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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장님, 고 배정학 동지 잘 가요
활동보조노동조합 결성해 첫 위원장 맡아
열악한 마을활동가 처우… 처우 개선 넘어 건강 돌볼 수 있는 기반 마련해야
등록일 [ 2017년11월15일 09시53분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장님’이 되어 주었던 고 배정학 활동가의 추모제가 13일 저녁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걸 보면 완연한 가을이구나, 감나무를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상 속에서 작은 키에 곱슬머리, 동그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말했다. 벽화를 가리키며 벽화에 깃든 사연도 설명한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성북구 장수마을. 그는 장수마을의 대표, 고 배정학 활동가다.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으로 장애인 운동을 거쳐 마을운동까지, 한평생 바쁘게만 살아온 그가 지난 13일 오전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14일 저녁 7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한평생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고 배정학 활동가의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시작과 함께 상영된 짧은 영상 속에서 그는 장수마을을 거닐며 길 한쪽에 설치된 운동기구에 올라타 허리를 돌리고 팔을 돌리며 말갛게 웃음 지었다. 그렇게 건강 챙기라고 타박했건만, 북받쳐오는 서러움과 알 수 없는 원통함에 사람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1966년 6월 4일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그는 2004년 민주노동당 구리시위원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조직국장,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공대위 집행위원, 장수마을 대안개발연구모임 회원 등을 거쳤다. 2013년도엔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을 결성해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최근까지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마을운동을 하며 장수마을주민협의회 대표로 활동했다. 추모제 사회를 맡은 박학룡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너무 많은 활동을 하셔서 우리조차 활동 연혁이 정리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방향 고민하고, 장애운동을 조직해왔던 사람

 

고인은 최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성북센터)에서 장애인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했으며, 쓰러진 날에도 센터에 출근했다가 출근 직후 쓰러졌다. 이원교 성북센터 소장은 고인의 절친한 벗이기도 했다. 이 소장은 이마가 시뻘게지도록 울음을 참으며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2007년도에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제도화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단식 농성을 했는데 거기서 배정학 동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끝까지 제 옆을 지켜주면서 (울음) 저는, 사실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장애인 도와주러 오신 분이겠거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인이 성북구로 이사 오면서 둘의 인연은 본격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성북구가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받는 이들과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에게 고인은 “훌륭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동지였고 친구였으며 스승”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장님’이 되어 주었던 고 배정학 활동가의 추모제가 13일 저녁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원교 성북센터 소장이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박김영희 장애해당열사 단 대표도 고인과 만날 때면 서로 극존칭을 쓰며 장난 섞인 배꼽 인사를 하던 지난 모습을 떠올렸다. 서로 깍듯이 예의 지키는 사이였건만 어제 아침엔 이별이 너무 모질어서 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못돼처먹었다고. 정말 못돼처먹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인사도 없이 가냐.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에게 고인은 험난한 진보정치 세계를 알려준 사람이었고 그 길의 시작에서 믿고 손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신발 사이즈가 대체 몇이야, 마당발도 이런 마당발이 없겠다, 했어요. (웃음) 그는 사람도 많고 하는 일도 많지만 항상 가난했습니다. 항상 주머니가 비어있었고 자길 위해 뭘 해달라는 말은 못 하고 힘든 사람 위해서 하는 일만 했습니다. 정말 의지하고 싶을 때 이제 그는 이승에 없는 사람이구나,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데 배정학은 다른 아침을 맞는 건가, 나는 살아있어서 이 아침을 맞는 건가, 해 지는 하늘을 배정학은 어떻게 맞이할까… 오래, 아주 오래도록 보고 싶을 거 같습니다.”

 

최근 장애운동계엔 급작스러운 죽음이 잇따랐다. 지난 7월엔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숨졌으며, 8월엔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로 부모운동을 해온 장애인부모운동가 박문희 씨가 심장마비로, 9월엔 중증장애인 활동가 두 명이 세상을 떴다. 고인 또한 투쟁 현장에 뿌리 박고 단단히 있을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하루아침에 떠났다.

