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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쟁이·성병환자로 살 것인가, 소년원에 갈 것인가’...영화 ‘십대의 반항’
[부랑인 강제수용의 역사⑦] 영화 시나리오 속에 비친 1950년대 부랑아의 모습
등록일 [ 2017년08월14일 17시42분 ]

 

“날치기, 빵쟁이, 뚜룩잽이…. 선량한 시민들이 이 애들 때문에 입는 피해를 애들은 자각하지 못하지요. 그들은 아까운 청춘을 낭비하고 귀중한 그들 자신의 인생을 쓰리당하고 있다구 하겠지오. 선생, 현재 당신은, 아니 우리는 시계보다 더 귀중한 것을 잃고 있습네다.”


오영진이 시나리오를 쓰고 김기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1959년작 영화 <십대의 반항>은 이 당시 부랑아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안성기, 엄앵란 등 지금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배우들이 아역으로 출연했던 작품으로, 1960년 문교부 우수국산영화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안성기는 제4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당시 필름 영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오영진의 시나리오 전문이 <사상계> 1959년 5월, 6월호에 그대로 실려 있어 영화의 내용을 활자로나마 엿볼 수 있다. (<사상계>에 실린 시나리오와 실제 영화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한 신사가 서울 시내에서 버스를 타려다 부랑아들의 소매치기에 시계를 도둑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시계이기 다행이지 더 귀중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죠?”라며 신사를 걱정해주듯 말을 꺼내더니, 위에 인용한 대사처럼 짐짓 진지한 투로 부랑아들의 ‘가여운 인생’을 개탄한다. 이미 그의 눈에 부랑아의 삶은 범죄에 찌들어버린 ‘쓰라이’ 인생에 불과한 것이었다. 경찰의 시선과 다름없이, 이 작품 곳곳에서 부랑아들이 살고 있는 곳은 “판자 집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굴. 밤에는 여기가 사창굴이 될 것”이라며 비하적으로 묘사된다.

 

영화 <십대의 반항>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의 주인공 ‘길남’은 서울역, 남대문, 명동 근처를 배회하며 구걸, 소매치기 등으로 먹고 사는 부랑아 패거리의 대장이다. 그는 여러 명의 ‘똘만이’들과 함께 명동의 한 공사장 구석에서 공동생활을 하는데, 때때로 경찰의 부랑아 단속에 걸려 소년원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속차량에 실려 소년원에 들어가면서도 농이나 주고받고 함께 단속에 걸린 여자 아이를 희롱하는 등 무지하고 철없는 군상으로 그려진다.


“추럭 위의 똘만이들은 천하태평이다. 깔깔대며 서로 농질까지 한다.
똘만이 하나, 옆에 쭈구리고 있는 16, 7세 소년의 머리에서 때가 께적께적 낀 전투모를 벗겨 내던지며
- 똘만이 「야…쇼리(계집애)다…쇼리다!」
사내 옷을 입고 머리도 짧게 깎았지만 틀림없는 계집애이다. 정체가 탄로된 계집애는 모자를 도루 뺏으려 애들 틈을 갈팡질팡한다.
- 똘만이들 「쇼리다! 쇼리다!」
떠들며 소녀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려고 한다.”


길남이 소년원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 전에는 동료 부랑아들이 왕초 ‘권가’에게 상납해 그 대가로 길남을 빼낼 수 있었다. 성인인 권가가 소년원에 가서 길남의 가족인 것처럼 속이고 길남을 빼내 온 것이다. 권가는 사실상 깡패나 다름없었으며, 아편쟁이였다. 이번에도 동료 부랑아 ‘억쇠’가 앞장서 길남을 소년원에서 빼 줄 것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권가 밑에서 아편 심부름을 한다.


그러나 길남은 소년원에 들어온 지 며칠 만에 근선(소년원 의무실 보조), 필녀(단속 트럭에서 소년들에게 희롱 당하던 여자아이)와 함께 소년원 담을 넘어 탈출한다. 이후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근선은 길남과 어울리면서 도벽(盜癖)에 물들게 되고, 필녀는 권가에게 끌려가 어디론가 팔려갈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억쇠는 이미 권가 밑에서 심각한 아편중독자가 되어버린 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근선은 전쟁 통에 아들을 잃고 자식을 찾아 헤매던 한 귀부인의 핸드백을 절도하게 된다. 길남과 근선은 핸드백 속 고가의 물품들을 팔아 옷을 사 입고 군것질 등을 한다. 그런데 귀부인은 근선이 자신이 잃어버린 아들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게 되고, 경찰에 신고해 근선을 찾아 헤맨다. 귀부인이 근선을 찾아주는 사람에겐 넉넉히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알게 된 억쇠는 권가와 짜고 근선을 빼돌려 부인으로부터 사례금을 받아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억쇠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 여긴 권가는 난투 끝에 억쇠를 죽인다.


