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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영화관람권 소송, ‘정당한 편의제공 위반 vs 영화상영업자 몫 아냐’ 팽팽히 맞서
“비장애인처럼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곳에서 영화 보고 싶어”
차별구제소송 제기했지만 1년 반 지나도록 ‘제자리걸음’
등록일 [ 2017년08월29일 21시44분 ]
시·청각장애인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만 가능한’ 영화 관람에 대해 지난해 2월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1년 6개월, 그동안 1심 재판부만 두 번이 바뀌면서 소송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라 2015년 4월 11일부터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상영관’은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청각장애인 5명은 화면해설과 자막, FM보청기기를 제공하라고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측에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CGV 등 피고 측은 “자막과 화면해설은 영화제작업자나 배급업자가 해야 할 몫이지 영화 상영업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법정 동관 565호에선 이러한 원고와 피고 측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과거 장애인 영화관람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영화관람권 보장을 촉구하는 모습.
- 시·청각장애인, 비장애인처럼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곳에서 영화 보고 싶어
 
현재 시·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공간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없다. 시각장애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면을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화면해설’이, 청각장애인은 ‘자막’이 필요하지만, 현재 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곳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일부 영화관에선 한 달에 한 번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라는 이름으로 베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영화관도 한정되어 있고 볼 수 있는 시간대와 영화도 매우 제한적이다.
 
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문제가 대두된 것은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권유린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한 2011년부터다. 당시 영화는 농인들이 처한 상황을 다뤘지만 자막이나 수화 제공이 되지 않아 농인들은 볼 수 없었다. 이에 장애계는 “청각장애인들은 영화 도가니를 볼 수 없다”며 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했지만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날 법정에서 원고 측 대리인으로 나선 임성택 법무법인지평 변호사는 영화 도가니를 2분가량 상영했다. 해당 장면은 청각장애인이 수화하는 장면으로 영화 하단엔 자막이 흘러나왔으나 수화가 끝나고 교사 역으로 나온 배우가 음성언어를 하자 영화 속 자막은 사라졌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이 영화는 오로지 들을 수 있는 사람, 청인만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들이 300석 이상의 영화상영관이라는 사실은 다툼이 없다. 그러나 2015년 4월 11일로 정당한 편의 제공이 의무화된 이후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해외 사례로 미국 최대 극장체인점인 REGAL사가 소니와 함께 개발한 ‘자막이 흐르는 특수안경’을 소개했다. 임 변호사는 “대부분의 미국 극장에선 특수안경 등의 방법으로 개별화된 폐쇄형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극장 사이트를 살펴보면 이를 제공하지 않는 영화는 열 편 중 한 편 정도에 불과할 정도”라고 밝혔다.
 
엡손이 개발한 스마트글라스 BT-350. 사진은 엡손 홈페이지 캡처
이와 유사한 안경은 국내에도 출시됐다. 엡손이 개발한 스마트글라스 BT-350이다. 임 변호사는 “엡손 특수안경 가격은 100만 원 정도로 소니가 개발한 것보다 훨씬 가볍고 자막뿐만 아니라 수화도 보여준다”면서 “영어·일어·중국어 등 다국어를 제공하고 있어 영화관이 이를 구비한다면 한국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피고 입장에서도 과도한 부담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한 베리어프리앱도 소개했다. 핸드폰 앱에서 자신이 볼 영화를 선택한 후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선택하면 영화 상영 시 자신의 핸드폰으로 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장애인 영화관람데이’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오픈자막에다가 화면해설이 함께 제공되어 장애가 없는 사람은 함께 가서 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비장애인의 영화 관람과는 다른 ‘이벤트성 행사’다”면서 “장애인을 이런 식으로 모아놓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도 싫어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즉,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CGV 측 “자막·화면해설은 영화제작업자나 배급업자가 해야 할 몫”
 
이에 대해 CGV 측 변호사는 “CGV는 영화 상영업자에 불과해 원고가 요청하는 부분을 할 수 없다. 자막과 화면해설은 영화제작업자나 배급업자가 정부 지원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영화상영업자가 자막, 화면해설 등을 제작한다면 저작권 침해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사전에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서 “이를 제공할 시, 비장애인들의 영화관람권도 제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제공해야 한다면 현재 영화관과는 다른 형태의 영화관 운영을 고려해야 할 텐데 이는 근본적인 운영방식에 대한 변화이니 과도한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독일 등 해외의 경우, 장애인 영화관람을 위한 자막·화면해설 제공의 법적 의무 부과에 대해 수년간 사회적 논의 끝에 규정을 별도 마련했는데 그 비용부담 주체는 상영업자가 아니라 영화제작업자나 영화배급업자로 한정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이 날 공판을 지켜본 농인 김세식 씨는 “장애인 권리를 보장해줄 장치는 생각 안 하고 영업 이익만 추구하는 피고 측 모습에 화가 났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영화 볼 길 찾을 테니 당장 가서 폐업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농인 박광위 씨 또한 “영화관 관람뿐만 아니라, 영화관 가면 매점에서도 소통이 안 돼 갈 때마다 열 받는다”면서 ‘장애인을 위한 여러 조치를 자발적으로 해왔다’는 피고 측 주장에 분노하기도 했다.
 
이후 재판부는 오는 10월 13일 오후 2시 영화 시사실에서 엡손 스마트안경 등에 대한 현장 검증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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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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