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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하는 좌충우돌 일상,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시설에서는 언제까지고 아이…더디지만 확실히, 어른이 되고 있어요”
18년만에 시설에서 나와 사는 모습 다큐로 찍는 혜영, 혜정 자매를 만나다
등록일 [ 2017년08월07일 12시15분 ]

스무 살이 되고도 십 년의 세월 동안, '어른'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있다. 그의 사회적 성장은 열 세 살 때부터 억압되었다. 하지만 두 달 전부터, 그는 억압되었던 사회적 성장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고기를 썰어보고, 메이크업을 하고, 국내외 여행을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무엇보다, 개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18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의 벽을 가운데 두고 있던 자매가 있다. 장혜영 씨는 장혜정 씨의 둘째 언니이다. 무쌍히 변화하고 성장해온 자신과 달리,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 혜정이 시설에서 언제까지고 ‘어린애’로 남아있는 모습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혜영은 시설 밖에서 혜정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착실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자신들의 일상이 사회에 꼭 필요한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혜정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텀블벅' 페이지를 개설했다. 텀블벅은 프로젝트 온라인 모금 페이지로, 원하는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밀어’줄 수 있다. 목표액을 달성하면 모금된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출금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의 목표액은 5천만 원. 마감일이 9일 남은 현재, 87%가 모였다.

 

'어른이 되면' 티저 포스터. ©정혜영
 

혜정이 시설에 들어가기 전, 자매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혜영은 오전에는 혜정의 교실에 함께 있다가 혜정의 수업이 끝나면 자기 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긴 시간 돌봄이 혜영의 몫이었다. 하지만 혜영이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면서, 혜정은 시설로 보내졌다.

 

"혜정이 시설에 처음 들어가고 2주 정도를 적응 기간이라고 연락도 못 하게 했어요. 저는 그때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혜정이 얼굴 보고 싶다고,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많이 울었어요. 수녀님들이 괴물로 나오는 꿈까지 꿨어요."

 

처음 시설에 들어갔을 때 혜정은 열세 살이었다. 그곳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시설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거주인들은 종종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죽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혜정은 여기서 죽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언니들의 죽음은 혜정의 곁을 맴돌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혜정은 늘 집 이야기를 했고, 틈만 나면 산꼭대기 시설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에 앉아 집 가는 버스를, 혹은 버스에서 내려 자신을 집으로 데려갈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 번은 아주 멀리, 시설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간 적이 있었다. 시설이 발칵 뒤집혔다. 길거리를 배회하던 혜정을 경찰이 발견해 가까스로 찾을 수 있었다.

 

"혜정이 늘 말하던 이름이 있었거든요. 권지현(가명)이라고. 저는 처음에 그게 거주인 친구거나 어디서 들은 이름일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텀블벅으로 메시지가 왔더라고요. 자기를 '권지현'이라고 소개했어요. 혜정이 처음 시설에 들어갔을 때 담당했던 교사였던 거예요. 너무 놀랐죠, 실존 인물이었어? 하고. 하하. 혜정이 집에 너무 오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그분이 해주셨어요."

 

열세 살 혜정을 만났을 때 권지현은 갓 스무 살이었다. 이제 서른이 된 혜정을 시설 밖에서 다시 만난 지현은 혜영에게 혜정이 시설에 적응하지 못했던 모습, 그러나 혜정을 비롯한 거주인들에게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수녀들은(시설은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지현에게 '권위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엄마라고 부르게 해라' 등을 교육했다. 하지만 시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진력이 난 지현은 혜정에게 "나 엄마 아니고 언니야"라는 말을 남기고 시설을 떠났다.

 

지현이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기어이 시설 밖으로 새어 나왔다. 문제를 느낀 직원은 지현뿐만이 아니었다. 대변을 많이 보는 장애인의 식사량을 턱없이 줄이거나 행동이 거칠다고 여겨지는 거주인의 소매를 봉하고 두 손을 묶기도 했다. 남녀 장애아동을 한꺼번에 목욕시키기도 했고, 남자 교사가 여성 거주인의 생리대를 가는 일도 있었다.

 

"혜정을 그냥 시설에서 데리고 나오면 다신 안 볼 곳이긴 했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어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혜정이 어딜 가든 같은 문제가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족 대표도 하고, 장애인 탈시설 운동 단체와도 결합하면서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를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해당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문제를 제기했던 직원들은 해고되었고, 시설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은 채 건재했다. 화살은 혜영에게 돌아왔다. 싸우는 과정에서 ‘시설 파괴자’라고 비난받았던 혜영은 ‘문제 일으키는 시끄러운 사람’이 되었고 갈 곳 없는 혜정은 그 시설에 3년을 더 머물러야 했다.

 

“대안도 없으면서 문제를 건드려서, 혜정은 혜정대로 저는 저대로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는 생각에 너무 자괴감 들었어요. 그래서 방황도 했고요. 외국에 나가서 그냥 한국에 들어오지 말아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혜정 문제를 덮고 모른 척 한 채로 사는 것은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시설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혜정을 인생에서 없는 존재처럼 여기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시설이 어떤 곳인지 너무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짜잔~” 혜정이 펼쳐 든 스케치북에는 그림이 가득했다. 혜정이 좋아하는 유튜버나 디즈니 캐릭터, 티브이에서 봤던 인상적인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시설에서 나온 후 한 달여간 그린 그림인지 물었더니 지난 이틀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틀간 24면 스케치북을 앞뒤로 꽉꽉 채울 만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혜정의 왕성한 창작활동은 시설 안에서는 좀처럼 허락되지 못했다.

