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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이즈로 죽지 않는다. 바로 당신의 차별과 혐오로 죽는다.
용인 여중생, 부산 여성 에이즈 감염인 언론 보도에 부쳐
등록일 [ 2017년11월07일 19시05분 ]


최근 한국사회에 에이즈 광풍이 몰아쳤다. 용인 여중생 에이즈 감염인(이하 감염인)과 부산 여성 감염인이 성매매하다 적발됐다는 소식에 언론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공포를 확산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마치 누가 더 빨리 에이즈 공포를 조장하고 혐오를 부추기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사들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녀들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공격했다. 댓글들도 가세해 무지와 공포, 심지어 적개심까지 드러내며 혐오의 댓글 폭탄을 쏟아냈다. 기사들을 읽다가 가슴에 생채기가 나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익숙하다. 시간을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소재가 되었던 그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여수에서 여성감염인이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언론이 들끓었다. 제목도, 내용도, 댓글도 지금과 다를 게 하나 없다. ‘여수 에이즈 여성 불특정다수와 성매매, 에이즈 확산 우려’, ‘에이즈 감염자 관리 구멍’, ‘여수시민들 에이즈 공포에 떨어’ 등 에이즈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에는 마치 어떤 공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기사들과 판박이다. 감염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기사들이 그녀들을 성 매수 남성 모두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 대역죄인’으로 몰고 가고 있다. 다른 점을 찾자면 여수에서 부산으로 바뀐 것뿐이다. 

 

15년 전에도 에이즈는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에이즈 치료는 더욱 진화하여 양성 확진을 받아도 약만 잘 먹으면 50년 이상 자연사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금 36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에이즈예방법도, 치료법도 없어 ‘걸리면 죽는’ 공포의 병이라던 그 시기로 말이다.

 

‘돈 주고 죽음을 샀다’는 기사는 정말 무지와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의 끝장 판이었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여성 감염인의 성매매에 관해서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도했다.

 

조금만 관심 두고 찾아보면, 의학적 감염 확률이나 예방법 등의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성관계 시 감염 확률은 1% 미만으로 콘돔을 사용하면 이는 더욱 낮아진다. 감염인이 약을 먹어 바이러스 수치가 150 이하면 감염 확률은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져,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감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신체 조건상 여성이 남성에게 감염시킬 확률은 낮고, 남성이 여성에게 감염시킬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정보 확인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만약 기자들이 이런 정보들을 숙지하고 기사를 썼더라면 공포를 조장하는 저런 기사들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돈 주고 죽음을 샀다’는 기사는 안 썼을 것이다.

 

이성을 잃은 기사엔 거의 광분 상태에 가까운 댓글들이 달렸다. 마치 중세시대 마녀사냥처럼 그녀들을 단두대에 올릴 태세였다. 그들이 광분하는 데에는 이른바 ‘깨끗한 몸’을 제공하지 않음에 대한 분노가 내포되어있다. 그러나 애초에 그녀들의 ‘깨끗하지 않은 몸’은 성을 매수하고 예방하지 않은 ‘그들이’ 만들어 낸 것 아닌가. 그녀들은 오히려 성매매하다 질병에 걸린 피해자였다.

 

한국사회에서 HIV감염인으로 살려면 낙인과 차별, 인권침해를 감당해야 한다. 에이즈에 덧씌워진 ‘문란함’이란 낙인은 감염인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병에 걸린 내가 죄인’이라며 말 한마디 못하고 참는다. 나는 참지 말라고, 병에 걸린 건 죄가 아니라고 설득하지만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는다.

 

에이즈 인권 활동을 해온 지난 14년, 인권은 없고 공포와 낙인으로 존재하던 에이즈를 인권의 문제로 제기하며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온 시간이었다. 그렇게 에이즈에 덧씌워진 낙인과 차별을 벗기고 인권을 씌우려고 힘겨운 투쟁을 해왔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HIV감염인에게도 인권이 있어요’라는 우리의 외침에 화답하고 연대하는 인권 활동가들이 늘어났으며, 공포를 조장하고 감염인 감시만을 주장하던 언론도 인권문제로서 접근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권 활동에 힘입어 감염인 당사자들이 모이게 되었고 이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이즈 광풍에 그들의 입은 다시 닫혀버리고 말았다. 그 긴 시간, 힘겨웠던 우리의 투쟁도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허탈하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수백 번 떠들었던 얘기를 또다시 해야겠다. 허탈함에 빠져버린 기운을 다시 짜내고 짜내 외친다. 에이즈는 전염력이 약하고, 감염경로도 확실해 예방하기 쉬우며, 일상생활에선 전염되지 않으니 감염인과 같이 좀 살자고! 더 화나는 건 보건당국이 해야 할 일을 감염인 당사자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 하라고 질병관리본부가 만들어진 건데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있다.

 

에이즈는 무섭지 않다. 치료 가능하고, 약만 잘 먹으면 아플 일도 없는데 뭐가 무서우랴! 무서운 건 낙인과 차별이다. 에이즈를 이유로 아픈 사람의 치료를 거부하고, 일 할 권리를 뺏고,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등의 차별은 감염인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기에 이런 광기 어린 에이즈 기사까지 더해지면 ‘인권’은 단칼에 날아가 버리고, 낙인과 차별, 혐오는 더욱 공고해진다. 

 

감염인은 에이즈로 죽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감염인을 죽이는 거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 절망하는 감염인이 치료를 포기하고 세상과 등을 돌림으로써 말이다.

 

지금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낙인과 차별에 저항하며 싸우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런데 이런 보도들로 화병에 걸려 죽을 것만 같다. 제발 광기를 멈춰라. ‘사람’의 문제로써 이를 들여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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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브리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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