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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던지는 물건, 그게 날 부르는 목소리였다.
청각장애여성이 겪는 가정폭력사
등록일 [ 2017년11월13일 15시07분 ]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전국 여성장애인 432명을 대상으로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실태조사 결과는 지난 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포럼’에서 발표됐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은 배우자에 의한 ‘부부폭력’으로 알려졌지만 여성장애인의 경우엔 10대 때부터 ‘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 가족으로부터 언어적·정서적·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으며, 가해 행위자 또한 배우자를 비롯해 부모, 형제·자매, 친인척, 이웃 등 폭넓으며, 폭력의 내용도 장애 유형마다 다릅니다. 당일 발표된 청각장애여성이 겪는 가정폭력을 담은 글 ‘도움되지 않는 폭로’를 기고글로 싣습니다. 이 발표문은 한국청각장애여성회의 이금란 사무국장과 홍정예 활동가가 공동 작성했습니다. _ 편집자 주

 

우리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는 시골에서 일반학교를 다녀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다녔지만, 중·고등학교 땐 농학교에 가서 듣지 못하는 우리들끼리 마냥 즐겁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하나, 둘 결혼하고 동창회 때 만나면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하며 흉도 보고,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중 우리가 겪은 대표적인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이건 내 개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다.
    
어릴 때, 오빠나 부모님이 날 부를 때면 가끔 물건이 날아왔다. 어느 때는 수건, 어느 때는 책, 어느 때는 신문 등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마당 담 너머에 있는 딸기밭에서 일하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 등짝을 때린다. 깜짝 놀라니 엄마는 전화도 못 받느냐는 뜻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신다.                        
 
엄마는 내게 ‘오빠 늦지 않게 밥 먹여 학교 보내라’하고는 친척 집에 가셨다. 밤새 마루에 있는 괘종시계를 쳐다보다 난 깜빡 잠이 들었다. 오빠는 ‘너 때문에 학교 늦었다’며 내게 책가방을 던진다.    

  

임신해서 결혼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시어머니는 ‘너희를 통해선 아이가 말을 배울 수 없으니 대신 키워주겠다’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난 아이를 안고 잠 잘 수도 없었고, 오직 기저귀 빨고 청소하고 밥하고, 외출조차 허락받아야 했다. 이혼하겠다고 하니 자식 두고 어딜 가냐며 일만 시켰다. 아마 그들에게 난 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일찍 결혼한 한 언니는 남편 폭행으로 팔도 부러지고 온몸 여기저기 많이 다쳤지만 ‘아이 낳으면 괜찮아진다’하여 참고 살았다. 그러나 출산 후 나아지긴커녕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남편을 피해 도망가도 남편이 계속 찾아왔다. 결국 포기하고 살다가 60이 넘어 이혼한 뒤 가끔 자녀들하고만 만난다.

 

교회 친구가 어느 날, 눈 수술을 받았다. 남편에게 맞을 때마다 눈을 자주 맞아 안 보일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 남편은 알코올 중독으로 결국 먼저 사망했다.

 

교회의 한 언니는 글도 잘 쓰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편이고 얼굴도 예뻤다. 혼처도 좋은 곳만 들어왔는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야위어 갔다. 웬일인가 했더니 엄마가 모든 혼처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40이 넘어 겨우 결혼했는데 배운 것 없이 김을 파는 바닷가 사람과 결혼했다. 그 엄마는 딸을 너무 사랑해서 고생할까 봐 시집 보낼 수 없다며 평생 지키겠다고 했지만, 결국 결혼 당사자는 사랑도 없이 엄마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엄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버린 거다. 그 언니는 항상 말했다. “난 안 좋아. 그런데 엄마가 좋아해. 그러니 괜찮아!”          

 

학교 인근에 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이상하게 몸이 많이 불었다. 몸이 안 좋은가 했더니 오빠와 다툼 후 집을 나와 ‘임신 안 하는 약’을 먹으며 생활해서 잘못되었단다.

 

ⓒ픽사베이

나는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들 무엇이 달라질지, 아무 기대도 할 수 없다. 과거 이야기 말고, 이젠 여성장애인 역량강화지원센터운영 방안이나, 여성장애인지원법 제정 등 무엇을 어떻게 해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 하는 여성들도 이 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다. 장애 정책을 수립할 땐 장애 유형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 부모는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매우 답답해하며, 희망 찾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부모가 된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는 것이다. 연구하는 이들은 우리 일생에 있었던 일들을 연구 자료로 수집하고 분석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우리의 삶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공론화는 필요하다. 그래, 우리에겐 숱한 가정폭력이 있었다. 그런데 밝혀서 뭐가 변하는데? 우리에겐 기초적인 교육 지원도 없었고, 설령 교육받았다고 한들 일할 곳도 없었으며, 힘들게 일자리를 구해도 제대로 된 인건비조차 받지 못했다. 이를 책임져야 할 공무원 누구도 우릴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소리를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며 손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당사자 인권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는 달인이지만 이에 대한 교육기회는 없다.

 

이런 이야길 한들 과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혹은 이를 변화시킬 힘과 마음이 있는 자 앞에,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 책상 끝자리에라도 우리들의 목소리가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지도 못할 거라면 우리끼리 떠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말할수록 감춰져 있던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그 수치심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무응답, 무변화, 이것이 청각여성장애인들이 입을 닫는 이유다.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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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각장애여성회 이금란 사무국장·홍정예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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