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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은 자유롭지 않았어요. 피플퍼스트가 옆에서 도와줘요
‘한국 피플퍼스트’를 만드는 사람들③ - 유정우 씨
등록일 [ 2017년10월26일 18시17분 ]

지적장애가 있는 서른여덟 유정우 씨는 2013년 겨울 어린 시설부터 전전해온 시설 생활을 청산하고 지역사회로 나왔다. 이듬해 겨울 그는 시설에서 만난 이상분 씨와 결혼했다. 남들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걸 즐기는 정우 씨는 2015년 피플퍼스트 대구대회에서 장기자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2016년 피플퍼스트 경남대회에서는 개인 장기자랑 시간이 없어 아쉬웠지만, 준비 워크숍에 적극 참여하여 탈시설 장애인의 목소리가 피플퍼스트 대회에 울려 퍼지는 데 일조했다. 서울 피플퍼스트 자조모임 ‘해피투게더’의 열혈 멤버이자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은평센터) 자조모임 ‘위캔두잇’ 리더인 그는 피플퍼스트가 탈시설의 근거이자 깃발이 되는데 자기 역할을 다할 것이다.  

 

지난 5월,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활동가 및 조력자 초청강연회'에서 유정우 씨(오른쪽) (사진 제공: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설에선 자유롭지 않았어요

 

유정우 씨는 첫 시설에 입소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허리 높이로 손을 가져가며 “대략 요만했을 때”라고 했다. 누가 데려갔는지도 기억 못 했다. 조심스럽게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물었더니 들릴 듯 말 듯 “안 나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돈보스코”라는 시설명과 “사무실에 들어갔던 기억”은 또렷했다. 조금 커서는 “갱생원”에 갔고, 은평구에 있는 서울시립소년원에도 있었다. “나이가 많아져서 소년원에서 나와야 되니까, 미니버스 타고 철원에 있는 은혜장애인요양원(아래 은혜요양원)에 입소했어요.” 거기서 얼마 동안 있었는지 물었더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올 때 “발바닥행동이라고 시설조사 온 사람하고 상담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했다. 왜 나오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시설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고 했다. 시설에 살면서 제일 힘든 기억이 뭐였냐는 질문에는 “맞은 거”라고 답했다.

 

“겨울이었어요. 비 오는 날이었는데, 옥상에 일렬로 세워서 위, 아래 옷 다 벗고. 그때 누가 지갑을 훔쳐갔다 그래 가지고요. 그 때문에 단체로 기합을 받았어요. 엎드려뻗쳐 해서 쇠파이프로 엉덩이를 때렸어요. 몇 대 맞고 나서 쓰려졌어요. 겨울인데, 비가 많이 왔는데, 너무 많이 맞아 가지고.”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일 못 한다고 발길질로 차는 남자 직원도 있었고, “엄마”라고 부르는 생활지도사들이 “빗자루로 때리고, 밥 먹고 남기면 또 때렸다.” 은혜요양원에서는 남자 생활지도사 없이 “엄마”들이 남성 장애인들까지 돌봤다. ‘여성’이 ‘남성’을 돌보았던 것에 대해 그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엄마들이 다 씻기고, 닦이고 해요.”라고 말했다.

 

“열 명 있는 방에는 엄마 2명이 돌아가면서 있었고, 다섯 명 있는 방에는 엄마 한 명이 돌봤어요. 방 1개 화장실 1개 큰 장롱이 있었고. 화장실은 여기(은평센터) 화장실보다 좁았어요. 작은 욕조가 있었고.”

 

그런 “아이들”에 비해 말도 잘 통하고 체력도 좋은 정우 씨에게 시설은 농장 일을 시켰다. 그곳에서 정우 씨는 배추 밭에 물주고, 삽질하고, 땅 파는 일을 했다. 밭 위쪽으로는 축사가 있어 거기 일도 했다.  

 

“밭 위로 쭉 올라가면 소 축사가 있어요. 소 밥도 주고, 풀을 낫으로 베서 큰 리어카로 실어 날랐어요. 밀기도 하고 끌기도 했어요. 여물을 끓여서 삽으로 퍼 줬어요. 소가 한 백 마리 됐어요. 한번은 울타리가 무너져서 소가 탈출한 적도 있어요. 산으로 막 도망갔어요. 또 한번은 친구가 축사에서 청소하는데 소가 들이받아서, 전기충격기로 죽인 적도 있어요.”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설 ‘노역’ 얘기가 사뭇 충격적이었다. “경운기도 몰았어요”라는 말에 “농장 해도 되겠네요?”라고 가볍게 물었다.

