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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문윤경입니다.
‘한국 피플퍼스트’를 만드는 사람들② - 문윤경 씨
등록일 [ 2017년10월11일 13시14분 ]

“안녕하세요? 저는 문윤경이라고 하고요. 나이는 29살, 내년이면 계란 한판이 되는 나이가 될 수 있어요.”


윤경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인 2016년도 2월이었다. 제4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_경남을 준비하는 워크숍이었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그녀의 존재감을 높였다. 그녀는 지난 2년여 동안 가장 큰 목소리로 ‘차별 반대’를 외쳐온 당사자 중에 한 명이다. 대체로 남성인 리더들로 구성된 피플퍼스트의 활동에 윤경이 결합하면서, 여성리더들의 활동에 두각이 드러났다. 그녀는 현재 대구지역의 발달장애인자조모임 PF의 멤버이며, 한국피플퍼스트 집행위원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창원에서 열린 한국 피플퍼스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윤경 씨.


공책을 누르는 마음


윤경을 만나러 가던 길에 그녀의 SNS를 다시금 살폈더랬다. 얼굴을 마주하면 밝은 사람이지만, SNS의 윤경은 고통을 말한다. 그녀는 가끔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하고, 때론 자신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들 사이에 종종 성경 필사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는데 이유를 물었다. 필사는 윤경의 취미기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가끔씩 부모님 잔소리 들으면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데 그걸 고쳤으면 좋겠어요. 화를 많이 내요. (성경을 필사하는 건)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필사를 하면 마음이 잔잔해지고 편안해져요. 불안한 마음도 없어지고요. 하루라도 성경필사를 하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아서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을 하지만. 저는 손에 가시가 돋아서 안 될 것 같아요. 흐흐흐”


두 번,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을 때마다 불안하고 싫었다. 가족들이 열심히 일 해 스티커는 떼어졌다. 이후 가족 모두는 더 이상의 침범을 막기 위해 애썼다. 아빠는 야간근무를 하고, 엄마는 돈을 아끼려 노력하고, 동생도 일을 했다.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 윤경도 여기에 예외 되지 않았다. 엄마처럼, 아빠처럼, 동생처럼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수없이 직장을 다니고, 옮겼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열심히 했지만, 그것은 늘 부족하다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것이 윤경을 주눅 들게 했다.


필사, 글자를 옮겨내는 볼펜 끝에 힘이 실린다. 공책을 누르는 힘으로 마음을 누른다. 윤경의 필사엔 자꾸만 화가 나는 마음을 누르려는 그녀의 인내가 담겨있었다.


비장애인이 된다면 그 땐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윤경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으로 범주에 들어왔다. 통합교육을 받았지만, 초등학교 입학부터 장애인의 삶을 살았다. 누구나 거치는 일상적인 것들에서 수식어를 뗀 “문윤경”은 없었다. 무엇을 잘해도, 무엇을 못해도. 장애인인데 잘하거나 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잖아요. 그때 꼴지를 했거든요. 저 때문에 졌다고 막 화내고 괴롭혀요. (-이어달리기였어요?) 네, 그때 내가 아팠잖아요. 배탈이 나서 토를 했거든요. 속이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하니까, 남자애들이 닥치라고. 욕을 하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꾀병부리지 말라했다고 해야 하나? 꾀병부리지 말라고 때렸어요. … 선생님들도 친구들 편만 들고는 제 편은 하나도 안 들어줬어요.”


- 윤경은 사람들이 화를 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장애 때문이었어요. 제가 장애를 가졌다고 막 괴롭혔어요, 친구들이. 바보야도 있었고요. 개새끼, 또라이라고도 했어요. 아하... 욕 안 하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윤경은 수많은 별명들로 불렸다. 그것은 윤경의 장애에서 따온 것들이었다. 따돌림을 당했고, 돈을 뺐기기도 했다. 어두운 밤, 괴롭히던 친구들에게서 숨고 싶어 어둠이 내린 뒤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어둠속에 친구들도 숨어있었다. 중‧고등학교 신입생 시기를 지나는 때에는 친구들이 챙겨주기도 했지만, 진급을 하고, 신입생이 들어오면 무시가 반복됐다. 12년의 학교생활 중 윤경이 모욕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은 오직 방학이었다. “행복했던 시간은 방학기간 때가 그나마 행복했어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에서 벗어난 시간을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이 괴롭히지 않으면 다닐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괴롭힌다면 학교에 안 다닐 것 같아요. 근데.. 만약 장애인이라면 특수학교에 가고 싶어요. 아예 특수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에 다녔으면 좋을 것 같아요.”


