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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거리 왕초 세계에 맞서 국가의 선정을? : 자력대의 사례
[기획연재 - 부랑인 강제수용의 역사⑤] 부랑아 집단화에 대한 경계
등록일 [ 2017년08월03일 14시22분 ]

 

 

거리에 거지(乞人) 가운데에는 북한 괴뢰집단에서 비밀리에 간첩을 거지로 가장하여 대한민국에 잠입시켜 국가기밀의 조사는 물론 민국을 전복하려는 음모가 진행중이라는 믿을만한 정보가 있어 대통령비서실에서는 문제의 중대성에 비추어 실장 명의로써 사회부장관에게 그들을 엄중단속하여 완전히 그들 불순분자를 숙청하는 동시에 거지를 사회부에서 이재민 구제사업에 사용될 거금중에서 일부를 제공케하여 거지구제사업을 이재민구제사업과 같이 추진케하라는 서한을 작 28일 발송하여 그 귀취가 주목되고 있다. (동아일보, 「거지 중에 간첩 철저단속을 지시」, 1949.09.29)


해방 직후 남한 사회 곳곳에는 살얼음 같은 긴장 상태가 지속됐다. 좌우익 간 무력충돌과 테러가 빈발했고, 공인되지 않은 사적 폭력들이 활개치고 다녔다. 단 몇 년 사이에 ‘민족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빨갱이’로 전환됐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익 권력집단은 남한 민중 내부의 특정 집단을 ‘빨갱이’로 지목하고 이를 처단하기 위한 시도를 자행했다. 대구·경북지역의 인민항쟁 유혈 진압, 제주 4·3학살, 여수·순천 봉기 진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는 대구·경북 인민항쟁, 제주와 여수·순천의 봉기와 같은 직접적인 ‘저항’에 대한 ‘진압’의 형태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일정한 거주지를 갖지 않고 유동하는 인구도 잠재적인 적으로 인식됐다. 이의 대표적인 시도가 1949년 7월 25일 전격 시행된 유숙계(留宿屆)다. 유숙계는 일제시대 전시동원체제 구축을 위해 주민 세포조직으로 활용되었던 애국반(愛國班)을 활용하여, 반 내에 유숙자(留宿者) 또는 반 소속 가구 중 외박자(外泊者)가 있을 경우 소속 반장에게 신고하고 반장은 즉시 이를 관할 파출소에 신고하도록 한 제도이다. 유숙계의 성격은 당시 경찰이 주민을 상대로 선전 표어를 공모한 결과 일등으로 당선된 문장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하에 묻힌 적을 유숙계로 찾어내자.”(경향신문, 1949.08.30)


위 동아일보 기사는 당시 정부가 ‘거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지는 ‘북한 괴뢰집단, 간첩’과 동일선상에서 연상되고 있다. 따라서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분 앞에서 ‘거지’는 기본적으로 의심스러운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단속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해방 직후 정부는 부랑아 문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와 관련해 1949년 9월 29일 동아일보에 실린 “거리의 낙천공 갱생 10월 중에 자취 감춘다”라는 기사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 당국은 엄동기를 앞두고 시내에서 방황하는 5,000명의 걸인 중 소년 1,500명을 보육원과 소년보호기관에 강제수용하고, 도피가 우려되는 악질자는 선감학원과 목포학원에 수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수용 후의 대책은 10인을 단위로 반을 편성하고 작업·공동생활을 하도록 하며 작업에 있어 전부 강제취업을 시킨다고 하는데, 그 작업 내용은 △시내의 청소작업 △각 가정의 폐물수집 △수용소 내에 죽공업, 새끼꼬는 일, 양철일 등 수공업 △지방토목공사, 광산에 취업 등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들은 애초 국가가 선전한 ‘직업보도를 통한 불량소년 갱생’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일들로 보인다. 수공업과 토목공사, 광산 취업에 보낸다는 것은 ‘교육을 통한 선도’라기보다는 단순 육체노동에 동원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청소작업, 폐물수집은 거리의 부랑아들이 ‘넝마주이’라는 이름을 갖고 이미 그동안 해오던 일들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에 하던 넝마줍기 일이 사적인 방식으로 행해졌고 대다수가 ‘왕초’라 불리는 걸인집단의 두목에게 상납하고 일부를 할당받아 생계를 이어온 것이라면, 수용 이후에는 국가의 지배와 감독 하에 이뤄진다는 것뿐이다.


그 때문에 이즈음부터 부랑아들의 집단화 경향을 우려하는 보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 중에서도 1950년 2월 25일 한성일보의 기사 “걸인사회 행상기”는 기자가 직접 한 걸인 조직을 만나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어 더욱 생생하다.


부하거지들이 하루 ... 수거를 해오면 왕초는 이것을 불과 삼십 원 대 매수하여 업자에게 파는데 여기서 왕초의 중간착취가 매일 약 삼천 원에 달하므로 이러한 착취를 매일같이 계속하는 왕초의 일상생활이란 일반 부유층에 못지않을 만하며 그들은 보통 세 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어 주색방탕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 한다. 이같이 물질적으로 풍부한 왕초들은 대개 ○○단에 가입하고 있는 한편 부근 모처를 배경삼고 있는 동시에 소위 ‘어깨’라는 자들을 매수하여 있으므로 혹간 '왕초'의 비행에 불평불만을 말하고자 작당(?)을 하면 그는 삼백여 명에 달하는 왕초들이 뻐친 수사망에 반드시 걸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체포된 후의 사적 고문이란 전율할 정도며 간혹 호소조차 못할 고문을 당하다가 죽이는 일도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일도 있다한다.


