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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으로 촘촘했던 계절들, 광화문 농성장에서의 5년
[아듀2017-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 5년을 돌아보다
등록일 [ 2017년12월09일 18시30분 ]

참으로 긴 계절이었다. 외치고 또 외쳐도 목소리가 두터운 공기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만 같은 날들이었다.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그 시린 계절. 광화문 농성 5년의 시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의 광화문 농성은 2012년 8월 21일 시작되었다. 어떤 사건이나 그렇듯, 이 농성 역시 느닷없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복지제도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제도에서 탈락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2002년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옥란의 죽음을 시작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점이 폭로되었고, 장애인은 등급별로 분류되어 자신의 필요를 규정당했다.


이에 맞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본격적인 저항에 나섰다. 사실상 강제적인 등급하락을 조장하는 장애등급심사에 맞서 2010년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했다. 이어 2012년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대한민국 장애인복지 시스템의 거대한 두 장벽으로 규정하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아래 광화문공동행동)'을 결성했다. 그리고 8월 21일, 11시간의 '전투' 끝에서야 이들은 유동인구가 많고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곳, 광화문역 지하보도에 5년간 이어질 저항의 진지를 구축했다.

 

지난 2012년 8월 21일, 광화문역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을 설치하려는 활동가들과 경찰이 충돌을 빚고 있는 장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원이 내려간 에스컬레이터를 그들은 몸으로 기어 내려갔고, 역을 가득 채운 경찰들 틈바구니를 맨몸으로 뚫어야 했다. 고단한 몸을 누이고서도 엿새 뒤에서야 겨우 천막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 뜨거운 열망을, 국가가 언제까지고 내버려두리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시간은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사람이 죽었다. 함께 이 자리를 지키던 김주영이었다. 반나절 밖에 받지 못하는 활동보조 시간이 끝난 2012년 10월 26일 새벽, 농성을 시작한지 두 달이 조금 지났을 때, 그는 10분 만에 진압된 화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그의 영정 앞에 정치인들이 꽃을 들고 찾아왔다. 2012년 대선이 두 달 채 남지 않은 때였다. 대선후보들은 앞 다투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고 김주영 활동가의 장례가 마무리되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또 사람이 죽었다. 10월 29일, 파주에서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간 사이, 집에 남아있던 장애남매 박지우, 지훈 남매가 역시 화재로 사망했다. 잇따른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광화문 농성장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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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공약으로 약속했던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은 '응급안전서비스'같은 '중증장애인 보호 대책'으로 대체되었고, 장애등급제는 '단계적 폐지'라는 명목으로 중증과 경증으로 개편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기초법에 대해서도 정부는 '맞춤형 개별 급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는 죽음 위에 세워진 약속이었다. 이렇게 쉽게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은 납득되지 않았다. 광화문공동행동은 다시 거리에 섰다. 숱하게 많은 기자회견과 토론회, 다시 기자회견, 정부 관계자와의 면담, 경찰과의 충돌, 벌금고지서, 그리고 기자회견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중·경 단순화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은 정부의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파행을 맞았다. 송파세모녀 사건으로 기초법이 전면 개정됐으나, 개정 기초법에서 가난한 송파세모녀 사건으로 기초법이 전면 개정됐으나, 개정 기초법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는ㄹ사람들의 권리는 조각조각 찢어지고, 부양의무자기준은 건재했다.


그러는 사이 또 사람들이 죽어갔다. 일상생활 대부분에서 활동보조가 필요했지만, 장애등급 3급 판정을 받아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었던 송국현 씨가 또다시 불길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당시 활동보조는 2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다). 광화문공동행동은 ‘국가가 송국현을 죽였다’라며 장관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을 때까지 그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은 ‘유감’만을 표명 했고, 사람들은 26일동안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문형표 ‘그림자 밟기’를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는, 아니 국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세계사회복지대회 폐막식에 공식 초대되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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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은 벌써 3년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기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농성 1000일이 되는 2015년 5월 17일부터 8월 21일까지 95일 동안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로 드리워진 빨간불을 그린라이트로 바꾸자'라며 거리를 점거했다. 또한, 복지부 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 부처에 흩어진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반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국무총리 산하의 장애등급제 개편 TF 구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들의 외침은 응답받지 못했다.


