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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단 한 번뿐인 시험을 치르는 사람, 여기에도 있다
1.5배~1.7배까지 긴 시험시간...시작시각은 같지만 종료시각은 달라
보편적 선례 없다는 외로움까지 안고 가야할 당신에게 위로가 되길
등록일 [ 2017년11월22일 10시58분 ]

수능날 아침, 수험생 응원을 위해 학교 앞에 몰린 인파. 사진출처 flickr
 

이른 아침, 낯선 교문 앞에서 떡이나 음료를 나눠주며 열렬한 응원도 보태 주던 사람들. 뉴스에서 해마다 봐 왔던 풍경이었고 예상과 다를 것 없었다. 복도에서 친구들이 우르르, 내가 가려는 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앞질러 가고 나만 복도에 섬처럼 남았을 때, 우습게도 그제야 ‘나한테는 이게 실전이었구나. 그동안 내가 생각했고, 대비했던 건 뭐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장애인 증명서, 특수교육 대상자 증빙서류, 복지카드 사본을 제출하고 입학했다. 내가 그러지 않았어도 고등학교에 법외 장애인, 질환자 학생이 있을 수 있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부터 원서접수 기간(3학년 되는 해 9월 초) 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장애인 수험생을 위한 예외규정이 어떻게 제도화 되어 있는지, 결과적으로 나는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귓전을 때릴 때, 수능만큼 중요한 시험에서조차 정보나 환경을 공유하는 후기 한 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잠깐 혼자됨을 인내한다기보다는 그저 소외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너무나도 늦어버린 것 같지만 이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장애인 수험생들이 특별히 더 준비하면 좋을 것들, 지금 와서 준비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후회하곤 하는 것들을 회상하는 기분으로나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본론에 앞서, 나는 ‘뇌병변 등 운동장애 수험생’에 해당돼 시험시간이 1.5배 연장된 상황이었다. 이외 장애 유형과 제공받을 수 있는 보조기구는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아래 표 참고) 또 법정 장애가 아니더라도 시험에 지장을 주는 질환이라는 것이 진단서와 소견서로 입증되면 장애인 수험생과 같은 환경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들은 사례로는 비염이 너무 심해 자주 코를 풀어주고 수시로 복약해야 하는 사람이 혼자 개별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기존 시험 시간과 환경에 맞춰 힘들게 모의고사를 치르느라 부담을 지고 있었다면 부디 본인의 장애, 질병 유형을 확인하고 소요되는 시간을 잘 따져 보다 덜 힘들게 준비하시길 바란다.

 

장애 유형 시험 시간 시험 운영
뇌병변 등 운동장애
경증 시각장애
1.5배 연장 운영
필요에 따라 대필 사전 신청. 이용가능. 대필 이외 보조기구(돋보기, 확대경) 제공 가능
중증 시각장애
1.7배 연장 운영
점자 시험지 제공. 음성평가자료 제공. 필산 시 점자정보단말기 제공
청각장애
변경 없음
중증 : 등기평가 필답고사로 대체
경증 : 보청기 사용
표.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이트.


일반고 기준, 교실에 학생용으로 배포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안내 매뉴얼(책자)’에는 장애인 수험생 응시 안내란이 없다. 담임 선생님이나 특수학급 선생님께 교사용으로 배포된 종합 매뉴얼을 보게 해 달라고 부탁드려야만 한다.

 

가장 먼저, 입실하는 순간 장애인 수험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혼자 보게 될 수도 있다. 다섯 명 미만이 입실하더라도 책상은 반드시 일렬로 다섯 개를 배치해야 하고, 그게 규정이라고 하니 빈 책상 사이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사람이 적은 만큼 감독관도 다른 고사장처럼 사방에 있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경우 두 분의 감독관이 입실하셔서 보다 세심하게 내 상태까지 봐 주셨다.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남들과 시작 시각은 같지만, 종료 시각은 다르다’는 점이다. 시작 시각 이후로는 과목별 소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간표와 크게 어긋나게 된다. 내가 문제를 반쯤 풀었을 때 옆 고사장은 쉬는 시간을 가지므로, 여럿이 화장실에 가거나 떠드느라 바깥이 시끄럽다. 이때를 생각해 귀마개를 챙겨야 한다. 귀마개 착용이 어렵다면, 헤드셋이나 여타 귀를 감싸는 도구를 활용해 조금이라도 소리가 차단될 수 있도록 하자. 나는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해 크게 당황했고,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1.5배, 1.7배 연장이라고 하면 얼마나 긴지 수치상으로는 잘 감이 오지 않는다. 필기나 마킹은 보다 여유로워지지만, 그것과 별개로 평소에 알고 적응해 온 시간과 크게 다르고, 시험을 그만큼 오래 치를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기에 지칠 수밖에 없다. 특히 수학은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꼼짝없이 앉아있게 된다. 초콜릿, 귤 따위 간식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준비돼 있어야 한다. 시험지와 씨름하는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휴식시간도 분명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기에, 지치지 않기 위해 뭐든 남들보다 1.5배, 1.7배씩 더 준비해 두자.

