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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사회권=복지’ 고정관념 깨는 헌법 개정 이뤄야
개정 헌법에 장애인 별도 조항 포함 필요성 제기
사회권 개념 넘어 자유권의 차원으로 장애인 권리 사고해야
등록일 [ 2017년09월28일 17시39분 ]

87년 6월 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후보 시절 개헌을 공약했고 2018년 지방선거 시기 개헌을 목표로 내걸기도 했다. 이에 전국적으로 ‘국민참여형 개헌’을 위해 전국 순회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이게 나라냐!”는 성토가 현재의 개헌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에서 매번 반복됐던 개헌 논의가 정국 돌파를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쳤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87년 헌법도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 도입 외에 국민의 기본권을 온전히 담지 못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에 최근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을 온전히 담는 방향의 개헌을 위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장애계도 이런 흐름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개헌 네트워크’와 김상희, 김광수, 윤소하 의원 주최로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개헌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개헌 방향 토론회'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현행 헌법에서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장애인 권리보장 별도조항 필요


장애계의 헌법 개정 요구안을 발표한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조정실장은 실제 헌법소원을 통해 장애인 권리보장을 요구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현행 헌법의 문제를 짚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시발점이 됐던 2001년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한 헌법소원이다. 장애계는 그해 11월 복지부 장관에게 저상버스 도입을 청구했으나 복지부가 건설교통부와의 협의를 이유로 이행하지 않자, 저상버스 미도입이 ‘행복추구권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침해라며 2002년 1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같은 해 12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사회적 기본권은 입법과정이나 정책결정과정에서 사회적 기본권에 규정된 국가 목표의 무조건적인 최우선적 배려가 아니라 단지 적절한 고려를 요청하는 것이다. (중략) 사회적 기본권에 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이 사건을 본다면, 우선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다른 다양한 국가과제에 대하여 최우선적 배려를 요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헌법의 규범으로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의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장애인의 기본권은 국가의 배려를 통해 지원될 여지가 있는 것이긴 하나 국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는 아니라는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이후 장애계가 제기한 이동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개별 법원의 판결에서도 반복됐다.
 

위와 같은 해석의 대상이 되는 주된 헌법 조항은 제34조 제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이다. 이 조항은 장애인을 그저 국가의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87년 헌법 이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하위법의 권리 개념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조 정책조정실장은 “헌법이 하위 법령의 기본 전제가 되는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장애차별금지법 등 현행 법령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헌법 개정은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현재는 장애인의 평등권, 실현을 위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개별적인 해석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 헌법에 장애인 권리보장을 명시한 별도조항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제34조 제5항의 ‘신체장애자’ 용어를 ‘장애’로 변경하는 것은 물론이고, 별도조항으로 장애인의 경제·사회적 독립 및 존엄하고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권리, 모든 형태의 착취·억압·차별적이거나 모욕적 처우로부터 구제받을 권리 등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시설에만 갇혀 사는 것이 자유권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든 토론자들은 장애인 권리보장 별도조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인식을 같이 했다. 특히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다양한 장애인 관련 법 제정 이후에도 사법부 판결에 큰 변화가 없는데는 법과 판결 이전에 존재하는 ‘선판단’, 즉 역사적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개헌을 통해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본가치’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 연구원은 기존 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애인 규정을 ‘사회권’ 영역에 가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장애인의 권리가 기본적으로 복지의 문제이며, 장애인의 삶을 통째로 특수한 범주에 귀속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즉, ‘장애인 권리=사회권=복지’라는 인식 때문에 장애인의 권리가 당연한 출발점이 아니라 언젠가 도달해야 할 먼 미래의 목표로 사고되고, 한 없이 미뤄도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고 연구원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는 도시환경을 조성해 놓아서, 장애인들을 배제하고 추방하는 교육공간과 제도를 만들어 놓아서 어떤 장애인이 수십 년간 집이나 시설에만 갇혀 지내고 있다면, 이것이 기본적인 자유권의 침해가 아니면 무엇일까”라고 물으며, 장애인 권리를 자유권 문제로 받아들이는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준)’ 정책기획팀 소속의 김준우 변호사는 장애인 별도조항 신설에 동의하면서도, 장애인운동진영이 기본권 조항 이외의 다른 헌법조항 개정 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제34조 제5항의 ‘신체장애자’ 표현 변경과 장애인 기본권 별도조항에 대해서는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동의한 상황”이라며 “장애인운동진영의 헌법개정운동이 장애인과 직접 관련된 조항으로 국한될 수 없는 폭 넓은 쟁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기관화 가능성, 사법절차 개혁 및 참정권 보장 등의 쟁점에 대한 장애인운동의 입장 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또 “개헌국면에서 장애인운동의 목표가 몇 줄의 헌법 개정으로 수렴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제자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며 “개헌의 성사여부에 따라 운동의 성패를 따지기 보다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맺어야 할 약속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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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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