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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어났니”로 시작해 “네가 무슨 애를 키워”까지… 여성장애인 가정폭력史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전국 여성장애인 432명 대상으로 가정폭력 실태조사
장애유형별로 가정폭력 내용도 달라… 장애 전문 지원기관 절실
등록일 [ 2017년11월09일 19시40분 ]

“어릴 때 오빠나 부모님이 절 부를 때면 물건이 가끔 날라 왔어요. 어느 날은 수건, 어느 날은 책, 신문. 그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어요.” (농인 A)

 

“중도 실명 후 맹학교 고등부 졸업하고 점역·교정사 3급 자격 취득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갇혀 지낸다는 거예요. ‘집 나갈 이유가 없다’는 아버지 반대 때문에. 활동보조인을 이용해 산책하고 싶지만 이조차 집에서 허락하지 않아 몸이 많이 약해져서 이젠 5분도 채 걷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버지는 남들로부터 ‘장애여성인 딸을 잘 키우는 훌륭한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데요.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방법을 제안했는데 통화 마지막에 ‘아버지 험담한 나쁜 딸이 되었다’면서 체념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어요.” (전인옥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상임대표)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은 배우자에 의한 ‘부부폭력’으로 알려졌지만 여성장애인의 경우엔 다르다. 실태조사 결과, 여성장애인 절반 이상은 10대 때부터 ‘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 가족으로부터 언어적·정서적·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으며, 가해 행위자의 대상 또한 배우자를 비롯해 부모, 형제·자매, 친인척, 이웃 등 폭넓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아래 여장연)은 전국 여성장애인 432명을 대상으로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참여 연령으로 보면 50대가 130명(30%), 40대가 107명(24.7%)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장애 유형별로는 지체장애가 173명(40.1%)으로 가장 많았으며 발달장애가 56명(13%)으로 뒤를 이었고, 청각장애, 시각장애, 뇌병변장애가 각 10% 수준이었다.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에 대한 전국 실태조사는 2006년 여장연이 실시한 조사 후 두 번째다.

 

여장연은 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포럼’을 열고 실태조사 결과 발표와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픽사베이
- 여성장애인, 10대 때부터 “너 왜 태어났냐”며 언어적 폭력 경험

 

가정폭력을 최초로 경험한 시기는 10대가 39.6%, 20대가 27.3%로 10~2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장애아동은 10대 때부터 부모나 형제자매로부터 ‘너 왜 태어났냐’는 이야길 많이 듣는다“면서 “이는 가족 내 18세 미만 장애아동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학대 및 방임과 통제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현재 가정폭력을 부부폭력으로 한정해 조사하는 것을 확장하여 ‘자녀 학대’를 별도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가해자도 전체적으로 보면 배우자(32.1%) 폭력보다는 아버지(24.6%), 형제·자매(10.7%), 어머니(9.6%), 시부모·식구(7.5%), 친인척(4.3%) 등 가족원 폭력(67.9%)이 월등히 높았다. 서 연구위원은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가해자는 전체 가족 구성원들로 매우 다양한데 이는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드러낸다”면서 “여성장애인은 결혼 후에도 친인척, 시부모와 그 식구들에게도 무시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전 국민 대상으로 이뤄진 가정폭력실태조사에서의 ‘가족원 폭력율(3.8%)’보다 14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여성장애인의 가정폭력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44.4%)가 가장 높았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7.2%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서워서’(28.7%), ‘창피해서’(18.8%)로 2006년 결과와 유사했다. ‘가정폭력으로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13.6%로 2006년(18.9%)보다 낮아진 반면, 가정폭력으로 실제 경찰에 신고한 경험은 12.8%로 2006년(9.3%)보다 높아졌다. 상담소에서 상담받은 경험은 12.3%로 2006년(14%)보다 소폭 낮아졌다. 여성장애인은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불안·우울’(42.9%)하거나, ‘평소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37.7%)하고, ‘불면증이 심하고 악몽에 시달’(29.5%)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 농인과 청각장애인, 학령기 대부분 보내는 농학교․맹학교에서도 심각한 폭력 경험

 

