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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과거, 나는 당신의 “샌드백”이었다. 지금 세계는 파랗다
‘한국 피플퍼스트’를 만드는 사람들① - 김정훈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
등록일 [ 2017년09월26일 16시10분 ]

답하는 이보다 묻는 이들의 말이 더 길었다. 긴 물음에 그는 “네”라고 짧게 답했고, 오래된 기억 혹은 당시 감정에 대한 물음에는 “뭐라고 해야 하지?”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종종 그가 말하는 경험적 사실과 그가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이 어긋나는 것 같아 진심으로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맥락을 되짚어보면 그가 그때 느낄 감정은 ‘그럴 수가 없는데’ 그는 사회가 요구할법한 ‘규범적인’ 답변들을 종종 내뱉었다. 그 언어들은 그의 삶 어디에서 흘러들어온 걸까. 난 그것이 그가 지적장애인이기에 통제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과 관련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고, 그 지점들을 찾고 싶었지만 두 차례의 인터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대화는 자꾸 미끄러졌다. 핑퐁게임을 하는데 한두 번밖에 치지 못하고 자꾸 헛스윙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언어의 주파수를 맞추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그것은 끝내 잘 되지 않았다. 조력자(송효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의 대화는 더욱 난해했을 것이다. 음성언어 세계에 사는 농인의 갑갑함처럼, 지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통용되는 이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난 그가 느꼈을 막막함과 숨 막힘, 소외를 생각했다.

 

지적장애인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은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폭력의 덤불을 간신히 지나왔다. 중학교 때 장애아동바우처를 사용하면서 맺게 된 지역 장애인부모단체와의 인연은 대학 졸업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덕분에 그는 이후 전국 최초로 설립된 경남 창원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됐다. 인생 전환의 시작이었다.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이자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장 김정훈 씨의 이야기다. 그의 나이, 올해 스물일곱이다.

 

작년 경남에서 열린 피플퍼스트대회에서 김정훈 한국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오른쪽)이 조력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샌드백이었다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픈 얘기 해야 하나요?”

 

그는 경남 김해에서 일반학교 일반학급을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 때까지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얼굴이 못생겼다(그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로,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맞고 또 맞았다. 돈도 빼앗기고, 동급생들의 빵 심부름, 담배 심부름을 다녔다. 그는 중2 때 지적장애 판정을 받으며 자신의 장애를 깨달았다.

 

고등학교는 실업계를 갔다. 실습할 때면 재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학교에선 실습 대신 사회복지 공부를 시켰다. 그렇다고 따로 선생님을 배치해준 건 아니었다. 그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 그곳에서도 학교 폭력은 계속됐다. 담임선생님께 말은 했지만 도움은커녕 대부분 무시당했다. 어머니께는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적장애 2급으로 정훈보다 장애가 중했고, 정훈을 많이 의지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해 야구방망이, 골프채, 각목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그의 무기가 됐다. 방문도 부서져 작은 집안엔 피할 곳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아버지의 “샌드백”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던 폭력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멈췄다. 정훈이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암을 발견했을 땐 이미 말기여서 손을 쓸 수 없었다. 어머니는 때리기만 한 남편이었는데도 그의 죽음에 충격으로 잠시 쓰러졌다. 고모들은 정훈에게 왜 아빠를 지키지 못 했냐고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 엄마가 답답하고 안쓰러운데… 나도 나를 보호해줄 ‘엄마’가 필요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정훈과 어머니는 모자원(母子院, 미성년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에서 살았다. 모자원은 빌라 형식에 한 호당 한 가구가 쓸 수 있었지만 작은 원룸이어서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없었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 좁은 공간이 오히려 그와 엄마 사이에 단절의 벽을 쌓게 했다. 엄마와의 대화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왔다.

 

엄마에 대한 감정을 묻는 말에 그는 첫 인터뷰에서 “사랑스러움”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인터뷰 때 재차 다시 묻자, 그는 “엄마에 대한 답답함”이 있다고 희미하게 말했다. 엄마는 아픈데도 불구하고 자꾸 일을 했다. 주로 시장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금은 집에서 ‘고무 끼우는’ 부업을 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만으로는 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아픈데 일하지 말라’고 하면 그의 엄마는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직원으로 일하면 좋겠다”고 매번 생각했다.

 

효정 : 정훈도 느꼈어요? 우리가 가난하구나.
정훈 : 많이는 아니고 가끔.
효정 : 그럴 때 엄마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정훈 : 네
효정 : 가난하다는 느낌 언제 받았어요?
정훈 : 이사 가야 하는데 이사 갈 돈이 없을 때.

