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10월19일thu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뷰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종필이 형, 외롭고 가난한 우리의 길에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요.’
장애인, 홈리스, 세월호 투쟁 카메라에 담아온 박종필 감독 추모문화제 열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당신의 뒤를 따라 우리도 걷겠습니다”
등록일 [ 2017년07월31일 00시17분 ]

소식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길게는 한 달에서 짧게는 일주일 사이, 그의 육신이 돌이킬 수 없이 쇠락했다는 비보가 사람들에게 날아들었다. 그의 주변인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장애인, 홈리스, 최근엔 세월호까지. 외로운 싸움 현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담았던 카메라의 주인, 박종필 감독.

 

고 박종필 감독의 빈소
 

다큐멘터리 ‘IMF한국, 그 1년의 기록-실직노숙자’(1998) 연출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현장에 들어선 그는 ‘끝없는 싸움-에바다’(1999),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 ‘노들바람’(2004) 등의 작품으로 장애인권운동 현장을 지키는 든든한 기록자가 되었다. 2015년 8월부터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관련 다큐를 찍고, 최근까지도 목포 신항에서 ‘416 가족선체기록단’이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세월호의 진실을 기록했다.

 

박 감독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강릉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그의 건강이 그토록 악화될 때까지 아무 힘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괴로워했다. 자신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그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이 '미안해서'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고집 센 박종필이 또'라며 그저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기적을 바라며 그가 다시 일어서길 바랐지만 그는 지난 28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이렇게 보내선 안 될 사람인데…’ 울음에 찬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장례가 ‘인권사회장’으로 열리면서 사람들은 살아생전 그가 만든 작품과 그와의 추억을 나누며 슬픔을 나누었다.

 

추모행사는 29일 '영상으로 만나는 박종필'에 이어 30일 '삶으로 만나는 박종필'까지 진행되었다. 30일 행사에는 장애인, 홈리스, 세월호, 독립다큐 현장 등에서 활동하며 고인을 만난 사람들이 모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저녁 7시에 시작해 두시간 반가량 이어졌고 200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 '우리는 감동을 줘야 하는 사람들이야'

 

세월호 유가족 문종택 씨(단원고 1반 고 문지성 부친), 김도현 노들야학 활동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왼쪽에서부터)
 

박 감독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는 '고집스러움'이었다. 박 감독과 함께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을 기록해온 세월호 유가족 문종택 씨(단원고 1반 고 문지성 부친)는 그의 고집스러움에 반했다고 전했다.

 

"종필이를 제가 좋아하게 된 원인이, 제가 좀 소극적이라 사람한테 먼저 접근을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종필이랑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 기록 같이하기로 하고 미팅하면서 보았지요. 유가족인 저보다도 더 강한 기록에 대한 집요함, 고집. 그 모습에 제가 반했습니다."

 

그의 고집스러움은 작품을 담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1999년 박 감독을 처음 만난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는 그의 작품이 "있는 그대로를 담으면서도 힘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종필이 형의 작업을 보면 연출이나 기획이 없고 그냥 현장의 목소리나 활동가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관된 태도가 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도 그렇고 결과물도 그렇고요. 굉장히 투박해 보이는데, 이게 엄청난 힘이 있더라구요. 노들야학 교사로 활동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필수 과정 중 하나가 종필이 형이 노들야학의 모습을 기록한 '노들 바람' 시청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투박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마다 전부 엉엉 울어요. 참 신기하죠."

 

문화제 사회를 담당하던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나 역시 박 감독이 찍은 '버스를 타자'를 보고 나서야 왜 그렇게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그 절실함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들야학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 '노들바람' 비디오테이프를 김도현 노들야학 활동가가 들어 보이고 있다.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가운데)
 

박 감독의 카메라가 있는 그대로를 담으면서도 힘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종택 씨는 박 감독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요양원에서 담배 한 대 태우면서 한 30분가량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이야기는 아니었고요, 두세 단어 이야기하려면 호흡을 네, 다섯번 가다듬어 힘을 모아야 하니까… 하는 말이 '형, 우리는 뭐 하는 사람이지? 목포에 있을 때 내가 이야기했잖아. 기억나?' 이러는 거예요. 저는 종필이 앞에서 울지 말라는 가족분들의 신신당부를 들어서 '그냥 말하지 마' 했는데 기어이 말하더군요. '우리는 감동을 줘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우리 기록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애써 누르며 문 씨는 말을 이었다.

 

"세월호 선체 조사 기록을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한테는 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이야기 만들고 작품 활동하는 거 그런 거 다 필요 없었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저는 '찍새'가 필요했고, 종필이를 불렀어요. 종필이한테 '네가 뭘 하든 세월호에 올라타지 않았느냐. 올라오는 그 순간에는 모든 걸 다 정리해라. 내가 출발하자고 하면 출발하는 거다'라고 했고, 그래서 종필이가 저랑 같이 동거차도에 갔어요. 이후에 종필이가 저한테만은 아픈 걸 숨겼더군요. 제가 미안해할까 봐, 걱정해서요."

 

문 씨는 마지막 인사를 부탁하는 말에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입을 열었다.

 

"박 감독은 나에게 동생이 아니라 형입니다. 종필이 형 고맙습니다. 나도 열심히 해볼게요."

