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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랑'은 장애인의 권리를 잊게 만든다
아시아경제 기사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장애인 사랑' 결실 맺나?" 보도를 보며
등록일 [ 2017년11월07일 17시31분 ]

아시아경제의 기사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장애인 사랑' 결실 맺나?"의 일부.

 

우리는 어떤 행위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을 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데이트폭력을 더 이상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듯, 상대를 ‘시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랑이라고 포장할 수 없다. 그것은 우선 평등한 개인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나아가 사랑은 두 주체적 인간의 상호작용이어야 하지만 ‘시혜’는 일방향적이다.


여기, 그런 기사의 제목이 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장애인 사랑’ 결실을 맺나?”라는 제목이다. 이 기사는 “'장애인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이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를 통해 …… 발달장애인들의 실태를 파악해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 보다 체계적인 발달장애인복지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이 기사는 무엇이 잘못 됐을까? 두 가지다. ‘장애인 사랑’과 “‘장애인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이라는 대목이다. 행정가가 응당 해야 할 일을 ‘사랑’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내포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의무가 아닌 개인의 자유의지에 해당한다. 이것이 만약 사랑이라면, 조길형 구청장이 장애인을 사랑하지 않아서 복지정책을 세우지 않아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행정가의 의지에 따라 '안 줘도 그만'인 것은 권리가 될 수 없다. 행정가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지, 타인의 권리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기사의 내용처럼 그의 ‘장애인 사랑’을 강조한다면, 결국 그가 ‘베푸는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권리가 아니게 되는 셈이다.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이라는 내용도 같은 이유로 문제다. 물론 정치인이 한 영역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좋은 일이다. 전문성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 중 하나이며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근거이고 유권자는 그 모습을 보고 표를 던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남다른 애정’이라는 표현은 전문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한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시민의 권리를 표현할 뿐이다. 전수조사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복지정책을 설계하는 일이 조길형이라는 한 개인에 의해서 행해지는 선행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사실 이 기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과 관련한 기사를 읽다 보면 사랑, 은혜 등의 단어로 쓰인 것들이 많다. 일례로 위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올해 4월에 쓴 기사는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의 발달장애인 사랑 눈길’이라는 제목이 달려져 있고, 타 언론사는 영등포구에 발달장애인의 일터가 설립된 일을 ‘훈훈한 사랑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보통 ‘미담’이라고 여기는 내용들을 뜯어보면 대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내용이다. 경찰이 신호등을 다 건너지 못한 노인을 반대편 인도까지 데려다 줬다는 등의 이야기는 ‘훈훈’하다. 하지만 이 공통된 이야기들을 달리 생각해야 한다. 왜 항상 사회적 약자는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지, 무엇 때문에 항상 ‘약자’로 명명돼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따뜻함’을 내세운 기사들은 이것을 놓치고 있다.


오히려 기자는 신호등의 신호는 왜 이렇게 짧아서 파란불이 빨간불이 될 때까지 노인이 건너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사건의 현장에는 모든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가 타인의 선의에 기대야만 하는 불합리한 조건들을 지적하지 않는 이상 사건은 되풀이 된다. 기자의 과업 중 하나가 잘못된 문제의 순환고리를 끊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면 ‘미담’이나 ‘훈훈’의 제목을 단 기사는 그만 써야한다.


그런데 이 기사의 소스가 되었던 보도자료에는 아주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되어 있다. ‘영등포구,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라는 제목과 내용 그리고 공무원이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진이 전부다. 그 안에는 기사제목처럼 ‘사랑’이라거나 ‘장애인 아버지’ 따위의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차라리 기사 제목을 보도자료 제목과 같이 차갑게 쓰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사랑으로 포장된 시혜의 시선도 보지 않아도 되고 정보도 얻는, 좋은 기사였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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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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