‘통합교육’을 받았다는 윤경은, 학창시절 누군가와 어울렸던 기억을 이야기 하지 못했다. 윤경의 자리는 학교 안 어디쯤에 있었던 것일까. 내내 외로웠던 시간. 설령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자신을 밀어냈던 학교 안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지 못했다.

 

2017년 3월 29일 민주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슬픈 사연이 많았어요.


“제가 장애인이어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대신에 전공과를 다니고 싶었거든요. 전공과에서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작업이 포장작업이었는데, 쇼핑백 그거 접는 작업을 좋아했거든요. 처음에 (쇼핑백) 앞부분을 접는 게 잘 안됐는데, 앞부분을 접게 되면서 잘 접혀지는 게 신기했어요.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니까 공장으로 가게 된 거에요.” 


윤경은 현재 직장에서 일하기 전까지 모두 여덟 개의 직장을 가졌다. 첫 직장은 안경케이스를 담는 공장이었다. “안경케이스를 예쁘게 개비는 거를 했는데, 처음에는 잘 안됐는데, 자꾸자꾸 하다보니까 엄청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윤경은 묵묵히 앉아 일을 배웠다. 쉬운 일은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생기는 게 재미있었다. 삼주동안 하루 여덟 시간, 주 6일을 근무했고, 18만원의 임금을 받았다. 노력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지 않았지만, 취업으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물건을 진열하는 공사현장, 주유소, 핸드폰 공장. 그녀는 자신이 갈 수 있는 곳들을 전전하게 된다. 다섯 번째로 파견된 이불공장에서 현장실습 3주를 마친 뒤 그녀의 첫 직장이 생겼다. 한 달에 1백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이불공장에서 방석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미싱으로 만든 방석을 깔고, 라벨을 자르는 일을 했다. 1년 동안 일을 하고, 계약 만료로 퇴사하게 되었다. 다시 직업을 찾아 나선다. 보호작업장, 핸드폰공장에서 몇 개월을 일했지만, 채용되지 않았다. 여덟 번째로 도어락 공장에 다다랐다.


윤경은 책상의 한 구석에 눈을 맞추고 부지런히 자신의 시간들을 기억해냈다. 공장에서 라인을 타며 일을 했다고 했다. 설명서를 박스에 넣고, 도어락을 비닐로 포장했다는 윤경의 말을 따라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포장하는 방법들을 손짓으로 재현해냈다. 말들 위의 눈빛이 선선했다.


“일이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문제는, 나보다 어린 애들의 텃세였어요. 일 빨리 못한다고 꾸중하고, 조금이라도 불량나면 뭐라카고. 그게 정말 싫었거든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비장애인의 실수엔 너그러웠지만, 윤경의 실수엔 화를 쏟아냈다. 자신을 무시한 라인의 빠른 속도를 맞추느라 버거웠고, 지나치는 물건사이로 쏟아지던 사람들의 무시는 라인 밖 시간까지 따라왔다.


“점심 그거를. 나도 점심 먹는다고 끼어들고 하는데. ‘너는 딴 데 가서 먹어라 해서.’ 결국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었어요. 혼자서요.”


내내 혼자였다.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일은 할 만 했지만 텃세는 4년 동안 계속됐다. 관리직에 있는 누군가들은 일을 잘 한다고도 했지만, 열심히 일해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권고사직을 당했다.


“마음이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나는 일을 잘 하는데 왜 권고사직 하냐고 속으로는 묻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가지고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어요. 사장님한테..”