 

그는 “엄마가 안쓰럽다”라고도 했다. 그 마음들은 주로 잦은 짜증으로, 때론 욕설로 표출됐다.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엔 정훈에게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서러움이 숨죽이고 있었다.

 

혜민 : 나에 대해 자괴감에 혹시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장애인인데, 나도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너무 힘든데, 내가 엄마까지 챙겨야 해?
정훈 : 네, 그런 것도 있어요. 하이고… 하아… 계속 안 좋은 얘기 하네. 또 있나요? 안 좋은 얘기할 게. 많나요?
혜민 : 얘기하기 힘들어요?
정훈 : 네. …후우…(한숨)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자꾸 무언가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듯 깊고 얕은 한숨을 번갈아 내쉬었다. 복잡한 감정을 읽어내고 풀어내는데 두통이 잇따르는 듯했다. 삶의 고통을 읽어내는 과정은 고차함수를 푸는 것과 같다. 그것이 그에겐 무척 버거워 보였다. 꼬이고 꼬인 감정의 실타래를 짚어내는 것에 대한 저릿한 고통의 감각이 듣는 이에게도 전해졌다.

 

그 감정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때면 십대의 정훈은 PC방으로 내달렸고, 성인이 된 정훈은 술로 풀었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욕이 가득 담긴 노래를 불어 젖히기도 했다. 김해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고작 “담배는 피지 마라”고 말할 뿐이었지만, 그는 일찍이 열다섯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이 학교 폭력에 웅크리고 있던 정훈을 위로해주는 작은 친구가 되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는 끊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혼자 공부한 실력으로 김해대학 사회복지상담과(2년제)에 수시로 입학했다.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경남 창원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해 올해 3월까지 센터장으로 활동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현재는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이자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 서울 올라오니 ‘출세한 느낌’이 들어요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의 삶의 반경은 더 넓어졌다. 경남에서도 센터장이었고 서울에서도 센터장이지만 ‘서는 무대’가 달랐고, 그의 ‘곁에 함께 서 있는 이들’도 달랐다. 이른바 ‘전국 단위’가 된 것이다. 그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젠 확연히 “출세한 느낌”이 났다. 자신에게 이러한 면이 있는지 놀라웠고 잘 해 낼 때면 뿌듯했다. 그만큼 그의 자긍심도 높아졌다.

 

그는 한국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으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국 대회를 준비하고,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장으로서는 당사자 자조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자조모임은 강북과 강남으로 나눠서 한다. 20여 명 참여하는 강북은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위원회 역할을 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강남 자조모임은 지난 8월에야 첫발을 뗐다. 현재 자조모임은 영화보기 등 발달장애인의 여가를 채우는 활동을 주로 하지만, 앞으로는 ‘권리를 고민하는 모임’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 때 참정권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되는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을 모니터링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은 도마다 있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발달장애인이 신청하면 센터에서 심사해 진행하는데 현재는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피플퍼스트 멤버들이 전국 각지에 있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개인별 지원계획을 신청해 서비스 지원이 잘 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자는 것이다.

 

올해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한국피플퍼스트가 주최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촉구대회에서 김정훈 위원장이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삶의 자긍심을 갖게 해준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 그만큼의 불안

 

그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경남의 임대아파트엔 어머니 홀로 남았다. 어머니 혼자 꾸리기 힘든 일상은 교회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정훈 또한 기독교를 모태 신앙으로 갖고 있다. 그는 4월에 서울로 올라온 후 경남엔 딱 한 번 내려갔다.

 

“너 서울 가서 못하면 다시 경남으로 내려오게 할 거야.” 서울 올라올 무렵, 경남에서 같이 일한 이가 한 말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에게 서울과 경남은 단지 지역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성공과 실패를 증명하는 공간이자, 경남으로 간다는 것은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경남으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한다.

 

이는 곧 있을 한국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 선출에 대한 불안감과도 맞닿는다.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은 선출직이다. 선출직이기에 다음 선거에 그가 당선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선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그에겐 “자신이 일을 못 해서 잘리는” 날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바짝 죄고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조급함과 긴장이 올라온다.

