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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말뿐인 ‘탈시설’ 약속,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아듀2017-④] 대구희망원 사건 해결 요원, 경기도는 탈시설 역행 정책 버젓이
등록일 [ 2017년12월22일 19시31분 ]

2017년, 올해도 어김없이 장애계의 탈시설 행보가 이어졌다. 특히 2017년에는 장애계의 탈시설 염원이 비로소 꽃을 피울게 될 거란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이 희망은 새 정부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구시립희망원 범죄 시설 폐지 및 탈시설 정책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로 임명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8월, 광화문농성장을 찾아 ‘장애인수용시설폐지 위원회’를 구성을 약속하기도 했다. ‘탈시설’이 정부 정책으로 천명되고 국가 차원에서 논의되는 첫 걸음을 2017년에 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발걸음의 상징적 사건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시설 비리 백화점’이라고 불리며 세상에 알려진지 2년 만에, 대구시립희망원이 법정에 섰다.

 

▶관련기사 :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드디어 법정에 서다 (2017.03.08)


희망원 관련 재판은 총 5건이 진행되었다. 희망원 전 원장신부 두 명을 비롯한 간부들과 생활재활교사들이 피고로 섰다. 법정에서 주로 다루어진 것은 횡령, 보조금 관리 위반, 감금, 업무상 과실치사 등이었다. 수 시간씩 이어지는 대질심문과 현장검증을 통해 희망원 담장 안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불법 행위들이 속속 드러났다.


희망원은 달성군 공무원과 공모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닌 생활인 177명을 수급자인 것처럼 꾸며 생계급여 6억5천여만 원 상당을 부정 수급했다.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 두 곳과 거래를 할 때에는 허위 영수증은 만들어 차액을 비자금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비자금이 5억8천여만 원에 달한다. 배아무개 전 희망원 원장 신부는 비자금 조성을 폭로하겠다는 전 회계직원에게 수표 1억2천만 원을 내민 혐의도 받고 있었다.


3차 병원에 입원하는 거주인에 대한 간병비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이들의 간병을 위해 희망원 거주인들이 하루 5천 원에서 1만 원을 받고 ‘간병도우미’로 파견되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간 동안에만 간병도우미가 3260일 파견되었다. 대부분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전문 간병인에게도 버거운 24시간 간병을, 그들은 자신의 약 먹는 일까지 놓쳐가며 해야했다. 이는 입원환자의 사망사고로도 이어졌다.


감금은 희망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바깥에서만 문을 잠그고 열 수 있는 세 평짜리 공간(가로 2.25m 세로3.28m)에 사람들은 짧게는 반나절부터 길게는 47일까지 격리되었다. 이성교제, 사행행위, 금전거래 등 희망원 자체 규정을 어기면 들어가는 곳이었다. 방 안에 난 창문틀에는 못을 박은 흔적이 있었다. 희망원측은 방충망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못을 박았다고 했으나, 못자국은 방충망틀 안쪽, 그러니까 유리창틀에도 되어 있었다. 검사는 이것이 명백한 '감금'의 흔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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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희망원 비리범죄 관계자 처벌과 수용시설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모습.


법정 안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간의 논쟁이, 밖에서는 천주교대구대교구의 감형, 탄원 활동이 활발했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성직자들은 배 신부 석방을 위해 모금 운동을 해 3억9천여만 원을 모았고, 이를 지난 9월 13일 달성군수에게 공탁하며 배 신부의 보석을 신청했다.


선고가 나오기 전, 최종변론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했다. 그러나 참회의 말 뒤에는 어김없이 ‘감금이 불법인지 몰랐다’, ‘모두의 원만한 생활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라는 변이 덧붙었다. 배 신부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수감생활을 떠나 사제로서 매일 미사를 못 드리는 것은 엄중하고 참혹한 일”이라며 흐느끼기도 했다. 원장신부가 ‘예수의 마음으로’ 모든 짐을 짊어진 것이라는 호소도 이어졌다.


항소가 거듭되었다. 1심에서 횡령, 감금,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3년형을 받은 대구시립희망원 전 원장 신부는 항소심에서 2년형을 받았고, 역시 횡령, 감금, 보조금관리법위반 및 사기 혐의 등으로 1심에서 1년형을 선고받은 임아무개 희망원 사무국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아무개 전 희망원 총괄원장 신부 역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구속되었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그밖에도 식비 횡령에 책임이 있는 회계담당 수녀, 식품업체 관계자, 감금 및 횡령 등을 묵인해온 각 시설 원장들 역시 항소심을 진행하는 족족 감형되었다.


재판 결과에 대해 대구시립희망원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강하게 반발했다.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사목공제회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피고인들에 대한 법적 처벌 역시 너무 낮은 수위라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희망원 사건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항소심 진행에 따라 형이 점차 낮아지는 판결에 “피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의심스럽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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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높은 형이 선고된다 한들, 재판은 희망원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마지막 열쇠가 될 수 없다. 피고인 몇 명에 대해서만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수용시설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원 사태 해결을 비롯해 제 2, 3의 희망원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대구시 차원의 정책 마련과 집행이 요구된다.