 

“싫어요. 안 하고 싶어요. 지금도...”
- 그때 농장일이 많이 힘들었나 봐요?
“쉬는 시간이 있긴 했는데. 힘들었어요. (잠시 망설이더니) 그런데 시설에 대해서 나쁘게 쓰지 말아 주세요.”
- 네? 왜요? 시설에 대해 나쁘게 쓰면 왜 안 돼요?
“전에 인권영화제 할 때 어떤 신문사에서 와서 인터뷰했었는데, 그때도 제가 나쁜 얘기 나가면 안 좋을 거 같다고 전화했었어요.”
- 정우 씨, 지금은 시설에서 나와 살잖아요. 그런데 왜 시설에 대해 나쁜 얘기 쓰면 안 돼요? 뭐가 걱정되세요?
“직원들이 발로 차고 그랬어요.” 

 

탈시설하고 나서 두어 번 친했던 “아이들”과 “엄마들”(빗자루로 때렸던 엄마들은 나가고 없었다)을 보러 시설에 간 적 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정체 모를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모른다. 정우 씨에게 시설은 양면적이었다. 두려운 곳이지만 자기 집이었다. 2013년, 탈시설하여 체험홈에 살다가 시설에 돌아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골목에서 무서운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나서다.

 

“골목에서 한판 붙을 뻔했어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데, 이리 와 보라고, 돈 좀 있냐고 했어요. 그때 시설 다시 가겠다고 했어요.”

 

서울에 같이 나가 살자

 

무섭지만 자기 집이었던 시설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2013년 겨울 탈시설한 유정우 씨는 2014년 2월 24일 두 살 연상의 이상분 씨와 결혼했다. 이상분 씨와는 은혜요양원 시절부터 자타가 공인한 연인 사이였다. 첫 만남의 기억을 물었더니 “단발머리였다”고 대답했다.

 

“4층이 남자 생활실이고, 3층이 여자 생활실인데 보통 ‘엄마’들이 남자들은 못 내려오게 해요. 그런데 나는 6층에서 기름을 가져다 각 층에 있는 보일러에 기름 넣는 일을 했어요. 3층 보일러실에 기름 넣어 주러 갔다가 딱 봤어요. 운동할 때 만나고, 같이 산책하고, 그때부터 엄마들도 ‘너희들 연애하는구나’ 했어요. 상분 씨가 학교 다니는 아이들 차 태워 보내는 일 했는데, 그때 같이 차 타고 갔어요. 밤에는 같이 못 있으니까 낮에 오래 같이 있었어요. 주로 손잡고 산책했어요. 그때는 폴더폰이었는데,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어요. 서울에 같이 나가 살자고 했어요.”

 

정우 씨는 결혼과 함께 ‘독립’했다. 정우 씨에게 체험홈을 소개하고 자립생활을 지원해준 단체는 신용산에 있는 ‘중증장애인 독립생활연대’였다. 이상분 씨는 은평센터 주선으로 은평구의 체험홈에서 생활했다. 신용산에 있던 정우 씨는 틈만 나면 상분 씨의 체험홈에 놀러 갔고 마침내 2014년 둘은 은평구 대조동의 영구임대주택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결혼한 지 3년 됐는데 여전히 달달한지, 혹시 좀 지겨워지지는 않았는지” 농담처럼 물었다. 

 

“지겨워지지는 않았고. 처음 나왔을 때 좀 싸웠어요. 둘 다 답답해서. 상분 씨가 말을 잘 못 해요. 그래서 저도 답답하고, 제가 못 참고, 핸드폰을 던졌는데, 상분 씨가 맞았어요. 상분 씨도 소리치면서 저를 때렸어요. 왜 화내느냐고, 왜 문을 쾅 닫고, 핸드폰 던졌냐고. 둘이 보라매공원 복지관(서울시립지적장애인복지관) 가서 상담받았어요. 한 사람씩 번갈아 그림 그리고 나서 둘이 같이 들어오라 해서 얘기했어요.”

 

부부의 일상은 아침 7시 알람 소리로 시작한다. 아침밥은 먹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상분 씨가 좋아하는 아침 드라마를 본다. 요즘엔 ‘훈장 오순남’을 즐겨본다. 실명으로 시각 장애인이 되는 사람 얘기도 나온다. 8시에 상분 씨는 마포의 보호작업장으로 출근한다. 거기서 수첩, 골프공, 마스크 등을 포장하는 일을 하다 5시에 퇴근한다. 상분 씨가 보호작업장으로 출근하면 정우 씨는 은평센터로 출근한다. 그는 센터에서 복지일자리 사업으로 청소, 비품 관리 일을 한다.

