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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공공성 확보 없이 장애인에게 직접 현금을 준다고? ‘우려’ 빗발쳐
서울시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도입 방안 연구 공청회 열려
“선택권 확대 위한 최선의 길” vs “서비스 총량 확대 및 공공성 없이는 무의미”
등록일 [ 2017년10월19일 21시19분 ]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제공 모델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도입방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예산 확대 없이는 조삼모사일 뿐이며 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도 어렵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과 서울시 주최로 서울시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도입에 관한 공청회가 19일 하이서울유스호스텔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개인예산제는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당사자 개개인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사정하고, 서비스 이용에 필요한 전체 예산이 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닌 당사자에게 지급되어 운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서울시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도입에 관한 공청회가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서울시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용역 연구를 진행한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장애 정책은 의료적 관점, 공급자 중심의 전달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삶의 주체성이 매우 제한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이용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인예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개인예산제도는 자기주도지원을 제도화한 것으로, 이를 통해 '개별 유연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별 유연화란 개인이 강점과 선호를 갖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가 주체가 되어 돌봄과 지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현재 장애인 복지 정책은 전문가가 미리 만들어 놓은 서비스에 장애인의 욕구를 맞추는 형식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가 장애인의 욕구와 상황을 사정하고, 이에 기반을 둬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제도는 "전문가가 진짜 장애인을 선별하여 급여를 주는 정책이며, 이러한 제도로는 '장애'인의 욕구는 해결할 수 있어도 장애'인'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장애인의 다층적인 욕구를 해결하려면 개인예산제 도입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금 지급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전문가가 정한 지원체계 안에서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던 장애인이 '현금'을 쥐게 됨으로써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행 제도에서는 '장애인 콜택시'만 타던 사람이 '카카오택시'까지도 선택지로 고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예시를 들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많이 개발되어 왔음에도 당사자의 체감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짜놓은 틀 안에서만 구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자유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개별예산제도가 안정적으로 지원되기 위해서는 자원할당을 공공 영역(정부)에서 해야 하고, 서비스 공급자는 당사자 옹호와 중개 서비스를 중심으로 역할을 개편해야 한다"라며 "이런 환경이 마련되면 장애인은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에서 선택과 통제권을 가지는 '시민'으로 성격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바라보았다.

 

이 교수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구상한 서울형 개인 서비스 현금 지급제도 시범사업 모형을 제시했다. 제안된 모형에서는 시범사업이 서울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해 서울시 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영역을 제안했다. 이 경우 시범사업 영역은 활동보조 서비스 중 서울시 추가 제공분, 여행, 여가, 체육문화, 이동 등 서울시가 별도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 등이 될 것이다. 지원계획은 개인이 직접, 또는 지원을 받아 작성한다. 이렇게 작성된 지원계획은 구청의 평가를 거친다. 평가도구는 기존의 활동보조 인정조사표를 활용하며, 최종 결정된 예산은 별도의 전용계좌를 마련해 체크카드로 지급된다.

 

이 교수는 "서울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시범사업을 구축해야 하고, 중앙정부 정책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하는 등 여전히 연구의 한계가 존재한다"라며 "특히 평가도구는 실제로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더욱 세심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청회에서 소개된 서울시 개인예산제도 시범사업 계획안에 대해 날 선 비판이 제기되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는 "예산 자체의 확대 없이 진행되는 개별유연화는 결국 서비스 간 칸막이를 폐지하는 정도일 것인데, 이는 조삼모사에서 조사모삼으로의 전환에 불과하지 않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표는 부족한 서비스의 총량 자체가 문제라며 활동지원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 제도화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갈릴 정도로 이용자들의 체감 만족도가 높고, 양적 확대의 욕구가 지금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라며 "사회서비스에 대한 장애인들의 불만이 '선택의 자유가 없어서'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현재 '개인의 욕구에 기반을 둔 복지서비스'가 불가능한 이유는 전달체계나 운용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장애인의 욕구가 인정받지 못하고, 지원되는 제도와 서비스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예산 문제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와 같이 예산이 중앙정부에서 결정되어 아래로 하달되는 구조에서 서비스 사정 기구는 이미 결정된 서비스의 접근 여부를 정해진 판정 틀로 심사하는 역할 너머의 일을 할 수 없다"라며 "근본적 전환을 위해서는 서비스 비용을 개인에게 '현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이 아니라 서비스 판정과 결정 과정에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기룡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총장은 현금 지급방식에 기반한 개인예산제 도입이 "장애인 복지 서비스의 근본적 폐단을 혁신할 수 있는 과감한 제안이라 판단된다"라면서도 "과감한 제안인 만큼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우선, 김 총장은 "현재 시범사업안에서 제안된 내용만으로는 서울시의 어떤 재원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여,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와 같이 제도 실행에 필요한 실질적인 사항을 찾기 어렵다"라며 사업 현실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아울러 김 총장은 "현금 지급제도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폐해에 대한 해결 방안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재정 부족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 실효성을 어떻게 높여 나갈 것인지, 예산이 지급되더라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을 경우 개인의 선택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무엇보다 다수의 장애인이 받아들일 만한 개인예산 책정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등이 난제라고 보았다. 특히 김 총장은 "개인예산제도 도입이 장애 서비스에 대한 시장 형성을 촉발함에 따라 서비스 제공 인력의 노동은 더욱 상품화되고 저가치화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현금 지급제도 이외에도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다"라며 서비스 판정은 개인별로 진행하되 서비스 비용은 제공기관에 지급하고 있는 스웨덴과 장애인에게는 가상화폐만 지급하고 실제 현금은 제공 기관에 지급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핵심은 현금 지급 자체라기보다는 서비스 판정권을 어디에 두는지, 그리고 서비스 공급의 공공성이 얼마나 확보되어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지다"라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이동석 교수, 박경석 대표, 김기룡 총장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의견에 대해 안형진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집행위원장은 "개인예산제도는 단순히 장애인에게 현금을 준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한국 장애인 정책의 방향이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선언"이라고 반박했다. 안 위원장은 "장애인 자립생활의 가치는 어떤 유형의 장애인도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평등'을 쟁취하고자 했던 장애인 운동의 흐름을 자유를 향한 여정으로 바꾸는 단초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토론회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비판은 이어졌다. 객석에서 제기된 비판 대부분은 제안된 개인예산제도가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질문자는 "현재 복지체계의 문제점은 돈만 주고 '알아서 쓰라'고 방치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활동보조제도를 예로 들었다. 그는 "만약 개인예산제도에서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개인이 직접 계약을 맺는 방식이 된다면, 어떤 활동보조인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겠나"라며 "공적 기반 구축 없이 현금 지급만으로는 개인예산제도의 본질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질문자는 "개인예산제도안에서 여전히 서비스 지원은 민간 영역에 맡기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 경우 공공재인 사회서비스는 민간 '시장'에서 과소공급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공공성 기반 없이 도입된 바우처 제도로 인해 복지 영역의 시장화가 급격히 진행된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서비스 공급 차원에서 공공성 강화 없는 개인예산제도는 결국 당사자의 삶의 질을 하락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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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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