희망원은 ‘대구시립 시설’이었다. 희망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구시가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탈시설자립지원팀’을 만들었고, 희망원 운영은 마지막으로 한 번, 3년만 더 민간에 위탁한 후 공적 운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서비스공단 형태로 공적 운영 주체를 형성한 후, 여기서 희망원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마지막 민간운영 주체로는 전석복지재단이 선정되었다. 전석복지재단은 앞으로 3년동안 1500명 규모의 희망원을 200명 규모로 대폭 축소해야한다. 장애인거주시설인 '보석마을(구 글라라의집)'은 2018년에 당장 폐쇄해야 한다. 길지 않은 기간동안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구시의 적극적 정책 마련과 재단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구시는 중앙정부와 국회에 예산을 요구하면서 ‘희망원 탈시설 예산’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전석재단은 탈시설 계획보다는 ‘시설 정상화’에 힘을 쏟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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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희망원 사건 해결과 탈시설 정책 집행이 미진한 가운데, 경기도에서는 아예 탈시설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책이 속개되고 있다.


지난 2월, 경기도는 ‘장애인복지사업 관계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개인운영시설 법인화 기준 완화’였다. 경기도에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려면 보통재산으로 10인 시설 1억 원, 20인 시설 1억 5천만 원, 20인 시설 2억 원을 출연해야 한다. 이마저도 시설 규모에 상관없이 10억 원이었던 출연금 기준을 경기도가 2015년에 대폭 낮춘 것이었다. 경기도는 이 기준을 20인 이상 시설은 3천만 원, 21인 이상 시설은 5천만 원으로 한 번 더 낮추겠다고 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개인운영시설은 연 5880만 원에서 1억 2천만 원을 지방비로 지원받고 있다. 법인이 되면 지방비뿐만 아니라 국비까지 지원받아 연 5~7억 원으로 지원금이 껑충 뛰어오른다.


경기도는 개인운영시설이 법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거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법인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으므로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법인화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기준 완화 필요성을 설명했다.


장애계는 이것이 시설을 더욱 키우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장애계는 “장애인이 개인시설이나 소규모 시설에서 어떻게 지역사회로 나아올 수 있을지 고민해야할 시점에 시설 지원 확대에 기반한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은 문제”라며 탈시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문경희 경기도의원은 8월 29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법인화 기준 완화가 “탈시설 정책의 투트랙”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은  "탈시설화를 통한 진정한 자립과 지역사회로의 온전한 통합"이 장애인 복지의 최종 목표임에는 동의하지만 "거주시설 중 법인시설과 법정개인시설의 환경차이로 인한 서비스 질 차이를 외면한 채 탈시설만을 향해 갈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 8월 28일 '개인운영 장애인 거주시설(법정시설) 법인전환 기준 완화 계획 관련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던 '누림센터' 2층 대회의실 앞에서 경기장차연 등 7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계획에 반대하며 토론회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


문 의원의 주장대로 이번 개인운영시설 법인화 기준 완화를 ‘탈시설 역사’의 연장선에서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개인운영시설의 역사는 곧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는 기준 완화의 역사였고, 기준이 완화되어 갈수록 국가의 지원은 확대되고 그에 비례해 시설의 힘도 커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법인화 기준 완화’ 역시 이러한 시설 강화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시설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시설 거주인의 삶의 질이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경기도와 개인운영시설 측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대구시립희망원도, 거주인에 대한 생활재활교사의 일상적 폭력이 CCTV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남원평화의집도 모두 법인 산하 시설이었다. 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시설의 구조 그 자체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우려와 의문에 대한 대답은 없이, 경기도는 기어이 정책을 밀어부쳤다. 10월 30일, 경기도는 31개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 경기도는 3~5천만 원으로 낮아진 기출금 기준을 제시하며 “(개인운영)시설들이 법인 설립 허가를 신청하면 조속히 허가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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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탈시설 정책 추진’을 약속했지만 2018년 국가 예산에는 단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고, 복지부 장관이 약속한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위원회’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국가 차원의 정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각 지역에서는 탈시설 ‘각개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2017년을 ‘국가 탈시설 정책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말뿐인 약속과 행동없는 참회, 기만적인 지침으로 얼룩진 한해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민주주의의 승리로 불리운 촛불 광장 위에 세워졌다. 이 사회의 변두리, 좁은 공간을 둘러싼 높은 벽을 해체할 때, 이 광장(廣場)은 더욱 넓고 단단한 ‘나라’의 기틀이 될 것이다. 벽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힘과 의지가 필요하다. 2018년은 2017년의 과오를 거울삼아 제대로된 ‘탈시설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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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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