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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을 통해 탈시설에 다가간 미국, 밑바탕에 강력한 P&A가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미국 연수 결과 보고대회 열어
리져널센터 중심으로 탈시설 전환 이끌어...“한국도 P&A 권한 강화해야”
등록일 [ 2017년12월22일 13시16분 ]

1908년 미국 동캘리포니아 지역에 설치된 주립시설 ‘펜허스트 주립학교·병원’은 법령에 따라 정신박약자로 간주된 아이들을 구금하여 훈련시키는 시설이었다. 1200에이커가 넘는 부지에 25채의 건물이 들어선 이 복합단지형 시설에는 동시에 3500명의 아동이 수용되어 강제격리와 불임수술 등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1974년 펜허스트 거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이 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꺼내들고 시설 폐쇄를 요청하는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 이에 법원은 77년 판결에서 시설 거주인들이 불평등한 주거환경에 격리되어 적정한 주거를 제공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주정부가 거주인들에게 새로운 집과 활동기반을 마련할 것을 명하였다. (▶펜허스트 주립학교·병원 관련 동영상 바로 보기)

 

펜허스트 주립학교·병원의 역사를 담은 영상 '양심의 부름' 중 갈무리 (제작: 펜허스트 기억보존사업회)


이 소송은 미국 탈시설 운동의 출발점이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제임스 콘로이(James Conroy) 박사는 소송 이후 79년부터 펜허스트에 거주했던 1154명을 14년간 추적 연구해 그들의 삶의 변화를 조사했고, 개인적으로나 가족·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음을 확인했다. 올해 6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탈시설은 미국에서 이뤄진 사회실험 중 가장 성공적인 실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은 콘로이 박사의 초청으로 미국 연수를 진행했다. 펜허스트 소송 등 미국 탈시설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미국의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체계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발달장애인 지원기관 등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들은 21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강의실에서 보고대회를 열고, 연수 결과를 공유하고 미국 사례의 국내 적용 가능성에 대해 토론했다.


- 미국 14개 주에서 시설 완전 폐쇄...‘소송 운동’ 의미 있지만 한국에 적용은 무리


이들이 특히 캘리포니아주를 주목한 이유는 미국 내에서 탈시설 운동 흐름이 가장 먼저 나타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흑인, 여성 등 여러 소수자의 민권운동 성장과 함께 장애인 탈시설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캘리포니아에는 60년대부터 장애부모를 중심으로 한 탈시설 권리 운동이 출현했다. 이는 곧 랜터만(Frank D. Lanterman)이라는 의원의 주도로 발달장애인이 각종 서비스 지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 랜터만법(Lanterman Act) 제정(1977년)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연방정부 차원의 변화도 있었다. 기존의 정신지체시설건축법을 개정한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법(Developmental Disabilities Assistance and Bill of Rights Act)’이 1978년에 제정되는데, 이는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발달장애인 관련 서비스 제공을 조율·통합하는 발달장애협의회 설치, 권익옹호시스템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연방정부는 각 주정부가 이 법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미국의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의 핵심에는 리져널센터(Regional Center)가 있다. 캘리포니아에만 리져널센터가 총 21개가 있어 담당 지역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에 밀착된 지원을 총괄한다. 리져널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개인별 욕구에 맞춘 서비스 계획 즉, 개인별프로그램계획(IPP)을 세우는 것으로, 이는 사례관리사 뿐만 아니라 가족,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 등이 협업해 작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IPP를 가지고 지역사회 곳곳에 위치한 에이젼시(Agency)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다.


