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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 찾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국토대장정 시작
부산 형제복지원 옛터~대구시립희망원~청와대, 22일 여정 시작
“진정한 자유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즐겁고 힘차게 걸어갈 것”
등록일 [ 2017년09월06일 20시15분 ]


“이쪽이 뒷문이고. 여 걸어가 보면 기억날낀데.”  

 

아파트 단지치고는 올라가는 길이 가팔랐다. 산을 깎아 만든 곳이다. 그 자리에 높다란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한 남성이 주례센텀아파트, 반도보라 아파트, 청풍각, 미래소아과 의원, 엠스뷰티헤어, 큰나무 수학을 지우고 ‘다른 옛것’들을 떠올렸다.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 이곳은 형제복지원 옛터다. 40여 년 전, 원생들은 산을 깎고, 그 자리에 들어설 건물의 흙과 벽돌을 만들었으며, 그걸로 건물을 지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장비 하나 없이 맨손으로 지은 건물은 원생들의 수용소가 됐다.

 

“‘센텀(주례센텀아파트)’, 저 자리가 24소대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2년 가까이 있었던 기억이 나고요, ‘큰나무 수학’이 예전에 처음 잡혀 왔을 땐 정신병동이었던 것 같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네요.” (최승우)

 

30여 년 전, ‘나’는 분명 이곳을 나와 이렇게 나이 든 어른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나의 시간 어딘가는 멈추어 있는 것 같다. 멈추어진 시간의 궤적을 쫓아 도착한 곳은 다시 주례동 산18번지. 오래된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생생했다. 기억이 생생하니, 고통도 생생했다. 형제복지원이라는 공간은 신체만이 아니라 시간까지 가두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이라는 그 물리적 건물은 사라졌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아직 여기 살고 있었다. 이젠 정말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위해 ‘나-들’은 다시 이곳에 섰다. 지금은 ‘주례동 한일유엔아이아파트’가 된,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 형제복지원 옛터. 
 
6일 오전 11시,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아래 생존자모임)이 형제복지원 옛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토대장정 출발을 알렸다. 국토대장정은 부산 형제복지원 옛터에서 출발해 총 486.44km를 걸어 27일 청와대 도착을 목표로 한다. 경로는 형제복지원 옛터~밀양~대구시립희망원~대전~세종~경기도~청와대이다. 생존자모임은 대구에선 대구시립희망원 피해자와 희망원대책위를 만나고 세종시에선 ‘수용시설 폐쇄, 탈시설 정책 수립’을 요구하며 보건복지부를 방문할 예정이다. 안산에 이르러선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해방 이후까지 ‘부랑아 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아동들을 잡아 가둔 선감학원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경기도청을 방문한다.

 

6일 오전 11시,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이 형제복지원 옛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토대장정 출범을 알렸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사람들.
 

한종선 생존자모임 대표는 “이명박 때부터 박근혜 때까지 줄기차게 진상규명 목소리를 냈지만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충분히 기다렸다.”면서 “우리가 국토대장정을 선택한 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잊힌다는 것이 극심한 스트레스고 불안이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진상규명을 위해 당사자가 더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괴롭고 힘든 건 알지만 그럼에도 국토대장정을 택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청산할 때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의 피와 눈물도 닦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영선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형제복지원이 알려진 지 30년이나 됐지만 사회와 국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면서 “19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발의했으나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폐기됐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들의 염원을 담아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형제복지원특별법은 지난 19대 국회 때 발의됐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한 채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서 지난해 7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재발의했지만 여전히 논의의 진전은 없다.

 

- 22일의 여정… “진정한 자유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즐겁고 힘차게 걸어갈 것”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22일간 완주를 목표로 걸을 이들은 최승우, 박순이, 손정민, 한종선, 김영득. 이 외에 지역마다 피해생존자들이 함께하며 힘과 마음을 보태기로 했다.

