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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비밀투표 침해하는 선거법, 헌법소원 청구
활동보조인과 기표소 들어가려다 “2인 동반 필수”라며 제재당한 중증장애인
장애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비밀투표권, 평등권 침해” 선거법 헌법소원 청구
등록일 [ 2017년08월04일 14시49분 ]

중증뇌병변장애인 정명호 씨는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일인 5월 9일 투표를 하기 위해 인천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정 씨는 기표를 위해 활동보조인과 함께 투표장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이를 제지했다. 직원은 투표소에 정 씨와 활동보조인 한 명만 들어가서는 안 되고, 선관위 직원 한 명이 더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과 중앙선관위 업무지침에 근거한 것이라 했다.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 후단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지명한 사람이 없거나, 지명한 사람이 1명(가족 제외)인 경우에는 투표 참관인의 입회하에 투표사무원 중에서 2명이 되도록 선정하여 투표를 보조하도록 안내"(선관위 업무지침)

 

정 씨는 "처음 보는 선관위 직원에게 왜 내 투표 내용을 알려야 하나. 이것은 비밀투표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라며 "활동보조인은 나의 활동을 보조하는 사람으로서 가족과 다르게 볼 이유가 없으므로 활동보조인의 투표 보조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선관위 직원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정 씨는 투표를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명호 씨(오른쪽)가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등은 이것이 장애인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4일 오전 청구서 제출에 앞서 헌법재판소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변호사는 문제가 된 조항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침해, 평등권 침해, 사생활의 자유 침해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선거법과 업무지침은 두 명이 함께 들어가야지만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진 것 같다"라며 "그러나 당사자 정 씨는 기표가 자신의 의사에 맞지 않게 되었을 때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본인도 활동보조인만 동행하길 원하는 뜻을 분명히 전했음에도 선관위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장애인의 결정권은 도외시하고 행정편의만 생각한 법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러한 법률은 가족으로부터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족의 경우에는 한 명만 동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가족 이외에는 두 명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에 덧붙여 "가족이라고 해서 꼭 본인 의사에 부합하게 기표하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지적했다.

 

이러한 법률은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 변호사는 "비밀투표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것인데, 생판 처음 보는 선관위 직원에게 자기가 누구에게 투표하는지 보여야 한다는 점은 엄연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투표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사전에 활동보조인에게 준수사항을 다시 한번 안내하고, 투표 후에 장애인 본인 의사대로 기표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행정 편의를 위해 장애인의 비밀투표와 자기 결정은 무시될 수도 있다는 발상의 법률을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김성연 장추련 활동가는 "두 명 이상의 참관을 요구하는 것이 굉장히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에 따르면, 한 시각장애인은 활동보조인과 동행해 투표소를 찾았으나 선관위 측에서 활동보조인의 출입을 막아 선관위 직원 한 명이 동행해 기표를 보조했다. 또 다른 시각장애인은 점자 투표용지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보조가 필요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선관위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저 사람 따라 들어가라"라고 반복해서 명령하는 것을 들었다.

 

김 활동가는 "이러한 자의적 적용 방식은 장애인의 투표권을 국가가 얼마나 허술하게 생각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라며 "장애인의 비밀투표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생각은 않은 채 '장애인은 혼자 투표 못 하니까, 혼자 판단 못 하니까'라는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사자인 정명호 씨는 "헌법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누구든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라며 "하지만 장애인은 참정권에서부터 아직도 차별받고 있다.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는 참정권에서의 장애인 차별 문제가 이번 헌법 소원을 계기로 어서 해결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선거법과 선관위 지침은 선거부정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가족이 아닌 보조인 1인을 통해 기표행위를 하려는 모든 장애인의 선거권을 박탈한' 반헌법적인 중차대한 문제"라며 "장애인의 결정권이 다시는 침해받지 않을 수 있도록, 헌법의 취지가 올바로 반영되는 판단을 내리길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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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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