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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강도 소년의 정신감정 보고서
[부랑인 강제수용의 역사⑥] 권순영 판사의 ‘소년보호’와 정신위생학
등록일 [ 2017년08월09일 18시45분 ]

 

1958년 12월 7일 오후 10시경, 홍〇〇 군(가명, 20세, 사건 당시 고등학생)은 종로3가 노상에서 지나가던 '시발택시'에 올랐다. 택시가 인적이 드문 신문로1가 어느 골목에 이르자 홍군은 운전기사에게 미제단도를 겨누면서 "나는 전과2범이다. 돈을 주면 그뿐이다"하며 협박하고, 현금 1만1천환을 강탈했다.
홍군은 또 같은 달 21일 오후 10시 12분경, 그리고 이듬해 1월 29일 오후 10시 50분경 종로구 세종로와 서린동에서 시발택시에 올라 차를 으슥한 골목으로 이끈 뒤, 운전기사에게 모의권총을 겨누면서 협박해 각각 현금 1만2천환을 강탈했다.
1959년 2월 2일 오후 11시10분경, 동대문구 예지동 인근에서 시발택시에 오른 홍군은 전과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빼앗으려 시도했으나, 때마침 대기중이던 경관에게 검거되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이 택시강도 사건에 관한 기록이 경찰의 조서나 재판의 판결문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홍군이 검거되고 바로 1년 후 법학 전문지 <저스티스>에 ‘소년범죄의 사례연구’라는 글을 통해 소개되었다. 글쓴이는 서울지방법원 소년부 판사 권순영이었다. 권순영은 그냥 평범한 판사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의 근대적 ‘소년보호이념’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꼽히는 그의 ‘업적’은 1958년 3월 1일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등과 함께 서울아동상담소를 설립한 일이다.


서울아동상담소가 하는 일은 소위 ‘불량소년’들의 범죄 또는 우범 행위의 원인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이른바 ‘문제아동’이 오면 전문사회사업가가 아동의 생육사를 조사하고, 심리학자의 성격검사·지능검사, 정신과 전문의의 정신의학적 조사 등을 거친 후 사건평의회(case conference)를 통해 최종 진단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작업은, 소년범죄는 성년범죄 사건과 달리 죄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소년범죄의 원인인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방점을 둬야 한다는 권순영 자신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홍군의 택시강도 범행을 대상으로 열린 최초의 '소년범죄평가회' 기사. 1959년 4월 19일 ⓒ동아일보

홍군의 사례는 1959년 4월 17일 서울아동상담소에서 처음으로 열린 ‘소년범죄평가회’에서 다뤄졌다. 평가회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이렇다. 권순영을 포함해, 대한정신의학회 부회장 유석진, 성대 강사 오석환, 의사 김현우, 서울대 조교수 하상락, 이대 강사 박보희, 개별사회사업가 최복림, 고대 교수 성백선, 이대 강사 정희경 등이다(동아일보, 1959.04.19). 그야말로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 사회사업학가, 법률가 등 당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집결해 이 ‘소년범죄’에 대한 대해부에 나섰고, 권순영은 그 논의의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한 것이다. 이 글에 소개된 홍군의 생육사는 아래와 같다.

 

고향은 황해도이며, 1·4후퇴 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하여 경북 풍기로 피난을 와서 풍기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아버지는 재혼했으나 현재 행방불명이다. 풍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K여선생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K여선생이 상경하자 그도 중학교를 마친 후 상경해 K여선생의 도움을 받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생활비가 부족해 학교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고학했으며, 게다가 K여선생의 결혼으로 그를 돌봐주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고3 때 한 가정의 가정교사로 들어갔지만, 그 집 아들이 중학교 입학에 실패해 쫓겨나고 하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활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학교에서는 늘 평균 90이상이던 성적이 고등학교에 와서는 보통 이하로 떨어졌다.
형제는 총 5명으로 형(24세, 현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중), 본인, 누이(17세, 남의 집 식모), 동생(13세, 고아원에 있음), 막내 동생(아버지 따라 행방불명)이 있다.


