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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희 님의 자랑스러운 삶과 투쟁, 모두가 기억해주길
[기고] 장애부모운동가 박문희 님을 추모하며
등록일 [ 2017년08월29일 19시25분 ]

장애부모운동가 故 박문희 님.
 

“저는 제 자리에서, 제가 해야 될 일이라면 열심히 할 겁니다. 앞도 뒤도 없어요. 열심히 하다보면 변하겠죠. 우리 아이를 보는 세상이 변할 날 있겠죠. 이번에 우리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따낸 것은 종이쪽지에 불과해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새로운 출발인지도 몰라요. 만약 내년에 이들이 우리와 약속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거니까요.”


13년 전, 장애자녀부모 박문희 님이 난생 처음 삭발농성을 한 후 언론에 했던 이야기. 나는 목이 메여 이 말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2달 만에 벌써 4번째 장례식에 무뎌진 탓인지, 나는 박문희님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추모제 사회를 준비하면서도, 추모제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추모제를 시작하며, 박문희님의 삶을 소개하려 준비했던 저 인터뷰 글을 읽으며,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자녀를 학교를 보내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던 장애자녀부모들의 삶. 세상을 떠나기 전날 까지도 장애인생활시설 인권조사를 다녀왔던 박문희 님의 삶이, 솔직히 너무나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에 콧물까지 마구 흘러나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비장애 딸을 키우고 있던 박문희 님. 아들이 태어나 장애판정을 받은 이후 오로지 아들만 생각하며 밤 낮 안 가리고 뛰어다녔다. 당연히 딸의 서운함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장애인부모단체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을 땐 딸이 고3이었다. 이때도 박문희 님은 아침에 나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딸에게 미안함이 너무나 컸던 그 때, 박문희님은 우연히 딸이 인터넷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장애인교육차별 철폐하라며 열었던 기자회견 사진. 사진의 제목은 '자랑스런 우리엄마'였다. 박문희 님은 이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문희 님은 장애인생활시설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이 처음 방문했던 시설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곳에서 박문희 님이 충격을 받았던 건 시설의 어마어마한 인권침해상황이 아닌 생활인들의 멍한 눈빛이었다. 어떤 바람도 욕구도 읽을 수 없었던 그 멍한 눈빛. 박문희 님은 한 장애인에게 돈을 쥐어주었다고 했다. "어디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드세요."라며. 그러나 그 장애인은 화를 내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은 채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박문희 님을 바라봤다고 했다. 자기 마음대로 돈을 써보지 못한 장애인에게 그 돈은 길바닥 돌맹이와 똑같이 보였을 거라고.


그래서 박문희 님은 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인 내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능력이 없어져서 보호해줄 수 없어지면 시설에라도 보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설을 알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장애인생활시설은 못 보낸다.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밥 먹고 잠만 자면 즐겁고 행복한 삶인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는 삶’이다. 장애인들의 진정 행복한 삶은 무엇인지, 비장애인들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한 삶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박문희님이 살아온 삶]


1958년생
2002년 ~ 2011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부모동료상담원
2004년 ~ 2007년 서울장애인통합부모회 회장
2004년 ~ 2007년 장애인참교육부모회 정책국장
2006년 ~ 2012년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운영위원회 운영위원
2006년 ~ 2008년 강동 예산분석 네트워크 대표
2007년 ~ 2008년 사)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회장
2007년 ~ 2009년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
2009년 ~ 2012년 사)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부설 가족지원센터장
2012년 ~ 인권강사활동
2013년 ~ 장애와 인권 ‘바통’ 활동가
2013 ~ 2016년 한국보완대체의사소통학회 상임이사


박문희 님과 같은 장애자녀부모들의 투쟁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한 편 올린다. 2006년, 장호경감독이 제작한 다큐. 장애인교육권 운동으로 시작해 자녀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한 박문희님과 동료 부모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 영상보기 : https://goo.gl/WZtc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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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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