 

정우 씨는 가끔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는 소소한 모험을 즐긴다. 신용산 체험홈에 있을 때 당고개역까지 갔다가 차가 끊겨서 신용산까지 걸어서 돌아온 적도 있다. 앞으로 ‘지하철로 어디까지 가 봤니?’ 여행을 “와이프”와 함께 할 생각도 있다. 결혼식 끝나고 은평센터 직원과 함께 부산으로 신혼여행 갔는데, 그때 참 좋았던 해운대를 두 사람만의 힘으로 꼭 다시 가고 싶다.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조모임 ‘위캔두잇’에서 만든 피켓과 함께. 유정우 씨는 ‘위캔두잇’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피플퍼스트는 서로 소개하고 도와주는 것

 

은혜요양원 시절, 상분 씨와 연애했던 얘기를 하던 중에도 정우 씨는 자신의 장기자랑을 깨알같이 했다. 자매결연 맺은 고등학생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에 상분 씨가 반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처음 2015년 피플퍼스트 대구대회에 참가한 정우 씨는 개인 장기자랑 시간에 춤과 노래 실력을 맘껏 뽐냈다.

 

“‘남행열차’와 ‘안동역에서’ 두 곡을 불렀어요. MR이라고 반주만 나오는 거 있는데 그거 틀고 무대 위에서 노래했어요.”

 

직접 짠 안무에 구성진 목소리로 트로트 두 곡을 열창했다. 박수를 많이 받았다. 정우 씨보다 더 잘한 사람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제가 쭉 봤는데, 제가 제일 잘한 거 같았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명함 나누는 시간에 그는 유독 많은 사람들, 특히 일본에서 온 참여자들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듬해 2016년 피플퍼스트 경남대회에서는 참가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개인별 장기자랑 대신 지역별 장기자랑을 했다. 자신의 개인 기량을 뽐낼 수 없어 정우 씨는 아쉬웠다. 대신 OX 퀴즈 때 무대 위에 올라가 고양이, 강아지, 원숭이 등 동물 흉내를 내서 다른 사람들이 맞추게 하는 역할을 했다. 워낙 무대 체질이라 자유발언 시간에도 올라가 마이크 잡고 얘기했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피플퍼스트 본대회뿐만 아니라 피플퍼스트를 준비하는 워크숍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작년 피플퍼스트 워크숍엔 세 번 정도 참여했고, 지역대표가 아님에도 준비위원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워크숍의 어떤 활동이 기억나는지 물었다.

 

“사진 찍은 거. 피켓 만드는 거. 피켓 만들고 나서 무대 올라가 발표한 거, 커다란 종이에 뭘 하면 좋을지 의견 쓴 거 기억나요.”

 

피플퍼스트가 주최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도 참여했다. 정우 씨에게 피플퍼스트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서로 소개하고, 서로 도와주는 거.”

 

지금 그는 은평지역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위캔두잇’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 피플퍼스트 자조모임 ‘해피투게더’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혹시 정우 씨도 지역위원장이 되고 싶진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없다”,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답했다.

 

정우 씨는 “도와준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피플퍼스트 대회가 정우 씨한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물었더니 엉뚱하게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휠체어 밀어주는” 얘기를 했다. 정우 씨 같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또 “휠체어 밀어주고 올려주는” 얘기를 했다. 신체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는 실제 시외버스 이동권 집회에도 참여하고, 장애인활동보조교육도 이수했다. 발달장애인이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 살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질문을 풀어 물으니 그제야 “사회생활하는 거, 지하철 타는 방법, 어디 가면 뭐가 있는지 그런 거 가르쳐 주고 훈련시켜 주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나와서 살 수 있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그런 도움이 있으면 지금도 은혜요양원 같은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도 지역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는 중증·정신장애인수용시설 실태조사의 조사원으로 시설 조사에 참여했다. 약에 취해 침 흘리며 허공만 응시하던 시설 거주인을 떠올리며, 난 어떤 대답이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네, 나와서 살 수 있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시설은 산속에 있어요. 공기가 안 좋아요. 바람 불면 가축 분뇨 냄새가 지독해요. 모기도 많아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자유롭게 나갔다가 들어오고 하는 게 안 돼요.”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한다. 은혜요양원 시절에도 삼척FC 팀에서 뛴 적 있다. 신용산 체험홈에 있을 땐 지역 축구 동호회 ‘한마음 축구회’를 찾아서 가입했다. 대조동에 신혼집을 마련한 후엔 ‘대조축구회’에서 일요일마다 경기를 한다. 서울시립지적장애인복지관 다닐 때 지적장애인 축구팀이 있는지 문의하기도 했지만 정작 가입 의사를 물었을 때는 싫다고 했다. “혹시 실력 차이 때문에 그러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꿈을 물으니 축구선수라고 대답했다.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나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그에게 장애인들만으로 이뤄진 축구팀은 성에 차지 않을 거다. 정우 씨는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반 축구팀에서 현재 든든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앞으로 그는 가정에서, 은평구 자조모임에서, 서울 피플퍼스트에서, 나아가 전국 피플퍼스트에서 ‘장애인이기 전에 먼저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키퍼가 될 거라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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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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