홍군의 생육사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혼란 상황에 놓여 있던 1950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난, 가족과의 이별, 상경과 고학생활이라는 흐름은 50년대를 살아가던 기층 민중의 전형적인 라이프 스토리라 할 수 있다. 꼭 홍군과 같은 불행한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시골의 궁박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가난한 농촌 청년들이 하나 둘씩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에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그의 택시강도 범행은 고학생활의 막막함 앞에서 길을 잃고 저지른 최후의 절규와도 같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강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기에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범행의 배경에 절망적인 가난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권순영의 사례분석은 이런 사회적인 가난의 현실에 대한 고려를 가뿐히 건너뛰고 바로 심리학적 조사, 정신의학적 조사로 넘어간다.

 

심리학적 조사
지능지수 122. 일반성격검사 결과, 지배성이 낮고 책임감이 강하며 정서적 안정도와 사회성 등은 보통보다 낮다.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 결과, 추상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고, 정서장애 및 객관적인 현실 파악능력 결핍이 보인다. 작업검사 결과, 분열적 성격이 나타난다.


정신의학적 조사
친구가 적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공상을 많이 하며, 기분이 나쁘면 입을 다물어버린다. 일기 내용을 분석한 결과, passive aggressive(수동 공격적)인 면과 passive dependency(수동적 의뢰심)이 순환적으로 작용. 사회에 대한 반발심과 적대감 있다.
1차 범행 직전 돈이 없어 고민하던 나머지 최후로 장로교회 선교사에게 사동으로 채용해주기를 간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오던 길에 우연히 호주머니에 잭 나이프가 있었고, 신문에서 택시강도 기사를 읽었다. 2차 범행때 절취한 돈으로 방을 얻어 나가고 6천환이 남았으나 그것으론 등록금이 모자라 재차 범행을 했다. 이상으로 볼 때 홍군이 범행을 한데에는 경제적 요구 이상의 Attention getting에 대한 motive(관심 받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정교사로 있을 때에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을 것이나 그에게 지나친 의뢰심이 있고,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데서 오는 주인집에 대한 불만, 적개심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권순영은 다음과 같은 최종 진단을 내린다. “홍군에게 있어 그 환경이 불우했던 것도 사실이나 홍군을 범행으로 이끈 주요인은 Neurotic Character(신경질적인 성격)이며 거듭하여 닥쳐온 환경적인 불행은 이러한 성격에 dynamic life experience(역동생활경험)을 주어 더욱 그 Neurotic Character를 조장시켰던 것이다.” 결국 그의 생육사의 불행한 경험은 부차적인 요인으로 밀려나고, 심리학/정신의학에 기반한 ‘과학적 도구’들을 통해 밝혀낸 그의 선천적인 ‘신경질적 성격’이 범행의 원인이었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질병’은 처벌로서 교정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최종 사후조치로서 홍군을 동생이 살고 있는 고아원에 보내고 지속적인 보호관찰을 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는 일견 처벌보다는 교정 및 보호에 중점을 두는, 상대적으로 인도적인 조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범행의 원인을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결함에서 찾는 이런 분석의 문제를 사소하게 봐서는 안 된다. 권순영은 다른 여러 소년범죄 사례 분석 글(「소년범죄방지대책으로서의 아동상담소의 역할」, 1958; 「소년범죄사례 - 빅토리단」, 1960; 「한국의 소년범죄」, 1960)에서도 소년의 심리적/정신적 결함의 요인을 다른 무엇보다 강조하지만, 이들 요인이 경제적 궁핍함 같은 외적 요인보다 왜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범행의 원인으로 심리적/정신적 요인을 드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을 드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명백한 인과관계를 밝힌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례들 속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특성들을 귀납적으로 추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 범행에 대해서만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개별적으로 한 사람의 생애사를 들춰내고 그들의 특성을 정신의학이라는 형식 속에 분류하고 판별하는 작업은, 달리 말하자면 ‘범죄’가 아니라 ‘존재’를 처벌하는 것이다. 범죄는 법을 위반하지만 존재는 법 위반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홍군의 정신감정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 존재를 해부하고 분류하는 과정 속에서 존재의 ‘성향’은 곧 ‘우범 소질’로 개념화된다. 즉, 그는 범행 이전에 ‘신경질적 성격’이라는 범행의 가능성을 이미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범 소질’이 위반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한 것처럼 이것이 위반하는 것은 다만 “‘심리적 미숙성’, ‘구조화되지 않은 인격’, ‘깊은 불균형’ 등의 최적 발달의 발달 단계” 또는 “도덕적 평가, 겸손함, 성실함”과 같은 “윤리적 규칙”이다. 이러한 판별 작업은 결국 “한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이미 얼마나 자신의 범죄와 닮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일련의 심층적 불법성과 불법이 아닌 나쁜 행동들을 적발하고, 또 그것을 범죄 그 자체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그것들 하나하나를 모으는 유추적인 방식”에 불과한 것이다(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33-37쪽).