IPP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발달장애인 한 명이 받는 서비스의 실질적 양이 달라지게 된다. 한국에서라면 적은 예산으로 인해 당사자의 욕구와 무관하게 서비스 양이 제한당할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이런 고민 때문에 방문했던 리져널센터에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서비스 상한액이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상한액은 없다”라는 답을 들었다. 철저하게 개인의 욕구에 맞춘 서비스 제공을 한다는 것이었다. 김 활동가는 “우리가 방문한 제이놀란(Jay Nolan)이라는 직접 서비스 기관에서는 발달장애인에게 잡코치를 6년이나 붙여주고 직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한국은 고작 3개월”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발달장애인법 시행으로 각 지역마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설치됐는데 리져널센터와 같이 개인의 욕구와 특성에 맞춘 서비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리져널센터가 지역사회의 질 좋은 서비스로만 연결해 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개별 센터에 근무하는 스탭의 성향과 적극성에 따라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시설 거주인에 대한 세부적인 서비스 계획을 정기적으로 세워야 하는 책임이 리져널센터에 있기 때문에 탈시설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김 활동가의 설명이다.


이와 같은 탄탄한 지원체계는 법적 소송을 바탕으로 한 지난한 탈시설 운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서 언급한 펜허스트 판결 이외에도, 1999년 조지아주의 정신장애 당사자 2명이 부당한 시설 수용을 ‘합리적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한 소송에서 법원은 “장애인의 ‘부당한 고립’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옴스테드 판결). 이에 연방대법원은 주정부가 취해야 할 ‘합리적 변경’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2002년 부모운동단체 ARC, 발달장애인당사자 조직인 피플퍼스트, 일반 시민, 권익옹호기관 등이 랜터만법에 의해 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 정책이 변질되어 장애인을 시설에 보내고 있다며, 시설 폐쇄에 대한 정책수립을 요구하며 주정부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8년간의 소송 끝에 원고들은 주정부로부터 “주정부 발달장애국의 추가기금을 마련해서 모든 리져널센터가 시설거주인을 만나 개별프로그램계획(IPP)를 짜고, 거주인에게 지역사회에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줘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받아낸다. 즉, 소송을 통해 주정부 예산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서비스로 전환되도록 돈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러한 소송은 미국 전역에서 이어져, 현재 총 14개 주에는 모든 시설이 폐쇄된 상태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21일 미국 연수 보고대회를 열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미국의 탈시설 역사를 정리하면서, 소송에 당사자와 부모, 운동가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정책 변화까지 이끌어낸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행정소송은 피고가 패소하면 정책을 변화시켜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즉, 법원이 이행계획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엔 그런 시스템이 없다. 최근 문제가 된 희망원 재판도 가해자 처벌하면 끝이고, 국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하 활동가는 미국의 옴스테드 판결을 한국에서 실현해보고자 했던 시도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음성 꽃동네와 김포 향유의집 거주 장애인 3명은 각각 서울 양천구청과 충북 음성군청이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거부한데 불복해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양천구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만 승소했다. 이에 대해 김 활동가는 “미국은 미국장애인법(ADA)에 의해 시설수용이 ‘불필요한 감금’이라고 보고 사회복지서비스를 변경해 줘야 한다고 본 것인데, 한국은 당사자가 시설 수용 말고 다른 걸 원하니까 다른 서비스를 소개시켜줘야 한다는 거였다”면서 “한국에서는 장애인복지법, 장차법 어디에도 시설수용이 불법이라거나 차별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냥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되어 있다. 이것부터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주정부의 탈시설 이행, P&A가 지속적 감시·통제


중요한 것은 단지 소송운동만이 아니었다. 소송의 결과 나온 새로운 정책 변화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강력한 당사자 조직과 권익옹호시스템(P&A; Protection and Advocacy)이 없었다면 미국의 탈시설은 불가능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 시설 문제로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주정부는 법원이 제시한 동의명령(Consent Decree)을 몇 년 내에 이행해야 했다. 그 때문에 주정부의 이행을 감시하는 기관, 특히 P&A 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여준민 활동가는 “미국 P&A는 시설과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법원은 주정부에 이행을 명령한다”면서 “우리나라 P&A 기관도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는다는 이유로 할 말 못하는 그런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김정하 활동가도 “최근 우리나라도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면서 P&A기관 설치가 가능해졌는데, 그 모델이 노인/아동학대방지센터에 따르다보니 권한의 한계가 명확하다”면서 “미국 P&A기관들은 시설 방문조사를 불시에 진행할 막강한 권한도 가지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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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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