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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음들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마이너의 서재]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등록일 [ 2017년11월01일 18시22분 ]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출판사, 김승섭, 2017.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한 그는 니체를 읽고 루쉰을 읽고 카프카를 읽었다. 그러나 중증장애에서 오는 무력감이 그를 번번이 무너뜨렸고 술에 삶을 의지토록 했다. 반지하에 홀로 살던 그는 작년 4월의 새벽,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숨졌다. 또 다른 이는 독감이 폐렴으로 진행되어 죽고, 또 다른 이는 돈이 없어 주저하는 사이 맹장염을 복막염으로 키워 수술 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해 불타 죽고, 호흡기가 빠져 죽은 장애인도 있다.

 

비마이너에 들어온 지 5년 반, 이곳에 있으며 내가 맞이한 죽음들이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장례식이 잦다. 통계를 가지고 있진 않으나 경험상 그랬다. 대부분의 죽음은 번개처럼 급작스러워 황망했다.

 

최근에도 죽음이 잇따랐다. 지난 7월엔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숨졌다. 노숙인 문제로 시작해 장애운동 투쟁 현장을 성실히 담아온 그는 최근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한 달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8월엔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로 부모운동을 해온 장애인부모운동가 박문희 씨가 심장마비로 숨졌으며, 9월엔 중증장애인 활동가 두 명이 숨졌다. 연이은 죽음에 장애운동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난 이 죽음들이 ‘자연사’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물증 없이 심증뿐이지만. 죽음이 찾아오기 전, 몇 차례 몸이 신호를 보냈을 텐데 그들은 그 신호에 응답할 시간도, 돈도 없었을 것이다. 쫓기는 일정에 병원 갈 시간조차 없었을 그사이 병이 육신을 파먹었다. 다른 인권운동 현장이 그렇듯 장애운동 현장도 밤낮없이 일하지만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가난하다. 게다가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경우, 장애는 가난과 함께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데 가난과 장애, 합병증이 들이닥치는 재난 같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몸을 조여 오는 고통들을 충분히 돌보기 어렵다.

 

그 무참함 속에서 이 책을 펴들었다.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쓴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사회역학자이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그는 소개한다. 사회역학은 2000년에 첫 교과서가 나오고, 불과 10여 년 전부터 하버드대를 비롯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한 신생학문이다.

 

책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차별과 같은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를 과학적 데이터로 제시한다. 차별과 폭력을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하고 언어화하지 못해도 몸은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2012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중 학교 폭력에 대한 문항에서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학생들의 우울증상 유병률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여학생’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학생들의 유병률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학생’들의 우울증상 유병률은 모든 집단 중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는 말이 남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처럼 남자가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은 ‘강한 남자’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인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신체적·정신적 고통(질병)이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질병의 원인을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한다. 책은 이러한 사회에 질병의 책임은 없는지 물으며 질병의 ‘원인의 원인’에 대해 탐구한다.

 

고통은 평등하게 발화되지 않는다. 어떠한 고통은 발화되지만, 어떠한 고통은 사회적 힘에 억눌려 고통의 당사자조차 이를 고통이라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고통에도 ‘사회적 승인’이 필요하다. 고통의 발화 여부가 사회 계층, 성별마다 다르다면 ‘고통의 주체’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운동이 되는 걸까. 그렇게 싸우려면 이 고통을 증명할 무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과학적인 데이터 말이다. 그는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만나 그들 건강에 대해 연구하며 그러한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책을 덮으며 지난 시간 동안 마주한 영정 속 얼굴들이 떠올랐다. 장애인은 왜 이렇게 아플까. 왜 이렇게 많이 죽을까.

 

장애가 있는 몸은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노동하기 어려우니 빈곤할 수밖에 없고 돈이 없으니 병원에 가기도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에 가려면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 타기도 힘들고 대기시간만 기본 2~3시간인 장애인콜택시 타기도 힘들다. 병원에 가더라도 의료시스템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고 의사들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자신이 아프더라도 고통에 대한 감지가 힘들다. 그렇다고 이를 조력할만한 사회적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물어본다. 장애인은 왜 이렇게 아프고 왜 이렇게 ‘쉽게’ 죽는가. 단지 장애 때문인가. 이 고통에 사회의 책임은 없는가.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12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제정됐으나 5년마다 하는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 수립 이외엔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채워져 있어 법률 이행에 대한 강제성은 없다. ‘할 수 있다’는 조항의 내용 또한 건강검진사업,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 지정 등 기본적인 의료처치에 대한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회의적인 응답만 자꾸 고개를 든다. 장애에서 오는 좌절감으로 술에 의지해 만신창이가 된 그의 삶/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건강’을 의료적 관점에 두고 읽을 때와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 대한 문제로 접근할 때, 우리는 전혀 다른 해법을 도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 건강’에 대해 우리는 ‘질문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이 황망한 죽음들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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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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