 

22일간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는 피해생존자들. 최승우, 박순이, 손정민, 김영득, 한종선. (왼쪽에서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

“그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옵니다. 98년도까지 형제복지원 터가 여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형제복지원 볼 때면 또 잡혀가지 않을까. 이후로 늘 부산에서 떠나고 싶었지만 이대로는 못 떠나겠다, …이 사건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최승우)

 

최 씨는 82년도 어느 봄날, 학교 마치고 집에 오던 길에 순경에게 붙들려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입소 첫날부터 신입소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는 3년간 지속됐다. 두드려 맞고 기합받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배고픔이 특히 고약했다. 사람이 죽어 뼈가 삭으면 그 안에 ‘인’이 생긴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는 뒷산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그걸 파먹었다. 그는 86년 10월에 형제복지원에서 나왔다. 대장정 첫날, 최 씨는 하얀 반팔티에 직접 한반도 지도를 그리고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고 손수 쓴 티를 입고 걸었다. 그는 행진하며 손을 흔드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타전했다. ‘형제복지원’이라는 말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알지, 알지, 형제복지원”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순이 씨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는 뒤뚱뒤뚱 걸었다. 그는 2004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박 씨는 5명 중 유일한 여성 참가자다.

 

“대장정, 남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저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 맞는 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당차게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몸이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의 마음보다 주변 사람들 마음이 애가 탔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결국 걸은 지 20여 분만에 차량에 올라탔다. “욕봤다.” 한종선 대표가 박 씨에게 말했다. 사실 그가 이번 대장정에서 맡은 역할은 ‘밥’이다. 앞으로 22일간은 집에 있는 중3, 고1 딸내미보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은 동료들을 위해 밥을 짓기로 했다. 이 싸움에서 그 나름의 몫을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코펠 등 밥 지을 도구를 챙기고 전날 24만 원 치 반찬도 샀다.

 

손정민 씨는 9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들어 갔다가 14살에 ‘귀가조치’되면서 형제복지원을 나왔다. 81년도에 친척집에 가려고 부산역에 왔는데 부산역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던 그를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이 부산시 사회복지과로, 부산시가 형제복지원으로 그를 넘겼다. 14살에 형제복지원을 나왔지만 남은 건 지독한 트라우마뿐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혼자 길 걷는 게 무서워졌다. 배운 게 없으니 세탁소, 중국집, 가스배달 등 “안 해본 일없이” 살았다. 대형면허 따면서는 다소 삶이 안정되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에게도 형제복지원 이야긴 차마 하지 못했다. 몇 해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방영된 후에야 용기 내 말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대장정 참여를 말렸지만 손 씨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지”라는 말로 가족을 설득하곤 집을 나섰다.
 
“대통령이 면담해줄지 모르겠지만 형제복지원 조사에도 참여했으니깐. 만약 면담 신청 안 받아들여지면 저 혼자 그 앞에서 단식투쟁이라도 하려구요.”

 

문재인 대통령은 87년도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졌을 때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으로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진상조사에 참여했다. 2014년 4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그 진상보고서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상보고서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상규명을 철저히 못 했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있다.”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진상과 피해 실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당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19대 특별법 발의에도 참여했음을 밝히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회가 성의를 가지고 조속히 특별법을 통과시켜, 국가가 해야 할 조치들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지금 이 말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국토대장정을 하는 사람들.
함께 걷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힘을 보태는 이도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김대우 씨는 부산 택시운전사다. 하루 열다섯시간 운전해도 사납금 채우기 빡빡한데, 오늘은 저녁에만 택시를 몰 예정이다. 첫날 코스인 형제복지원 옛터에서 김해시청까지, 그는 동료들 옆에서 천천히 택시를 몰며 곁을 지켰다.

 

대장정 첫날, 부산엔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뙤약볕이 내리쬐면 뙤약볕 아래서 걸어야 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잠은 천막을 치고 자고, 몸 닦는 것은 공중화장실에서 하기로 했다. 밥은 코펠에다가 직접 지어먹고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한다.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았는데 못할 게 뭐 있느냐, 는 ‘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한종선 대표가 한 자 한 자 언어를 고르며 “밤새 썼다”는 출정선언문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즐겁고 힘차게 걸어갈 것입니다.” 부산에서 청와대로 한발 한발, 하루하루 걸어가는 길이 30여 년 전 형제복지원 철문을 벗어나며 그토록 고대하던 “진정한 자유”를 얻어내는 시간임을 믿으며, 피해생존자들은 힘차게 걷기로 했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후원계좌 : 우리은행 이은애 1002-557-42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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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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