그런데 같은 기사의 이어지는 내용에는 위와 같은 왕초의 비행에 반기를 들고 투쟁하고자 만들어진 별도의 조직인 ‘자력대(自力隊)’를 소개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기사에 따르면, 자력대는 원래 종교인이었던 정모 씨가 걸인 문제 해결에 뜻을 품고 스스로 왕초세계에 들어가 그 분위기를 익힌 후 왕초의 세력을 꺾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사가 쓰여진 시점에 자력대에는 25명의 ‘투사가 수용’되어 있고, 거지대장 정 씨 또한 대원과 함께 기거하면서 대원들의 자유를 ‘절대 존중’하고 있어 ‘불평불만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정 씨의 목표는 ‘왕초의 거지를 하로 속히 이 자력대 품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삼천여 명의 전 거지를 흡수’하는 것이다. 또한, 자력대는 자체의 실천계획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30여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기사는 한 대원이 국가의 걸인대책에 대해 바라는 점을 전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한성일보, 「걸인사회 행상기」, 1950.2.25 ⓒ국립중앙도서관
 

기사는 어둠의 세계인 기존 ‘왕초 세계’와 구원의 세계로서 ‘자력대’를 분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그런데 꼼꼼히 따져보면 자력대의 조직 구조상 왕초세계와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기자가 표현한대로 대원들은 ‘수용’되어 있고, 당번이 돌아가며 자력대를 지키고 있으며 ‘일하기 싫으면 먹지 말라’는 원칙에 따라 매일 할당된 작업을 하기 위해 일터로 나선다. 이는 ‘대원들의 자유를 절대 존중’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이다. 또한, 정 씨는 ‘왕초’로 불리지는 않는 대신 ‘거지대장’으로 불린다. 여전히 상하 위계적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와의 연결 여부다. 왕초세계는 반기를 드는 부하거지에게 잔인한 사적 폭력을 행사하는 어둠의 조직으로 그려지지만, 자력대는 국가에 바람직한 걸인대책을 청원하는 투명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또한 ‘자력대(自力隊)’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 것을 강조하며 이를 뒷받침할 원칙(=법)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30여 페이지 분량의 실천계획도 존재한다. 결국 이 대비가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가? 왕초세계는 착취-피착취 관계를 내포한 지하세계의 ‘유사(類似)불법국가’인 것이다. 이 지하세계의 국가를 폐쇄시키고 부모의 선정을 품은 것으로 이미지화 된 ‘합법적 국가’로 걸인들을 포섭해야 한다는 게 이 기사가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에 지하세계로부터 구원되어 국가의 품에 안긴 부랑아의 삶을 극적이고 과장되게 미화하는 작업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아래는 선감학원을 기자가 직접 방문하고 와서 쓴 방문기들인데, 여기서 국가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수용소는 사랑으로 가득한 아동보육기관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긔에 수용되어 있는 고아들은 일찌기 도회지 밤거리 레온의 장막을 병풍삼아 아스팔트를 침대로 삘띙 한 모통에서 하로밤의 단꿈을 맺던 거리의 천사들이다. 세상의 모든 물정도 지나치게 알고 싸늘한 세상 인심도 그릴듯이 알고 있다. 사랑의 고갈을 당한 사람들 어린 골수에 매치도록 원망을 품고 자포자기 사회를 비웃으며 세상을 모두 보는 순정을 이즌 이들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티끌을 때맞처 드나드는 파도에 개끗이 씻고 지금은 씩씩하고 믿음직한 이 나라의 공민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얄구지었던 눈동자도 희망에 빛나며 탄력없던 이마에도 탄력이 보인다. (동아일보, 「갱생의 보금자리 선감학원」, 1948.04.01)


국가는 이렇게 국가권력 아래로 복속시킨 부랑아에게 부모와 같은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는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었다. 실질적으로 그런 포섭이 불가능한 사회적 조건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부랑아를 감화원에 수용해 전쟁동원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방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전시 산업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생산적 산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부랑아는 전국에 만연한 빈곤을 무력을 통한 치안대책으로 해결하려는 국가에 의해 아무 대책 없이 격리, 추방되었다.


‘부랑아의 격증(激增)’이라는 현상에 대한 부정적 문제인식은 일제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해방 직후 대한민국에겐 이 문제를 해소할 국가적 수단과 배출 통로가 전무했다. 그래서 부랑아가 추방·격리된 후 하게 된 일 또한 그저 ‘거리의 사람’이었을 때 하던 ‘넝마줍기’와 다르지 않은 거리청소, 폐물수집, 아니면 단순 육체노동이었다. 공론장에선 이를 소년들이 ‘국가=부모’의 품에 안긴 것으로 선전했지만, 이는 사실상 소년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지워버리기 위한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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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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