 

“오늘 재판받고 왔어요. 경찰이 증거라며 동영상 보여주는데 그 영상에 배정학 동지가 있어요. 그렇게 그는 언제나 투쟁 현장에 같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많은 활동가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 목표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월요일 아침에 전화 한 통화로 배정학 동지를 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어쩔 수 없는 이 운명이라는 것이, 그 떠남을 바라보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가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 사회적 약자 편에서 투쟁했고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며, 말만 한 게 아니라 함께 투쟁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정학 동지 잘 보내고, 함께 주위 살피며 힘차게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 열악한 마을 활동가 처우… 단순 처우 개선 넘어 건강 돌볼 수 있는 기반 마련해야

 

장애인 운동만큼이나 고인이 힘썼던 것이 마을운동이었다. 고인은 마을 활동가가 드문 시절 마을운동을 시작했고 그만큼 부침도 많았다. 홍수만 성북마을살이연구회 활동가는 “고인과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알게 됐는데 마을 운동이 시작하던 때다 보니 정책 등 기반시설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힘든 상황에서 서로 많이 의지했다”면서 “주민들의 수많은 이야기와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활동을 고민했는데 마을활동가 개인이 하기엔 어려워 마을살이연구회를 만들어 함께 활동했다”고 말했다.

 

홍 활동가는 “그를 너무 믿어서 그런지 그에게 너무 많은 걸 하자고 부탁드렸는데 그때마다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해보죠’라고 그는 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마을활동가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활동가의 노동권과 처우에 대해 지역에서 공론의 장을 만들자고 했는데 계속 같이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전했다.

 

장수마을주민협의회에서 고인과 마을운동을 했던 김윤희 활동가는 마을에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꾸리겠다고 약속했다.
 
“장수마을 세입자로 살다가 어느 순간 집을 사서 집주인으로서 살고 계셨죠. 마을 안에서 처음엔 ‘배 씨’로 불렸어요. 그러다가 배 총무, 부대표님, 이제는 대표님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장수마을 곳곳에서 그런 흔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랑방, 평상계단, 할머니 쉼터, 주민분이 모여계신 곳이면 어디든. 대표님이셨지만 간사 일까지 모두 하셨기에 더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계실 땐 그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가 떠난 장수마을 곳곳에서 빈자리를 크게 느낄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사람들은 그가 홀로 너무 많은 일을 해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박학룡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장례 치르며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활동가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 신체적 질병에 대해 공동으로 대안을 찾자는 거였다. 장례가 끝나고 공론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배정학 활동가는 2013년 활동보조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첫 위원장을 맡았다. 살아생전 고인이 장애인 활동지원 수가 인상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가운데)
-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언제입니까” 질문에 “장수마을” 

 

작년 말, 고인은 돌쌓기극단에서 하는 ‘당신의 연극을 만들어 드립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었다. 그의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때 그의 마음엔 어떤 바람이 불고 있었을까. 이야기는 대학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투쟁의 열기가 극에 달한 대학 시절, 투쟁이 끝난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아주 긴 시간을 방안에서 보내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언제입니까.” 함께 연극 작업하던 신강규환 돌쌓기극단 대표는 그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몇몇의 질문을 던졌고 그에 고인은 “구미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뉴요커에 빗대어 ‘구리커’라 칭하고 멋스러운 체크남방을 입으며 낭만을 품던 시절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언제입니까.” 그 질문에 고인은 장수마을 이야기를 했단다. “할머니들이 아이구 들었나, 우리 마을에 필리핀 사람이 왔데, 아니, 저 사람 말이가? 그런데 한국말 잘하데이. 그러다가 배 총무, 배 총무하다가 배 대표하라, 해서 배 대표 하신 이야기. 그때도 지금처럼 극장이 미어터지도록 사람이 왔습니다. 제가 연극하면서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생각 전혀 못 했죠, 오늘 같은 날이 올지 몰랐어요.”

 

신강규환 대표에게 고인은 ‘항상 있던’ 사람이다. 항상 있던 사람이 이젠 없으니 그의 부재로 알아채야 하는 존재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많은 문제를 가진 삼선 5구역 재개발에 대해 탐사 취재하고 다큐멘터리 찍고 소식지 만드는 일, 배 선생님 없으면 못 했습니다. 조합 쳐들어오고 ‘카메라 좀 갖고 와주십시오’ 할 때 성북구 활동가 중 답해준 사람이 얼마 없어요. 몇몇 와준 사람 중 한 사람이 배 선생님입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배 선생님이 일을 정말로 잘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는 젊은 사람이니깐, 선생님 왜 이렇게 하시지, 하던 때도 있었고.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계셨던 거 같습니다. 항상 계셨어요, 그냥. 필요한 자리에 항상 계시고… 그게 얼마나 큰 건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는 조금 잘 쉬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을 잇는 끈이 되고,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던 사람.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의지했다. 그런데 비스듬히 마음 기대던 그 사람이 이젠 없다. 어제처럼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는데 이제 받쳐줄 사람이 없으니 기대었던 몸과 마음이 무너져,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었다.


고 배정학 활동가의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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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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