권순영의 이런 지적 시도 속에서 1950년대에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도는 가난한 소년들은 그저 가난해서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풍속을 해치는 ‘불량’하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굳어진다. 이로 인해 소년들은 당장의 무거운 형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집단적으로 도시의 삶으로부터 ‘추방’되어야 할 존재로 각인될 운명에 놓인다. 물론 이는 어느 고집스러운 소년사건 전담 판사만의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홍군 사건에 대한 ‘소년범죄평가회’에 참여했던 정신의학 전문의 오석환은 감정·정서 장애의 문제를 “국가적인 문제”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범죄사실이나 자살·알콜과 몰핀 중독자·불량아·깡패 등은 정신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오래전부터 정신적으로나 감정·정서에 장애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다만 그것이 동기가 되어 잠재되어 있던 그 변질적인 요소가 밖으로 터져나온 것 (…)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 환자의 수도 통계학적인 정확한 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 노상에서 방황하는 정신이상자를 볼 수 있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 ... (동아일보, 「정신위생이란 무엇인가」, 1957.11.26)


대전과 동란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청소년들은 학습 교양 정조의 훈도 등 자기완성에 중요한 기본훈련을 받아야 할 초등학교 중학교 시대에 삭막한 공기 속에서 비판적 자율적인 지성도 윤리적 감성도 문화적의식도 아무 준비도 없이 사회와 접하게 되었으며 사회는 그 자체가 빈궁에 허덕이고 모든 도덕 윤리 질서가 혼란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단지 살기 위해 허덕이고만 있어 심신 공히 피폐된 상태에서 부모도 교육자도 선배도 모두가 권위가 없어진 이 상태이니 (…) 또 우리나라의 수백년래의 전통적인 가족중심적 또 연로자를 존경하는 인습이 자유주의 사상의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도덕윤리 원칙을 준봉하는데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데... (동아일보, 「정신위생과 소년범죄 上」, 1958.02.22)


오석환의 주장은 사실 ‘정신의학’이라는 과학의 주장이라기보다는 다소 고루한 도덕적 고담준론의 냄새가 풍긴다. 더 나아가서 보면, 그들이 말하는 ‘정신장애’의 징후는 의학적 현상으로 정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덕 윤리 질서’에 위배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 임의적으로 붙여질 가능성을 내포한 딱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학문의 명칭이 다름 아닌 ‘정신위생(mental hygiene)’인 것이다. 정신위생은 기존 사회의 안전과 질서 및 건전한 문화 등을 위협할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개인적 속성, 성격, 정서 상태, 가정문화를 ‘청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적 속성, 성격, 정서 상태, 가정문화를 담지한 자들은 누구일까? 당연하게도 집이 없고 가족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연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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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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