 

세월호 유가족 문종택 씨(단원고 1반 고 문지성 부친)
 

- '우리와 함께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저는 박종필 감독 이름이 '박감독'인 줄 알았어요."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그를 '영상 활동가'가 아닌 '활동가'로 불렀다. 박 감독은 홈리스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늘 재정이 부족했던 홈리스행동 후원주점이 열리면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주점 티켓을 백 장씩 팔았다. 홈리스야학 공간이자 반빈곤 운동 공간인 '아랫마을'을 마련할 때는 자신의 저축을 깨 천만 원을 입금했다. 자신이 찍은 다큐멘터리 파일과 라벨 이미지를 보내주며 '이거 팔아서 써라'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아랫마을'에 있는 동안 그의 손엔 카메라가 없었다.

 

"영상 찍는 건 홈리스 형님들 회갑 잔치 때 영상 찍는 것밖에 못 봤는데요. 작품은… 파전이랑 동그랑땡 정도?(웃음) 우리와 함께하면서 카메라를 안 가져 왔던 건, 카메라보다 활동가로서 자기가 ‘휘젓고 다녀야 할 판’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야학 학생이자 교사로, 홈리스행동 이사로 이러저러한 직책을 맡아서 하고. 늘 반빈곤 운동의 재정을 걱정하고 운동의 지속을 위해 애썼어요. 이쪽에 어른이 없는데 늘 어른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박 감독과 함께 '다큐인'에서 활동했던 반다 활동가는 박 감독의 '속 깊은 자상함'을 회상했다. 반다 활동가는 다큐인 활동 당시 건강이 안 좋아져 엄격한 식이요법을 해야 했다. 밀가루와 튀긴 음식을 먹지 않았다. 까다로운 식단을 지켜야 했지만 박 감독은 그 시간을 함께했다.

 

"다큐인 사무실에서 같이 밥을 해 먹는데 박 감독이 6개월이나 같이 해준 거예요. 그게 쉽지 않은데."

 

이선일 화가, 반다 다큐인 전 활동가,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왼쪽에서부터)
 

박 감독의 ‘술친구’였던 이선일 화가 역시 그를 '자상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 씨가 작업실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박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업실을 찾아온 박 감독은 '왜 술 마시면서 과자만 먹냐'고 타박했다. 냉장고를 뒤져 재료를 찾아내고 안주를 만들어 함께 먹었다. "종필이랑 술 먹으면 든든했다"라고 이 씨는 회상했다. 그의 '자상함'은 안주에서 끝나지 않았다.

 

"제가 개인전을 한 적이 있는데, 일이 생겨 지방에 내려갔거든요. 그래서 종필이한테 작품 포장해서 작업실에 가져다 놔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게 작가들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흔쾌히 그러겠다고. 제가 나중에 보니 포장을 너무 꼼꼼히 잘한 거예요. 작가들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데(웃음)."

 

사람들은 그를 회상하며 미소 지었으나 오늘 이 자리가 작별인사를 위한 자리임을 상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석 노들 야학 교장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 했어요. 이미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영상을 엄청 찍어 뒀으니 편집만 하면 됐는데 시간이 도무지 나질 않는 거예요. 장애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앞으로 운동을 이어갈 사람들에게 '투쟁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반다)

 

"너무 보내기 싫었는데요, 종필이가 맨날 술 먹으면서 먼저 간 동지들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는 '이제 종필이가 그 동지들 만나겠다'라고 위안 삼고 있어요." (이선일)

 

"종필이 형을 20년간 알아 오면서 간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한 거의 유일한 소식이었어요. 건강 회복하고 돌아와서 한 번 더 놀래켜주길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진 않았네요. …자기의 현장을 지키며 누구보다 참 멋지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길 잘 가길 바랍니다." (김도현)

 

"주사 맞기 전이 맞을 때보다 더 무섭잖아요. 감독님도 투병 중이실 때 많이 무서우셨을 텐데 감독님이 좋아했던 윤양호 아저씨, 주상이 형 등등 이제 만나셨겠네요. 환영 많이 받으실 거예요. '어른' 역할은 이제 저희가 잘할 테니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동현)

 

416 합창단. 왼쪽 화면에 고 박종필 감독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영상으로 흐르고 있다.

30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
 

올려 0 내려 0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 추모영화제 열린다
투쟁하는 장애인의 금관예수이자, 세월호 의인으로 기억될 사람이여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고 박종필 감독, ‘인권사회장’으로
20여 년간 장애·빈민 운동 현장 담아온 다큐멘터리 감독 박종필 씨, 간암으로 별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투쟁하는 장애인의 금관예수이자, 세월호 의인으로 기억될 사람이여 (2017-07-31 20:33:36)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고 박종필 감독, ‘인권사회장’으로 (2017-07-29 12:46:53)
Disabled People News Leader 비마이너 정기 후원하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비마이너 기자의 포부, “사골국 끓여드릴게요”
비마이너는 높은 해상도의 렌즈로 세상을 정확히 보여주죠
비마이너는 현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언론이죠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아서 좋아요”
비마이너는 소수자의 시민권을 옹호하는 언론
우리 사회가 공유할 더 큰 가치를 위해, 비마이너를 읽고 후원합니다
기자에게 비마이너는, ‘나침판’이에요
“소수자를 차별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은 그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거예요”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활동보조 등급심사...'전기 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냐...
유난히 날씨가 맑던 지난 9월의 어느 날, 나는 막내동생과 함...

신선한 충격, 스웨덴의 지원고용과 주거...
박문희 님의 자랑스러운 삶과 투쟁, 모두...
도시, 악취가 아니라 '사람'을 내쫓다
포토그룹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