온갖 방법으로 정부를 압박해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인 시간이 지칠법도 했지만, 싸움의 불꽃은 도무지 꺼지지 않았다. 광화문 농성장이 이 모든 지난한 싸움의 든든한 '본진'이었다. 농성장에서 사람들은 손님들을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회를 하고, 영화를 봤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는 100만인 서명도 이어졌다.


농성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이나 탈핵 등을 배우는 훌륭한 강의실이었고, 장애인의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직접 전하는 광장이었으며, 각 지역에서 농성장 '사수'를 위해 모인 장애계 활동가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랑방이었다. 바로 이 본진에서 길어올리는 힘은 연대로도 이어졌다. 노동, 빈민, 성소수자, 그리고 세월호까지, 광화문 농성장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활발한 연대로 운동의 저변을 넓혀가는 구심점 역할도 했다. ‘광화문 농성’이라는 계절이 참 길었으나, 길었던 시간동안 장애인, 빈민 운동이라는 나무는 크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튼튼한 가지를 길게 드리웠다.


곳곳에 뿌려진 투쟁의 씨앗은 땅이 척박할수록 더 억세게 싹을 틔워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 정권은 기어이 국민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 광화문 광장은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이 결집하는 장소였다. 광화문공동행동은 퇴진행동에 참여하며 ‘촛불광장’의 구성원이 되었다. 촛불 집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광화문공동행동은 유례없는 관심과 지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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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광화문 농성장을 지켜온 이들은 마음 놓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대통령’의 약속이 얼마나 허망하게 내팽개쳐 지는지, 지난 4년간의 시간 동안 똑똑히 봐 왔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약속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담보가 필요했다.


2017년 8월 25일, 광화문 농성을 시작한지 꼭 5년하고 4일이 더 지난 날, 새로 임명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았다. 지난 5년간, 농성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만나고 싶어했던 복지부 장관이었다. 박 장관은 농성장에 놓인 영정 앞에 헌화했다. 영정은 열 여덟 개로 늘어나 광화문역 한쪽 벽에 제법 긴 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날 박 장관은 장애등급제 폐지 위원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위원회,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울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도, 안도의 눈물도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떠난 후에야 응답한 국가에 대한 원망과, 이들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벅찬 감정, 미안함, 지난날의 좌절과 앞으로의 희망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복잡한 것이었다. 이 눈물은 이제 이 시린 계절에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2017년 9월 5일, 여름의 마지막과 가을의 시작 어느 쯤에 위치한 날, 광화문 농성은 1842일자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광화문 농성장에 ‘뜨거운 안녕’을 고하는 모든 사람은 농성의 끝이 곧 이 싸움의 끝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5년간 쌓아올린 이 투쟁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지난 8월 25일, 광화문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복지부 장관과 광화문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정부는 약속한대로 장애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와 부양의무자기준폐지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위원회는 아직 구성 중에 있다. 현재까지 장애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는 3회 회의를 진행했고, 부양의무자기준폐지 민관협의체는 2회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민관협의체 회의는 현재 정부와 광화문에서 농성을 지속해온 이들 간의 의견이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에서 복지부는 이전에 진행해오던 ‘장애등급제 개편안’에 따른 단계적 폐지, 즉 중·경 단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장애계는 등급제 폐지이후 개인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한 로드맵과 예산 확보 방안 계획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장차가 첨예하게 갈리면서 복지부는 장애계와 별도의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장애 ‘등급’을 ‘정도’로 용어 변경한 법안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계는 구체적 계획이나 논의 내용 반영 없이 용어 변경만 가지고 ‘등급제 폐지의 기틀을 마련했다’라고 홍보하는 복지부의 행동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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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세월 끝에 정부와 민관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여전히 ‘법안 개정’에만 몰두하고, 기존 계획을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복지부를 바라보며, 장애계는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5년간 촘촘하게 반복된 투쟁과 외침, 더위와 추위에도 이 싸움의 진지를 ‘사수’했던 기억, 돌아오는 침묵과 기만 앞에 마음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던 이유의 무게는 이들이 ‘민관협의체’에 거는 기대에 고스란히 실려있다. 이 무게를 누가 함부로 가벼이 여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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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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