여덟 번째 직장, 4년이 그렇게 마무리 됐다. 윤경은 여전히 자신이 왜 이 공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해야 했는지 알지 못한 채 마음을 정리한다.

 

2016년 10월 창원에서 열린 피플퍼스트대회에서. 가운데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문윤경 씨.


검정색은 너무 평범해요


윤경은 피플퍼스트 집행위원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 반대를 이야기한다. 9번째 직장인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의 자신의 업무 중 하나가 장애인 관련 뉴스를 스크랩 하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경험, 특별히 초등학교의 이야기를 꺼내며, 윤경은 속상하고 아픈 마음을 이야기 했다. 10대의 기억이 서른을 앞둔 그녀에게 여전히 깊게 박힌 말뚝처럼 우뚝하다. 


“제가 장애인 학대에 관련한 뉴스스크랩을 할 때 마다 마음이 아팠던 게, 저번 주에 나왔던 지적장애여성이 시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고 있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집안일 못한다고 구박하죠. 조금이라도 일 못하면, 강가나 논밭에 버리고 온다고 지적장애인 며느리를 협박을 했어요. 그 뿐 아니라 시설장애인들도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잖아요. 시설 교사한테 구박하고. 교사가 발달장애인을 구박을 하거든요. 빨리 빨리 일 못한다고 구박하고. 말 안 듣는다고 구박하고. 그리고 바깥에, 외출도 시설교사 허락이 아니면 못나가요. 만약에 허락 없이 나가면 때리고. 그게 마음이 아파요.”  


수많은 기사들이 온라인을 떠다니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학대 뿐 아니라, 장애 극복기나 장애인에게 혹은 장애인으로부터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미담도 있었을 것이다. 윤경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글자들을 속아낸다. 쉬 공감해 주지 않던 고통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으로 불러낸다.


“학대당하는 당사자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루 빨리 발달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서 자립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음..발달장애인들이 탈시설을 하게 되면 체험홈이나 가정에서. 장애인들은 같이 살면서 밥도 직접 해먹을 수 있게 되고. 돈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면 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이 행복해 질 것 같아요?) 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도 만들 수 있고요. 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자기만의 집이나 아파트 같은 데에도 사서 살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는 그녀 자신의 소망도 들어있었다. 스크랩한 기사의 검정색 헤드라인을 엑셀에 옮기면서, 윤경은 공들여 색을 입힌다. 너무 평범한 검정색이 싫다. 그녀는 문서들을 꾸미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꾸미고 싶다.


노력을 담아 내일을 준비한다


“피플퍼스트 활동으로 저는 아직까지 당당해지지 않은 것 같지만, 당당해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요. 또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 우리들만의 동아리도 만들고, 고민거리가 있으면 카톡에 이야기를 다 하고 그런 게 좋아요. 잘 듣지 못하는 친구를 대신해서 이야기 해줄 수 있고요.”


윤경은 “당당하게”와 “스스로”란 단어를 여러 차례 힘주어 말했다. 소외된 길을 걷던 윤경은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피플퍼스트를 모르는 동료들에게 피플퍼스트를 알리고 싶고, 이후에 대구에 피플퍼스트센터가 설립되면 그곳에서 활동 하고 싶다. 그녀는 미래에서 행복을 본다. 그리고 그 길에서 애쓰고 싶다. 


“친구들이 피플퍼스트를 알 수 있게 명함도 주고, 기관마다 팩스도 보낼 거에요. 대구에 피플퍼스트센터 사무실이 설립되면, 그게 저의 행복이 아니겠어요? 센터가 생기면 (POP연습을 열심히 해서)로고도 만들고 발달장애인법을 쉽게(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자로 제작해서 만들 거예요.”


윤경은 노력을 담아 내일을 준비 한다. 한국피플퍼스트대회 포스터를 보시라, 메인글씨가 바로 윤경의 작품이다.

 

문윤경 씨가 직접 메인글씨를 써서 만든 한국피플퍼스트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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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효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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