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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의 언어로 사회에 말 걸다
[서문] ‘한국 피플퍼스트’를 만드는 사람들
등록일 [ 2017년09월19일 20시09분 ]

작년 경남에서 열린 피플퍼스트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당시 대회엔 전국 17개 시도에서 총 520여 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했다.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

 

1974년 미국 오레건주,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말했다. 장애인이라 불리기 전에 우선 사람으로 존재하길 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자기 옹호 운동을 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을 경유해 ‘피플퍼스트’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2013년. 그해 8월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행사를 치러낸 발달장애인들은 2016년 10월 제4회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에서 한국피플퍼스트를 정식 출범시킨다. 다음 해인 올해 4월엔 한국피플퍼스트 사무국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를 열었다.
 
발달장애인이란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통칭하는 용어다. 피플퍼스트에선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들이 직접 회의를 열고 어떤 활동을 할지 정한다. 일상적으로는 발달장애인 권익 옹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매년 10월 열리는 한국피플퍼스트 대회를 위해 16개 지역 당사자 활동가들이 모여 수차례 워크숍을 하며 대회를 준비한다.

 

그런데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 회의를 열고 무엇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 이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본다면 답답해하며, 끊임없이 개입하고 자신의 ‘똑똑한 언어’로 이 회의의 결말을 지어주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들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은 한국피플퍼스트를 만들었고 그들의 속도로, 그들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달장애인은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혹은 비(非)발달장애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말할 기회를 박탈당해왔다. 그들이 입 열기 전에, 그보다 빨리, 그 입술 앞엔 늘 ‘대리자’가 섰다. 부모님, 혹은 시설 선생님이 발달장애인의 욕구를 말하고 의사를 표현했다.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에서부터 거주공간까지, 삶의 전 영역에서 결정의 순간마다 발달장애인을 위하고 보호한다는 이유로, 결정을 대리했다.

 

그래서 당사자 목소리를 회복하는 피플퍼스트 운동은 그들이 ‘원래’ 있어야 했던 지역사회 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운동이 된다. 그들은 그들 특유의 단순하고 명쾌한 언어로 존재를 드러낸다. 이들의 언어와 속도는 ‘비발달장애’ 중심의 사고와 언어에 균열을 내고, 기어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활동을 원활하게 돕는 조력자가 있긴 하나 이들은 당사자가 요청할 때에만 개입할 수 있으며, 결정은 전적으로 당사자 몫이다. 조력자는 자기 쪽으로 당사자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발달장애인들이 그 누구보다 강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임을, 매년 10월 열리는 ‘한국피플퍼스트 대회’에 가면 알 수 있다.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표출되는 곳이다. 조용하고 엄숙한 여느 행사와 달리, 피플퍼스트 대회에선 자신의 개성과 취향과 의견을 발산하고자 손드는 사람이 넘쳐난다. 이토록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자기 존재에 응답하고자 하는 기운 넘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토록 ‘조용히’ 살아왔단 말인가.

 

이곳에서 사람들은 차별받고 학대받은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다.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간혹 울음에 목이 메 주춤하면, 종종 단상 아래서 또 다른 발달장애인이 “나도 그랬어!”라며 울음에 응답하기도 한다. 때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낯선 이들을 위해선 기다림의 시간도 갖는다.

 

이들 언어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래서 낯설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 언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수차례 회의하고, 종종 하얀 종이 앞에 앉아 밤새 고민한다. ‘사유하여 언어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이라고 딱지 붙여진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언어를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2006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더욱 본격화됐다. 지역사회 장애인 복지서비스도 기반을 갖춰가고 있지만 신체장애인 중심이라는 비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신체장애인이 빠져나간 장애인거주시설엔 이제 발달장애인들이 남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발달장애인 탈시설을 고민해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올해 10월 27일~28일까지 1박 2일간, 제5회 한국피플퍼스트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피플퍼스트를 만난 이후엔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온 곳도 삶의 내용도 달랐지만 발달장애인에 가해진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의 닮은 점들이 발견됐다. 그 공통점으로 이들은 피플퍼스트에 모였으나, 이곳에서 얻은 힘으로 자기 삶의 영역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삶을 열심히 꾸리고 있었다.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라는 피플퍼스트의 구호는 취향을 가진, 자기 삶의 독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발달장애인’으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이름을 가진 한 개별자로서 이들을 만나고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다섯 차례, 김정훈, 문윤경, 조화영, 최관용, 강호진의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 발달장애인 권리 선언문 >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또한 사회가 아주 냉정해져 가거나 가난한 마음이 되더라도 서로 도와주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장애인 차별을 비롯한 괴롭힘 당하는 사람, 집단 따돌림과 왕따나 상처를,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서로 가족으로 대해 달라. 우리는 발달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인 권리를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더 이상 감옥 같은 생활시설에 발달장애인을 가두지 마라!

2. 발달장애인에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달라!

3. 발달장애인에게 활동보조시간을 필요한 만큼 늘려 달라!

4. 대한민국은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여가활동을 할 수 있게 해 달라!

5. 발달장애인도 길을 잘 찾을 수 있게 알기 쉬운 안내 표지판을 만들어 달라!

6. 대한민국은 장애인연금을 올려 달라! 많이! 엄청 많이!

7. 발달장애인을 구타하거나 두들겨 패지 말아라!

8. 우리들이 노력하고 일한 만큼 월급을 달라!

9. 대통령은 발달장애인과 자주 만나서 대화하라!

10. 발달장애인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달라

11. 발달장애인에게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를 제작해달라!

 

2017년 4월 20일

한국피플퍼스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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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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