장애 유형에 따라 폭력 내용도 달랐다.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가정폭력 경험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아동기 가정폭력 경험이 매우 심각했으며 가정(당사자 부모와 형제자매, 배우자의 부모와 친척) 이외에 맹학교, 농학교 등 기숙사 생활에서의 폭력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시각 여성장애인의 경우, 안마시술소 등에서 일할 때 교사, 선후배, 동료 등에 의한 성적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은 강제불임, 이성교제 제한 등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문제가 심각했으며, 기혼 여성장애인의 경우엔 친권 박탈, 양육권 침해 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농인(청각장애인)의 경우엔 수화언어(아래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손을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 수어 사용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가족에 의해 감금당하거나 팔이 묶이는 경우도 있었으며, ‘말하라’며 입을 손으로 집히거나 맞기도 했다. 음성으로 말하지 못하고 손을 이용해 의사소통한다는 이유로 가족구성원에서 놀림 받거나 무시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왜 이렇게 태어났냐”는 언어폭력을 가족들에게 수시로 당해야 했다.

 

농인의 경우, 농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그곳에서도 선후배, 동료들에 의해 성추행과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 이러한 농학교 생활로 여성장애인은 ‘부모로부터 농학교 기숙사로 보내져 버려졌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응답했다. 많은 여성농인들은 부모로부터 이성 교제에 대한 제약부터 결혼 반대, 심지어는 강제 이혼을 당하기도 했으며, 결혼한 경우엔 의사소통 문제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여성들은 동네에서 ‘바보’라는 말을 수시로 들으며 살아왔다. 이들은 ‘금전적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타인이 수급비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서 연구위원은 “농인이나 청각장애인은 가정폭력 대처방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농인의 경우, 농인 전담 상담사가 없어 가정폭력상담소엔 가지 않고 교회 가서 상담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얘기하는 정도에 그쳤다. 좁은 농사회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가 노출될 수 있다는 생각에 수화통역센터에 상담을 요청하거나 수화통역사와 상담소에 같이 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시각장애인은 가족 이외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희롱을 많이 당하는 편이었지만 성희롱이 소통하기 위해 몸을 만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성폭력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 또한, 경찰에 이야기해도 정확한 상황 설명을 할 수 없어 신고조차 할 수 없으며, 만약 신고한다고 해도 행위자가 누군지 몰라서 잡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해 신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서 연구위원은 “장애여성에게 일어나는 가정폭력에 대한 개념 정의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애 특성상 맹학교, 농학교 기숙사에서 학령기 전부를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시설 폭력에 해당하기도 하나 장애로 인해 ‘어쩔 수 없어’ 학령기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니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 해외에서 가정폭력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반영해 가정폭력특별법 개정으로 ‘가정구성권’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교육, 장애인지적 사법체계 마련을 비롯해, 5년마다 정기 조사를 통한 데이터 구축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포럼’을 열고 실태조사 결과 발표와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 여성장애인 전문 가정폭력상담소와 쉼터, 적극 확대해야

 

이상미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장은 “여성장애인가정폭력상담소와 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는 전국에 각 1개뿐이고, 장애인가정폭력보호시설은 3개밖에 없다”면서 “가정폭력보호시설이 없는 지역에선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쳐있는 내담자를 타 지역 보호시설로 연계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중증장애인이 입소할 수 있는 쉼터도 전혀 없다”면서 “비장애여성의 경우, 일할 수 있으면 설거지라도 해서 통제받는 쉼터를 벗어나 독립하려고 하나 장애여성은 경제적 독립이 어렵기에 쉼터가 더욱 필요하다”며 시설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종사자 처우 개선으로 인한 업무 효율성이 내담자와의 질적인 지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열악한 처우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상담소 직원은 호봉제 인정이 되지 않아 여전히 최소 임금을 받고 있다. 업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통해 퇴직률, 이직률을 낮추고 전문성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지적에 정보희 여성가족부 복지지원과 사무관은 “가정폭력상담소 국비 지원 기관이 93개소인데 2010년부터 지원 시설 수가 늘지 않고 있으며, 여성장애인 대상 시설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면서 지적한 부분들을 인정했다. 이어 “이제까지 장애인상담소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국가에서 추가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됐는데 국회 계류 중인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에선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특화하여 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되어 (통과될 경우)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에, 장애인상담소를 확대하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시설 퇴소 후 가정폭력이 발생한 원가족으로의 복귀를 막기 위해 자립지원금 지원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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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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