 

시험 시간이 긴 탓에 휴식시간, 점심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소해서 놓치게 되는 문제는 ‘보다 오랫동안 바깥에서 식었을 도시락이나 음식’을 먹게 된다는 사실이다. 1.5배 연장 대상 수험생의 경우 음식이 상하거나 너무 식지 않도록 좀 더 신경 써서 보관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10~13분으로 극히 제한적일 1.7배 연장 대상 수험생은 고열량의 간단한 식사 대용 음식을 챙기는 것을 권장한다. 누구나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장을 이유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부분은 늘 유감스럽다.


내가 쉴 때는 다른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을 시간이라 나는 큰 소리를 낼 수도, 마음껏 쉴 수도 없다. 그런 반면에 내가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는 그들이 쉴 시간과 겹쳐 소란스러워도 참아야만 한다. 그건 내가 점심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남는 시간을 조용히 보내야만 했다. 곧 시험을 볼 수험생분들도 불편하고 외롭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

 

영어 듣기도 따로 듣는다. 시간도 다르고 고사장도 다르기 때문에 교실 스피커로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오디오 기기로 듣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 들릴 수도, 음질이 다를 수도 있다. 감독관이 음량을 테스트할 때, 오디오 방향이나 음량에 문제가 있으면 주저 말고 말씀드리길 바란다. 최대한 잘 들려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다른 학생들이 퇴실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온다. 영어 시험이 끝나기 전에 제2외국어를 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생이 퇴실했고, 영어 시험이 끝나자 제2외국어 응시생까지 퇴실했다. 탐구 과목 때부터 감독관 두 사람과 나만 남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소리, 드디어 끝났다고 외치는 소리, 바닥에서 전해지는 진동……. 한차례 소음이 지나간 후에 감독관이 ‘이제 아이들 거의 다 나갔죠?’ 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시험 중에는 더욱 예민해지고, 변하는 상황에 따라 상태도 급변한다. 그때 그 외로움을 넘어선 소외감은 위험할 정도였다. 시간이 뻔히 뒤로 밀릴 것을 알았어도, 혼자 남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기에. 그러니, 앞으로 닥쳐올 상황을 늘 생각하고 당황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연습하자.

 

마지막으로 시험 시간과 상관없이 하고픈 말이 있다면, 고사장의 특성상 복도 끝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고사장에는 누가 있는 거야?’ 하며 놀러 오듯이 그 앞을 지나다닐 학생들이 꽤 있다. 다른 고사장과 멀지 않거나 같은 층이라면 의자나 책상으로라도 교실 앞을 막아달라고 감독관께 꼭 부탁드리자.

 

또 하나, 모두 끝마치고 나오면 밤 7시에서 10시가 된다. 춥고 어두운 것은 물론이고 혼자 남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두고, 사전에 보호자나 친구들에게 연락해 두기를 권한다.

 

텅 빈 교실 사진. 사진출처 http://www.publicdomainpictures.net/
 

대비해야 할 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너무나도 많다. 돌이켜 볼수록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느 매체를 봐도 수능 이야기는 다수, 비장애인 수험생 중심 경험담과 격언, 후기와 조언뿐이다. 그러니 새삼 특별히 이상할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상한 일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단 한 사람의 수험생이라도 허투루 낙오, 낙방시킬 수 없다면서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던 출근 시간대도 낮추고, 대중교통을 증편하고, 경찰이며 119며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럼에도 사각지대는 있었다. 없는 사람인 것처럼, 턱없이 부족한 정보와 안내를 받고 갖은 변수를 감당해야만 했을 장애인 수험생이 있었다. 올해도 분명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설령 단 한 명일지라도, 같은 무게의 부담과 노력과 고민을 지고 그 날 단 하루만을 위해 그 자리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보편적인 선례가 없다는 것은 긴장과 두려움을 넘어선 소외감과 서러움,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안긴다. 작년의 내가 그랬다면, 더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올해의 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있다가도 없어지고, 있었는데도 없었던 것이 되다가도, 어김없이 나타나 예외 없이 살고 있음을 신고하고 있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시험을 치르는 사람, 여기에도 있다. 뭘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했던 당신에게, 이 글이, 이 말이 큰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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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늘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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