상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할 수 없다 보니 발생한 표본의 한계”라고 설명했다. 조사 표본은 KNP+가 기존에 가진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자의 연령은 40~49세가 전체 37.5%(39명)로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이 30~39세(28.9%), 50~59세(18.3%) 순이다. 확진 후 연수는 5년~9년이 37.5%로 가장 많았고, 10~14년(26.9%), 1~4년(24%)이 뒤를 이었다. 결혼 상태는 독신이 전체의 60%에 이르렀으며 이혼까지 포함하면 파트너 없는 싱글 상태는 전체 66.3%(69명)이다. 응답자 대다수는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 교수는 이들 상당수가 노동 가능한 인구임에도 경제적 빈곤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답자의 54.8%가 전문대·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체 응답자의 42.3%가 100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고용 상태도 지극히 불안정했다. 풀타임 임금 노동자는 36.5%에 그쳤으며 아예 직업이 없는 실업 상태는 31.7%에 달했다.
 

“그때는 누구 만나면 약을 화장실 가서 먹었던 것 같아요. 절대로 보여주면 안 되는 그런 거.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 사람들이 회사 건강검진에 대해 병원 관계자랑 얘기하더라구요. 병원 관계자가 항목에 에이즈 검사 넣을 거냐고 하니까 당연히 넣어야 하지 않냐고.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그만둬버렸어요. 회사를, 그거 때문에. 그만뒀더니 자동차 할부도 갚아야 하지, 병원도 가야 하지 되게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갔어요.” (박수인)


이후 박 씨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국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서 교수는 “HIV 감염 이후 실직과 단기 불안정 노동 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과정은 생애사 인터뷰에 참여한 감염인들의 경험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감염인들 지배하는 감정 대부분은 자책, 죄책감, 낮은 자존감
 

감염인들에겐 직접적인 차별 경험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내재적 낙인’이 더욱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HIV 감염 사실로 인해 느낀 감정에 대한 질문에서 많은 응답자들이 자책(75%), 죄책감(64.4%), 낮은 자존감(59.6%) 등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답을 선택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사회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 명 중 한 명꼴로 결혼하지 않거나 가족·친구들과 떨어져 지내기,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친밀감 높은 관계 형성과 유지를 포기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구직이나 교육, 성관계를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병원 선택에서도 대형 병원보다 동네 병원을 훨씬 기피했다. 지역 사회에선 자신의 HIV 감염 사실에 대한 정보가 더 빨리 퍼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감염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양상을 보면 대다수 감염인이 ‘나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것’(78.8%)을 가장 두려워했으며, 성적 관계에서 감염 사실로 인해 거부당하는 것(49%)도 큰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곳으로 미디어 댓글(78%)과 언론보도(77%)를 꼽았으며, 그다음으로 특정 종교 단체의 행태(66%)라고 답했다.
 

내재적 낙인화의 깊이는 타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서 교수는 “독일은 HIV/AIDS 유병률이 매우 낮고 항바이러스 치료도 보편화되어 있어 HIV/AIDS 치료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과 독일을 비교했을 때, 타인탓하기를 제외하고는 한국은 모두 독일보다 높다. 특히 죄책감, 자책은 한국이 2~3배 이상 높다”면서 “자살 충동도 타 국가들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남아프리카(9.8%)보다 한국(36.5%)이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인류학적·사회학적으로 스티그마(낙인)란 특정 부류의 사람, 행동, 정체성에 부여된 불명예로, ‘낙인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온전한 인격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을 뜻한다”면서 “한국에서 감염인의 정체성이 부여되는 과정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일회적이 아니라 반복, 누적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감염인으로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깊은 손상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특히 감염인들에겐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아는 순간, 첫 확진 판정을 받는 순간이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낙인지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려 61.5%가 ‘자신도 모르게 HIV 검사를 받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HIV 감염 증상을 보여서, 다른 질병 치료 중 자신도 모르게 검사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42.3%가 검사 전후로 어떠한 상담도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서 교수는 “상담 없이 의사에게 갑자기 통보받고 갑자기 격리되는 순간, 감염인은 이후 사회적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 처하게 될지를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면서 “감염인들이 시도한 자살은 HIV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그에 부여된 낙인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날 것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의료인과 보건공무원의 역할은 감염인이 관계 맺는 첫 번째 대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나, 감염인들은 의료인에 대해 충분한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의료진이 내 의료기록을 철저하게 기밀로 취급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답한 비율은 26.9%에 불과했으며, 응답자 17.3%는 이미 의료인에 의해 감염 사실이 누설된 경험이 있었다. 서 씨는 “반면 베트남은 40%, 남아프리카는 79.5%가 의료인을 신뢰한다고 답했으며 독일은 90%를 넘는다”며 한국사회에서 의료인에 대한 감염인의 신뢰 수준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특히나 군대나 수감시설처럼 고립된 단체 생활을 하게 될 때 비밀 보장 원칙은 더욱더 지켜지지 않았다. 입대 중 HIV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엔 본인 동의 없이 감염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HIV/AIDS 문제를 단순 공중 보건상의 질병 문제가 아닌 보다 복잡한 관계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 교수는 “남성 동성애자들 간의 성행위가 HIV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병리화될 때, 이러한 낙인화된 담론은 HIV 감염이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놓여 있다는 점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 HIV/AIDS에 대한 낙인이 단지 외부에서 부여되는 것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부터 재생산되고 있는 점도 유심히 살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12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열린 한국HIV낙인지표조사 한국 보고서 발간 기념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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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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