 

이러한 모습을 피플퍼스트 조력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송효정 활동가는 “정훈이 위원장을 하며 정말 많이 성장했는데 그처럼 다른 사람들도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그 말에 정훈은 “네”라고 답했지만 입에선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효정은 그의 서운한 마음에 공감하며 “혹시 모르죠, 10년 장기집권할지도”라고 농담을 던졌고 그는 “설마요”라고 답했으나, “‘설마’하지만, 하고 싶죠?”라는 물음엔 “하고 싶은데”라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샌드백”처럼 집에서 학교에서 맞고만 다녔던 시절, 이 세계에 그의 자리는 없는 줄 알았다. 죽고만 싶었다. 그런데 전국위원장을 하면서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발달장애인의 대표로서 수없이 많은 목소리를 냈다. 전국을 돌며 당사자들을 만났고, 그의 역할이 커질수록 그를 지원하는 조력자 그룹도 탄탄해졌다.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그 안에서 우정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일을 통한 성취, 소속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들이 주어졌다.

 

그래서 그에게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에 선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모든 경험을 빼앗기는 것, 즉, 어두운 과거로의 복귀라고 생각되는 건 아닐까. 발달장애인의 삶에서 정점은 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을 맡는 지금 이 순간이지 이 너머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차마 상상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위원장으로 선출되지 않아도 서울센터장으로는 남을 수 있기에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자꾸 상상하고 실제 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그가 가고 있는 길이 ‘모든 것의 처음’이기 때문이다. 명함 속 직책이 없어져도 수년 동안 활동하며 체득한 노하우는 그의 것인데, 이것으로 또 다른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발달장애인에게 ‘생각한다’는 것

 

현재 피플퍼스트엔 갈수록 많은 일들이 요청되고 있다. 피플퍼스트에 향하는 주요 비판 중 하나는 ‘경증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실제 피플퍼스트는 (정훈이 그렇듯) 통합교육을 받아온 20대 경증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들 중심으로 전국 대회를 준비하는 각 지역 대표단이 구성되고 준비 워크숍이 진행된다. 이에 대해 송효정 활동가는 “지난 3년의 시간은 의사 표현이 잘 되지 않았던 분들이 리더로서 성장해오는 시간이었다”면서 “앞으로는 중증장애인과 어떻게 함께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조력자들은 경증의 발달장애인들이 중증발달장애인의 언어를 읽어내고 그들을 조력하는 역할을 기대하나,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그에게 이에 대한 고민을 부탁하며 일주일 후에 있을 두 번째 인터뷰에서 답을 듣고 싶다 청했지만, 두 번째 인터뷰 때 그는 “지금은 아직 잘…”이라며 어려워했다.

 

하반신마비 장애인에게 일어나라고 할 수 없듯, 발달장애인에겐 깊은 사유를 요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는 순간 그는 끊임없이 생각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특히 조직 대표로서 그의 언어는 중요했다. 조력자들은 그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언어로 끊임없이, 질기게 질문을 던졌고, 그는 그 질문을 나침반 삼아 자기 경험 속에서 언어를 길어 올렸다. 피플퍼스트는 대외적인 공식 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사전 대본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처음엔 대본을 거의 따라 읽었지만 이제는 당일 현장 분위기에 따라 대본과 달리 가는 유연성과 노련함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곳까지 다다르는 길은 너무 어려웠다.

 

혜민 : ‘좀 더 생각해봐라, 고민해봐라’ 이런 말 들으면 어때요?
정훈 : 엄청 안 좋죠.
혜민 : 막 목 조르는 것처럼 답답할 때도 있어요?
정훈 : 네, 스트레스 엄청 받죠.
혜민 : 조력자들이 어떻게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정훈 : 옆에서 쉽게 쉽게 설명해주시는 게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혜민 : 질문을 이해해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내 머릿속이 새까맣기만 할 때, 어떻게 해요?
정훈 : (깊은 한숨) 아… 내 혼자 풀 때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으로 찾아서 할 때도 있고. 아니면 고민 못 할 때도 있고.

 

이 때문에 당사자는 조력자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게 정말 네 생각이 맞냐, 좀 더 깊이 생각해보라’는 조력자의 말을 들을 때면 당사자들은 조력자들이 ‘선생질’하는 것처럼 느껴져 숨이 막힌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닌, 평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당사자-조력자 관계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이들은 수없이 갈등하며 열심히 헤매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0대 때 정훈은 온 세상이 새카맣게 보였다. 지금, 세상은 파랗다. 오늘의 그가 그리는 미래는 10대 때 그가 그린 모습과 많이 다르다. 30대에도 지금처럼 공부하며 피플퍼스트 활동을 이어가고, 여자 친구와 결혼해 서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싶다. 50대쯤엔 발달장애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 로버트 마틴처럼 유엔에도 가고 싶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삶’이 조금 더 일찍, 10대 때부터 가능했다면 지금의 자신은 훨씬 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정훈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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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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