 

“수녀님, 그림 그린 거 뺏들어 버렸어요. 던졌어요. (그림) 다시 주세요.” 수녀님이 왜 그랬냐고 묻자 혜정은 “기도하니깐요. 기도하는데 그림 그려서 뺏들어 버렸어요. 다시 주세요.”라며 울상을 지었다.

 

“혜정이는 자기표현을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노래도 많이 부르고, 이야기도 많이 해요. 이런 혜정의 성격 때문에 시설 안에서 갈등이 많았나 봐요. 다른 거주인분들은 혜정에게 시끄럽다고 화내고, 저한테 ‘데려가라’고 소리 지르는 게 수화기 너머로 들린 적도 있었어요.”

 

혜정에게 시설에서의 삶을 물었다. “그때는 짜증 났어요. 왜 짜증이야! 왜 때려! 그럼 또 다른 언니가 짜증 내고, 또 다른 언니가 고집부리고. 내꺼야! 내놔! 하고 싸우고요.” 갈등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혜영은 동생의 탈시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시설에서 혜정은 언제까지고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설은 마음만 먹는다고 뚝딱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오려면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했다. 시설 문제가 터지고도 3년 동안, 혜정은 그 시설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다만, ‘외박’은 할 수 있었다. 혜영은 혜정을 자주 시설 밖에서 재웠다. 자매는 함께 미용실에 가고, 궁 나들이를 하고, 집에서 설날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혜영은 혜정과 함께한 일상의 조각들을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혜영이 운영하는 ‘생각많은 둘째 언니’ 채널은 구독자가 1만4천 명이 넘는다. 혜정이 시설 밖에서 지내는 일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그가 시설 밖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7월, 혜영과 혜정은 시설 밖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혜영이 살고 있던 원룸에서 시작했다. 그랬다가 각각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빌라로 집을 옮겼다. 시설에서 나온 후, 혜정에게 기호와 욕구가 생겼다. 처음에는 ‘내 공간’에 대한 감각이 생겼고, 그다음에는 인형, 옷, 장신구,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에 대한 선호가 생겼다.

 

“그 전에는 혜정에게 ‘성격’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이 옅었어요. 시설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없잖아요. 전에는 제가 혜정을 씻겨줬는데, 시설 나오고 한 1, 2주 됐을 땐가? ‘언니 나 혼자 씻을래’ 하는 거예요. 제가 먼저 물은 것도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시설은 ‘자기 방’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걱정을 했죠. 우리의 집을 혜정이 또 다른 시설로 여기는 거 아닐까. 그런데 자기 방, 자기 침대, 자기 인형이 생기니까 이제는 저도 방에 허락받고 들어가야 해요. 얼마나 철저한지 침대에 앉지도 못하게 하는걸요. 하하.”

 

과연 혜정은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너 한 모금, 나 한 모금’이라고 해봐요.” “정응콩(혜정이 좋아하는 유튜버) 노래 틀어주세요.” “커피 주세요.” “언니, 세인트 뜻이 뭐야?” “내 사진 주세요.” 좋아하는 것도 뚜렷했다. “언니랑 일본 갔어요. 옷 샀어요. 기모노랑, 사과랑 머리띠도요. 내가 골랐어요. 목걸이는 수미 언니가 사줬어요. 내가 골랐어요. 마음에 들어요.”

 

혜정은 시설에서 나온 후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리스트를 착실히 채워가고 있다. 모두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옷을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면서, 온갖 노래를 듣고 화장을 해보면서. 그리고 목록은 지금도 꾸준히 새로워지고 있다. 이는 온전히 혜정의 몫이다. 아직도 그가 경험해야 할 ‘일상’이 한참 남았다.

 

“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희 이야기를 찍고 싶다고. 그런데 이틀 찍다가 제가 그만하겠다고 했어요. 시설에서 나온 두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걸 했는지, 얼마나 다채로운 경험을 했는지 같은 걸 궁금해 하더군요. 우린 밥 먹는 것부터 스펙타클한 일인데요!”

 

“뭔가 엄청난 대안이 있는 것처럼,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당장 저희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걸요. 다만,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도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우리가 존재할 때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어요.”

 

혜영은 믿고 있다. 발달장애인 동생이 ‘시설 바깥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이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나아가‘이런 프로젝트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욕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텀블벅 마감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 목표액이 잘 안 모이니까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이제는 저 이 작업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이 다큐멘터리, 꼭 보고 싶어요. 보여드리고 싶고요.”

 

혜영은 다큐멘터리를 꼭 만들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텀블벅 성공 기원 라이브: 우리의 이야기도 세상에 필요해’를 기획하고 있다. 텀블벅 모금 마감날인 8월 15일까지 6일간 이야기 손님들과 함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한다.

 

“펀딩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진심을 다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분들께 프로젝트를 알려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저희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으면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저희 이야기가 가 닿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른이 되면' 크라우드펀딩 페이지에 혜영이 작성한 게시물 중)”

 

우리에게는 분명 혜영과 혜정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이야기가 공개되고, 드러나면 우리는 더 많은 ‘혜정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일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래서 어쩐지 어색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이 있는 일상의 모습은 당신의 생각과 달리 절망적이지 않다. 여기에는 두려워할 것도 없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 수 없다'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우악스럽게 들려오는 이 시대에,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텀블벅 주소: https://tumblbug.com/grown_up

*유튜브 '생각많은 둘째언니' 페이지: https://www.youtube.com/channel/UCGdB-lgTS2sOhJIxgP550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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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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