억쇠가 자신을 소년원에서 빼내오려다 아편쟁이가 되고 권가에게 죽임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길남은 권가에게 복수를 시도하고 결국 권가도 필녀가 찌른 칼에 맞아 죽는다. 이 일을 겪고 회의를 느낀 길남은 결국 근선을 귀부인에게 보내고 귀부인은 근선을 양자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래는 근선을 떠나보내고 돌아서면서 길남의 감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길남의 본 눈으로--환히 빛나는 방안. 부유하고 따뜻한 가정, 안방. 근선이는 오늘부터 새 옷을 바꾸어 입고, 이 댁 도련님이 될 것이다.
길남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솟는다. 그것을 씻으려고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축대 위, 가시망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길남. 드디어 자기의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 길남 「어머니!」
하고 부른다. (...)
그의 귀에 들리는 환성(幻聲).
- 원장의 소리 「일생을 뚜룩잽이 빵쟁이루 신셀 망칠 생각이냐?」
- 원장의 소리 「너 같은 악질은 그대루 형무소루 넘길거지만…….」 (...)
- 박 의사의 소리 「나두 소년원에서 자랐지만 결국은 이만한 데두 없거든!」”


그렇게 환성에 이끌려 걸어가던 길남은 결국 다시 소년원 앞에 다다르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시나리오에는 명확한 대비구도가 그려진다. 한편에는 권가를 중심으로 그에 의해 오염된 악질 부랑아들(억쇠, 필녀)이 있다. 그들의 거리에서의 삶은 좀도둑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아편쟁이, 성병환자로 전락했다. 그것의 결말은 살인과 죽음이다. 다른 한편에는 운 좋게 양부모를 만나게 된 근선이 있다. 그것은 아주 모범적인 국내입양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사이에는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인 길남이 있다. 그가 근선처럼 양부모를 만나길 기다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지만, 억쇠, 필녀의 길을 따라가기는 너무 쉬운 조건이었다. 두 길 사이의 갈등 속에서 길남은 결국 소년원의 품에 안긴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다. 영화의 구도를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 표과 같다.

 


 

실제로 거리 부랑아들의 삶이 종국에는 권가, 억쇠, 필녀의 길로 빠질 위험성이 많았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사와 묘사 등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해 이들의 비정상성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인생 결말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거리에 넘쳐나는 수만 명의 부랑아들에게 양가입양은 물론이고 소년원에서의 삶이 성공적인 삶으로 나아가길 기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같았다.


그러나 <십대의 반항>은 국가가 이들의 생존에 대한 어떤 보장도 제공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아니 선택하지 못하고) 사회의 주변부에 남아있는 부랑아들을 위와 같은 대비구도를 통해 도덕적·담론적으로 처벌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결국 영화는 부랑아들이 악의 구렁텅이를 헤매다 인생을 ‘쓰라이’로 마감할 것인지, 소년원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돌봄/통제’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시도를 통해 부랑아들은 새롭게 건설될 대한민국의 ‘선량하고 건전한’ 국민성에 위배되는 이질적인 존재로 형상화된다. 대한민국의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1차적 적(敵)은 무엇보다 ‘한반도 북녘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북한과 이에 동조하는 ‘빨갱이’로 인식되었지만, 사회 내적으로도 선량한 국민성과 건전한 풍속을 해치는 내부의 ‘잠재적 적’ 또한 끊임없이 생산되었다. 부랑아는 ‘잠재적 적’으로 지목된 집단의 가장 대표적인 형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랑아, 더 나아가서는 도시하층민 일반에 대한 이와 같은 혐오의 시선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이들을 일반 사회로부터 추방해야 한다는 중산층적 욕망이 급격하게 폭발하게 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1960년 4월 혁명이었다.


(다음 연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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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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